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firm&Biz]법률시장도 이젠 韓流… 로펌들, 베트남서 구슬땀

호찌민·하노이=김준일기자

입력 2016-02-29 03:00 수정 2016-02-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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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태평양-광장, 베트남 진출깵 M&A 등 다양한 분야 활약



“베트남 법령이 일부 바뀌어 가능하겠네요. 투자 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먼저 원청업체에 임대사업 추가 서류를 문의해 보세요. 작업 시간이 훨씬 단축될 겁니다.”

법무법인(로펌) 광장 베트남 호찌민 법인장 한윤준 변호사(47)는 휴대전화 너머의 의뢰인에게 막힘없이 자문을 풀어 나갔다. 의뢰인은 자수(刺繡)를 제작해 섬유업체에 납품하는 공장의 대표였다. 그는 원청업체가 최근 생산라인을 새로 만든 벤째(Ben Tre) 지역에 공장을 세우고 싶다고 했다. 호찌민에서 자동차로 2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벤째 지역은 최근 대기업 등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곳이다. 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원청업체가 마련한 공장부지 중 남는 공간을 하청업체에 임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원청업체도 곧 내게 연락할 테니 법적 검토를 해 놓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이어 나가시죠.”(한 변호사)

22일 호찌민 시 중심에 위치한 ‘금호아시나아 플라자’ 4층 사무실에서 한 변호사가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한 시간 반 남짓 동안 의뢰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모두 6통. 옆 사무실로부터 다른 변호사의 호출도 잇따랐다. 2월임에도 섭씨 34도를 육박하는 호찌민의 날씨가 사무실 안에 전해졌는지, 아니면 거듭된 통화로 휴대전화가 가열돼 그 열기가 피부에 닿았는지 한 변호사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22∼24일 베트남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만난 한국 로펌 베트남 전문 변호사들은 사업가 느낌을 물씬 풍겼다. 전문성과 개척정신으로 중무장한 이들은 베트남 법률서비스 시장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안우진 율촌 호찌민 사무소 변호사(가운데), 이홍배 율촌 하노이 사무소 변호사, 김병필 태평양 호찌민 사무소 변호사, 한윤준 광장 호찌민 사무소 변호사. 호찌민·하노이=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한국 대형 로펌의 베트남 법률서비스 선점 전쟁

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 지위를 넘보고 있는 베트남에서 현지 법률서비스 시장 선점을 두고 한국 로펌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들이 국내 베트남 전문 변호사들과 현지 유수의 변호사를 내세워 글로벌 대형 로펌들과 경쟁하고 있는 것. 28일 기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계 로펌은 태평양, 율촌, 광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로펌을 포함해 총 6곳이다. 다른 대형 로펌들도 베트남 진출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로펌들이 경쟁적으로 베트남에 뛰어드는 이유는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 진출한 기업은 자연스럽게 ‘베트남법’이라는 장벽을 맞닥뜨리게 된다. 베트남은 한국어 전문 통·번역 인력이 많지 않고 현지법도 생소해 기업인들이 특히 애를 먹는다. 현지 진출 로펌의 역할은 기업과 개인이 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안우진 법무법인 율촌 호찌민 사무소장(45)의 설명을 들으면 왜 한국 로펌이 베트남에 활발하게 진출하는지 이해하기 쉽다.

“단추를 제작하는 업체의 사장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먼저 이 사업이 베트남에서 허가받을 수 있는 사업인지 고려해야겠지요. 그 다음은 공장 설립을 위한 최소 자본금은 얼마인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공장을 설립하려면 땅이 필요하겠지요.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토지법이 한국과 달라요. 원칙적으로 토지 소유가 안 되거든요. 이밖에도 수십 개에 이르는 각종 인허가를 받고 나면 기업 운영 구조는 어떻게 짜야 하는지, 노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투자금의 송금과 회수 문제 그리고 회계와 세무문제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많은 법률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로펌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로펌 수요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로펌이 활발히 활동할 수는 없다. 해당 국가의 법률서비스시장 개방 폭에 따라 해외 로펌의 움직임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베트남은 비교적 법률서비스시장을 넓게 개방한 나라다. 베트남은 1987년 처음 법률서비스시장의 빗장을 푼 이후 현재 외국계 로펌이 100% 지분으로 베트남에 법무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당 로펌은 현지 베트남 변호사도 채용할 수 있다. 단 외국계로펌은 송무 업무는 할 수 없다.


9000만 인구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인 나라

베트남은 9000만 명에 달하는 인구에서 비롯되는 내수시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평균연령 30세의 젊은 인구와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값싼 노동력(제조업 기준 평균 임금 249달러)은 베트남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성장률은 6.7%로 최근 8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동남아 경제권 경쟁국인 인도네시아(4.8%), 말레이시아(4.7%), 태국(2.7%) 등을 크게 웃도는 성장률이다. 베트남의 GDP 성장률이 2012년(5.0%) 이후 해마다 전년보다 높은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세계적인 경제예측 기관들은 2020년까지 베트남 경제가 해마다 6.0∼7.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가 가파른 성장을 보이자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도 매해 급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은 2014년에 일본을 제치고 처음으로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국가로 떠올랐다. 베트남 투자청의 ‘국가별 외국인투자금액’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업과 개인 등 한국에서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은 총 73억2750만 달러(9조934억 원)로 같은해 베트남으로 들어온 전체 외국인 투자금액(202억3000만 달러)의 36.2%를 차지했다. 일본의 베트남 투자금액은 20억5020만 달러였다. 2014년 한국의 베트남 투자금액은 2011년(14억6660만)보다 5배로 늘었다.






최고 베트남 전문 변호사들의 건곤일척

베트남 법률서비스 시장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면서 한국 로펌들은 최고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하고 있다. 태평양, 광장, 율촌 현지 법인 사무실은 호찌민의 경제 중심구역인 1군 지역에 몰려 있다. 광장과 율촌은 금호아시아나 플라자 건물을 함께 쓰고 있으며, 태평양 사무소는 차로 9분 거리에 있는 호찌민의 최고층 건물 비텍스코파이낸셜타워에 입주해 있다.

광장은 한윤준 변호사를 필두로 진용을 꾸렸다. 광장 호찌민 법인에는 한 변호사를 포함해 한국인 변호사 2명과 베트남 현지 변호사 2명이 근무한다. 2006년 처음으로 베트남 전문변호사 타이틀을 단 한 변호사는 현지에서도 최고참 한국인 변호사로 불린다. 그는 10년 동안 포스코건설, 롯데백화점,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100여 개 기업의 법인설립, 인수합병, 노무 및 조세 관련 법률 자문을 담당했다. 총영사관이나 KOTRA가 주최하는 각종 법률설명회에서 강연을 30여 차례 이상 해올 정도로 베트남 통으로 통한다.

율촌은 하노이 지사에 이홍배 변호사(47), 호찌민 지사에 안우진 변호사를 각각 대표 변호사로 내세우고 있다. 이 변호사는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베트남으로 들어온 뒤 베트남에서 금융기관 자문 등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안 변호사는 베트남을 비롯해 미얀마, 태국 등에서 동남아 현지 경험을 쌓았다. 베트남 부동산자문 분야 최고전문가로 꼽히는 응우옌 티(Nguyen Thi·39·여) 율촌 변호사는 “대형 고객들의 대해 자문, 분쟁 업무를 막힘없이 하는 한국 변호사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태평양은 2009년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한 김병필 변호사(37)를 호찌민 사무소장으로 내세웠다. 김 변호사는 한국에서 중재 분야 전문가로 활약했으며 현지에서도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김 변호사를 도와 한달의 4분의 1가량을 베트남에서 근무하는 양은용 변호사(47)는 역시 2007년부터 베트남에서 근무한 베테랑 변호사다.


▼“TPP 발효되면 베트남 법률수요 폭증”▼

현지 사법시스템 흐름도 바꾸는 한국 로펌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한 한국 로펌들은 베트남 사법시스템의 흐름도 바꾸고
있다. 2014년 베트남국제중재센터(VIAC)에서 기념비적인 판결이 나왔다. 당시 율촌은 대우인터내셔널을 대리해 베트남 국영
조선사인 NAISCO를 상대로 “주지 않은 물품 대금을 달라”는 소송을 VIAC에 제기했다. 선박 건조를 위한 철근 등의 자재를
대우인터내셔널에 발주했던 NAISCO가 선박 건조 계약이 취소됐다는 이유로 자재 대금을 내놓지 않자 발생한 중재였다. 율촌은
중재법상 ‘하자의 치유가능성이 폭넓게 인정된다’는 점을 집중 공략해 결국 대우인터내셔널의 청구금액 전액을 받아 냈다.

안우진 율촌 호찌민 사무소 변호사는 “베트남 안에서 베트남 국영기업을 상대로 낸 중재신청에서 한국 측이 전부 승소했다는 사실만으로 외국계 로펌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었다”고 말했다.


한국 로펌은 베트남의 행정개혁에도 참여한다. 베트남 정부는 공무원의 재량권과 힘이 너무 강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고칠
행정개혁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율촌은 이 위원회에서 KOTRA를 도와 외국인이 베트남에 투자를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는 법제개혁
자문을 하고 있다. 이홍배 율촌 변호사는 “최근 베트남 조달청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국 민자사업에 대한 강의도 했다”며 “한국경제를
배우고 싶어하는 베트남 공무원들에게 한국 로펌은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로펌, M&A 시장 주도로 화룡점정 찍을까


김병필 태평양 변호사는 현지에서 맡았던 자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동원시스템즈의 현지 회사 인수 자문을 꼽았다.
동원그룹의 포장재 전문회사인 동원시스템즈는 같은 분야 베트남 점유율 1위이자 상장기업인 딴 띠엔 패키징(TTP)과 비상장기업인
미잉 비에트 패키징(MVP)을 지난해 총 96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김 변호사는 해당 인수건에 대해 “동원시스템즈는 내수시장만을
위해 베트남 점유율 1위 기업을 인수한 것이 아니라 동남아 전체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발효되면 향후 비슷한 목표를 가진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기업 인수합병(M&A) 활동을
활발히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이 포함된 TPP 회원국들은 이달 4일 뉴질랜드에서 협정문에 공식 서명했다.
미국이 주도한 TPP에는 현재 미국 캐나다 일본 베트남 멕시코 칠레 페루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12개국이 참여했다. 아직 각국의 비준절차가 남아 있지만 TPP 정식 발효는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베트남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평가받는 TPP 체제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볼 국가로 지목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TPP효과로
지난해 기준 1856억 달러 수준의 GDP가 2025년까지 2188억 달러로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TPP가
최종 발효되면 베트남 경제가 향후 20년간 8% 이상 추가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베트남 수출총액이
890억 달러 이상 추가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기업과 한국 로펌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베트남은 지난해 7월부터 은행 등 일부 업종은 제외하고 외국인의 상장기업 지분 소유한도(49%) 규제를 없앴다. TPP 발효와
외국기업 지분소유 규제 완화가 시너지를 내면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베트남은
개혁개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로펌들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의 자유무역 가속화에 맞물려 국영기업의 민영화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한국 로펌들의 호재로 꼽힌다. 부방 베트남
국가증권위원회(SSC) 위원장(59)은 19일 베트남 하노이 SSC본부에서 “앞으로 5년간 국영기업 500개에 대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민간기업에 대해선 외국인 지분 보유 한도를 100%까지 인정해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홍배 율촌 변호사는 “베트남 정부의 국영기업 민영화 계획은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며 “베트남처럼 성장하는 국가의 알짜 기업에 대해 지배주주가 되거나 재무적투자자(FI)가 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BYLINE]
김준일기자 jikim@donga.com
호찌민·하노이=김준일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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