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맨손으로 500억 기업 일군 중졸 구두장인

김상철 전문기자

입력 2016-04-27 03:00 수정 2016-04-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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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이 컴포트화 신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구두 만드는 법 배워 볼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마친 뒤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취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때 충남 서산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던 작은아버지가 돈벌이도 괜찮다며 제화 기술을 권했다.

“해보겠습니다.”

16세 때 수습공으로 구두와 인연을 맺었다. 고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족쟁이’라고 놀렸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1년은 걸린다는 제화 공정을 5개월 만에 익혔다. 배우려는 의지가 강한 데다 어려서부터 새총, 썰매 등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쓸 만큼 좋은 손재주도 한몫했다.

서산 구둣방에서 10개월간 일한 뒤 더 큰 곳에서 배우기로 작정했다. 결심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는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상경했다. 영등포역 부근 구둣방 6곳에 일자리를 알아봤으나 거푸 퇴짜를 맞았다. 번화가를 벗어난 곳에 있던 양화점 주인이 월급 없이 숙식만 제공하는 조건으로 채용했다.

여름 비수기에 일거리가 없어 설악산 인근 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피서철이 끝난 뒤 돌아와 참스제화에 수습공으로 들어갔다. 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출근할 만큼 열심히 일해 1년 만에 기술자로 승격했다. 구두를 납품받던 케리부룩이 1983년 스카우트를 제의해 옮겼다.

“제가 출전하겠습니다.”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 경기도 대표로 나갈 예정이던 기술자가 중압감을 못 이겨 잠적했다. 케리부룩에서 여성화 최고 기술자로 꼽히던 그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해 대타를 자원했다. 공장장은 꼭 금메달을 따야 한다며 허락했다. 여성화가 아닌 남성화 제작이 경연 과제여서 70일간 연습한 뒤 참가했다. 결과는 동메달. 금메달을 따면 펼치려던 홍보 계획이 백지화돼 회사 분위기가 무거웠다. 휴가를 내고 무작정 부산으로 떠났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태종대에 갔더니 기암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과 파도가 얼마나 오랫동안 다듬었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단기간 준비해 금메달을 못 땄다고 신세 한탄이나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겸손해야 하고, 실패했다고 좌절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듬해 구두 사업을 배우려고 생산관리부에 지원했다. 품질 검사를 하다 영업 관리를 맡았다. 1989년 인천백화점에 첫 매장을 냈으나 한 달도 안 돼 철수 통보를 받았다. 매출이 600만 원으로 다른 업체의 2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억 원어치 팔면 돼.”

백화점 측에 떼를 부려 말미를 한 달 얻었다. 회사와 상의해 5만∼6만 원짜리 구두를 2만5000원에 파는 특가세일에 나섰다. 인천 시내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전단도 돌렸다. 절박한 마음에 백화점에서 호객 행위까지 해 1억 원 넘는 매출을 올렸다. 콧대 높던 서울지역 백화점 2곳도 뚫어 재고를 다 처분했다. 회사에 오니 구두 판 돈을 챙겼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억울하고 섭섭해 8년간 일한 회사를 그만뒀다.

1990년 사장이 챙겨준 특별퇴직금 200만 원으로 구두 부속물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당시 29세였다.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이사 사장(55) 얘기다.

초기에는 신생 회사라 얕보고 물품대금을 제때 안 주는 거래처가 많아 자금난에 시달렸다. 1991년 우연히 케리부룩 실적이 형편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재고를 팔아주다 구두를 만들어 케리부룩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케리부룩의 부도로 구두가 안 팔려 큰 손해를 봤다.

1994년 활로를 찾으려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구두 전시회를 찾았다. 발이 편한 기능성 구두인 컴포트화가 대세였다. 이탈리아 ‘바이네르’ 구두를 수입하며 신뢰를 쌓아 1996년 상표 사용권을 얻었다. 번 돈으로 자체 브랜드 ‘안토니’를 키웠다. 2010년 안토니 구두를 이탈리아에 수출했으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절감한 그는 유럽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 2011년 바이네르 상표권을 사들였다. 로열티를 주고 쓰던 세계적 브랜드를 인수한 것이다. 컴포트화 국내 1위에 머물지 않고 가방 벨트 골프화 등으로 생산품목을 늘렸다.

김 사장은 가난의 아픔을 알기에 불우이웃을 돕는 데 매년 10억 원가량을 내놓고, 창업을 원하는 청년들도 돕고 있다. 맨손으로 연매출 500억 원대 중견기업을 일군 그는 바이네르를 세계 최고 구두회사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구두 굽이 닳도록 뛰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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