엎친 데 덮친 현대그룹, 일감 몰아주기 첫 처벌

손영일 기자 , 정민지기자

입력 2016-05-16 03:00 수정 2016-05-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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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13억 과징금-계열사 檢고발
친인척 회사에 60억 부당 지원… 현정은 회장 개인 제재는 안해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현정은 회장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다가 적발돼 과징금을 물게 됐다. 지난해 2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첫 제재 사례다. 현대그룹은 구조조정 중인 주력사 현대상선이 해운동맹에서 배제되고 용선료 인하 협상 마감(20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사주 일가의 불공정 행위까지 드러나 처벌을 받게 됨으로써 사면초가에 몰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HST, 쓰리비 등 4개사에 총수 일가 사익편취 및 부당지원행위 등의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2억85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또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지원 규모가 큰 운송전문업체 현대로지스틱스에 대해선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제부(弟夫)인 변찬중 씨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를 부당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증권은 2012년부터 복합기 임대차 거래에 컴퓨터와 주변기기 유지보수 회사인 HST를 거래 중간단계에 끼워 넣었다. HST는 현 회장 여동생인 현지선 씨가 지분 10%를, 현 씨 남편 변 씨가 80%를 보유한 회사다. 제록스와 직거래를 하면 복합기 한 대당 월 16만8300원의 임차료만 내면 되지만 HST를 끼워 넣으면서 월 18만7000원을 냈다. HST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통행세’ 명목으로 10%대의 이익을 거둔 셈이다. 공정위는 “HST에 대한 부당지원 규모는 일감 몰아주기 금지법이 적용된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4억6000만 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변 씨가 지분의 40%, 그의 두 아들이 지분 60%를 보유한 택배운송장 구매대행업체 쓰리비에 일감을 몰아줬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기존 거래처와의 계약 기간이 1년 정도 남았는데도 이를 해지하고 쓰리비와 계약을 맺었다. 경쟁회사가 택배운송장 한 장당 30원대 후반에서 40원대 초반에 공급하지만 현대로지스틱스는 쓰리비에서 55∼60원을 주고 운송장을 샀다. 최대 45%까지 비싸게 산 것이다. 쓰리비에 대한 부당지원 규모는 2012년 5월부터 2015년 4월까지 3년간 56억2500만 원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총수 일가는 14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일감 몰아주기 대상이 된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각각 KB금융과 롯데그룹에 매각돼 현재는 현대그룹 계열사가 아니다.

공정위는 현 회장 개인에 대한 제재 조치는 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현 회장이 직접 사익 편취 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해야 제재할 수 있지만 그런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 계열사 관계자들은 공정위 조사에서 회사 임원이 부당 행위를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대로지스틱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현 회장이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은 열려 있다. 검찰 조사에서 혐의가 확인되면 총수 일가에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억 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다.

공정위는 첫 제재 사례가 나온 만큼 한진, 하이트진로, 한화, CJ 등에 대한 후속 조사 결과도 신속히 내놓을 방침이다. 공정위 제재에 대해 현대그룹은 “공정위로부터 관련 의결서를 받고 난 후 상세 내용을 법무법인 등과 면밀히 검토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 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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