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업 물려받기 싫었는데… 소포장 꿀판매로 대박 났죠”

한우신기자

입력 2016-03-08 03:00:00 수정 2016-03-0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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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농·6차산업]
롯데 청년창업 1호 기업 ‘허니스푼’ 천윤필-이민진 공동대표


허니스푼의 공동 대표인 천윤필(왼쪽) 이민진 부부가 허니스푼의 대표 상품인 소포장 꿀을 들어 보이고 있다. 허니스푼에서 파는 꿀은 작은 용기, 튜브, 스틱 등에 담겨 있어 휴대가 편하다. 2012년 결혼한 이 부부는 꿀을 테마로 한 다양한 상품을 파는 예쁜 카페를 낼 계획을 갖고 있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농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청년 중 상당수는 한때 이런 결심을 한다. 부모가 하던 일은 절대 물려받지 않겠다고. 이유는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풍족해진 것 같지 않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옛날 산업이라는 생각도 지우기 힘들다.

소포장 꿀 생산업체인 허니스푼의 이민진 대표(34·여)도 그랬다. 이 대표의 아버지 이상기 씨(66)는 30년 넘게 양봉업을 했다. 매년 4∼7월 경북 구미시, 충북 진천군 등을 돌며 꿀을 채취했다. 어린 시절 그런 아버지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어릴 때는 캠핑 간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 스무 살이 넘어가니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 좋은 거예요. 본인도 고생하시고 어머니도 고생시키고….”


언젠가부터 이 대표는 아버지에게 틈만 나면 양봉업을 그만두라고 했다. “돈도 잘 안 되는 것 왜 붙잡고 있느냐”는 모진 말도 내뱉었다. 그런 딸에게 아버지는 “그래도 해야 한다”며 봄이 되면 벌통을 챙겼다.

2007년 아버지가 거주지를 구미에서 대구로 옮기자 이 대표는 이제는 아버지가 정말 양봉업을 관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 뒷산에서 다시 꿀을 채취하는 걸 봤다.

“아버지는 평생을 바치신 일인데 내가 ‘관둬라 마라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아버지의 평생 업을 잘 발전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 아버지 양봉업을 딸이 6차산업으로 키워

허니스푼 이민진 대표의 아버지 이상기 씨가 평생 가업인 양봉을 하고 있다. 허니스푼 제공
아버지의 평생 일이 딸의 손으로 빛나기 시작한 건 2009년이다. 이 대표는 동생과 함께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구상했다. 처음에는 액세서리를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경쟁업체가 너무 많았다. 그때 아버지의 꿀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늘 친구분들에게 꿀을 커다란 단지에 넣어 파셨다. 시장에서 파는 꿀을 살펴보니 대부분 대용량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격도 비쌌다. 꿀을 작게 포장해서 팔면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대표는 당장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꿀을 한손에 쥘 만한 작은 용기에 담았다. 치약처럼 짜서 먹도록 튜브에 담기도 했고, 하나씩 먹을 수 있는 스틱형으로도 만들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덕도 톡톡히 봤다. 용기는 아기자기하게, 포장은 귀엽게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선물용 구매가 늘어나는 명절 시즌에만 3000만 원씩 매출을 올렸다.

한창 잘나가던 서른 즈음에 대학 친구 천윤필 씨(34)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둘은 곧 서로에게 반했고, 2012년 4월에 결혼했다. 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던 천 씨는 아내의 사업에서 큰 가능성을 봤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고생하는 아내가 안타깝기도 했다. 2013년 12월 천 대표는 회사를 관두고 본격적으로 아내와 동업에 나섰다. 현재 천 씨는 허니스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 편의점, 면세점으로 판로 넓혀

허니스푼의 소포장 꿀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비슷한 제품들이 나왔다. 경쟁자가 많아지면서 적극적인 영업이 필요해졌다. 남편인 천 대표의 영업 경험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천 대표는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며 허니스푼의 사업을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의 지원책을 적극 찾아내 활용했다. 2014년 7월에는 부산경제진흥원 창업지원센터를 통해 사무실을 확보했다.

지난해 6월에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개최한 소싱 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허니스푼이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됐다.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하는 롯데그룹 유통계열사들의 상품기획 담당자들이 허니스푼의 상품성을 높게 본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허니스푼 상품을 추석 선물세트로 만들었다. 얼마 후에는 롯데면세점 부산점에 입점했고, 롯데그룹이 청년 창업 기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롯데 엑셀레이터’의 1호 기업에도 선정됐다. 현재는 롯데마트와 백화점에서도 판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아버지가 꿀을 생산하고 자식은 가공 판매하며 대기업은 이를 지원하는 완벽한 6차산업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허니스푼의 부부 대표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꿀을 테마로 한 다양한 상품을 파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내는 것이 목표 중 하나다.

“농업을 옛날 산업으로 볼 게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잘하고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보는 게 중요해요. 그걸 찾는다면 부모님이 고생해 기반을 닦은 일이 내 손에서 더 빛날 수 있어요.”

부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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