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AI 새 세상이 오고 있다

동아일보

입력 2016-03-17 03:00 수정 2016-03-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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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는 몇 차례 도약 단계가 있었다. 사냥과 채집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인류가 마을을 이루고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업혁명, 전 세계 문명권들이 바닷길을 통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지구촌을 이루게 된 해양혁명, 새로운 에너지와 기계를 사용해 공업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산업혁명이 그런 사례들이다. 현재 진행되는 인공지능 개발이 그와 유사한 수준의 혁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돌이켜 보면 약 200년 전의 산업혁명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사건이었다. 이 이후 등장한 기계들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지금 우리는 핸들을 가볍게 움직여서 300마력의 자동차를 운전한다. 이는 말 70∼80마리가 내는 힘에 해당한다(말 한 마리=약 4마력). 이런 힘을 잘 이용하면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를 덜어줄 수 있다. 실제로 증기기관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는 자신의 발명이 흑인 노예의 비참한 상태를 개선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현재 선진국에서 이용하는 기계와 에너지를 인간의 노동으로 환산하면 한 사람당 노예 100명을 거느리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인력을 기계로 대신한 혁신은 분명 풍요와 해방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을 억압하는 성향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게 되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사람이 기계의 리듬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고, 이전보다 훨씬 장시간 실내에 갇혀 일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부가 쌓였지만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졌다. 산업혁명은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어주기는커녕 세계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현재 세계 인구 70억 명 중 ‘밑바닥 10억(bottom billion) 명’은 하루 1달러 내외로 살아가는 초극빈 상태에 놓여 있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육을 대신할 기계를 내놓았다면 현재 벌어지는 혁명은 인간의 뇌를 대신할 기계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현재 300마력 자동차를 몰듯, 조만간 가정에서 사람 300명의 ‘뇌력(腦力)’에 해당하는 지적인 기계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단지 정보의 저장과 활용 면에서 빠른 정도였지만, 인공지능 기계는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기계의 특성이 늘 그러하듯 한번 시작된 개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 인간보다 뛰어난 지성과 감성을 가진 기계가 등장할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제거하고 지구를 독차지할지 모른다는 식의 우려는 다소 과해 보인다. 그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문제는 인공지능 이용에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이것이 사회경제적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일이다.

상층 사람들은 수백, 수천 명의 지력에 해당하는 힘을 사용하는 반면 하층은 그런 기회가 아예 억제될 수 있다. 부유하면서 똑똑한 지배층과 가난하고 아둔한 하층으로 양극화가 심화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소수 강대국이 혁신의 결과를 독식하면 지배력이 지금과 비교가 안 되게 강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글처럼 이윤 극대화를 노리는 회사가 인공지능 개발의 선두에 서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본질적으로는 기계가 나왔을 때 인간의 몸을 기계에 맞추어야 했듯이 인간의 사고와 감수성이 인공지능에 길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인간이 자기가 만든 인공물에 속박돼 무력한 존재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인간은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혁명의 성과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인류가 폭발적인 힘을 현명하게 감당할 수 있으면 인간의 복지를 크게 증대시켜 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칫 지옥 같은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의 혁신은 괴테의 시 ‘마법사의 제자’를 연상시킨다. 스승이 물을 떠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고 집을 떠났을 때 어설프게 마술을 익힌 제자는 빗자루에 마술을 걸어 양동이에 물을 담아 가져오게 만든다. 그는 마법의 힘을 불러오기는 했으나 중단시키는 법을 몰라 결국 온 집 안이 물바다가 된다. 인공지능의 혁신도 한번 불러낸 이상 도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 이미 혁명은 시작됐고,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 인간이 인공두뇌에 압도당하기 전에 대비를 해둬야 한다. ‘알사범’의 괴력을 보니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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