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걸, 프랑스 파리

입력 2016-01-21 09:23:00 수정 2017-01-10 18: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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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걸


▶ 내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날씨는 흐림을 유지했다

비행기에 올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샹송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를 귀에 꽂았다. 살바토레 아다모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귓속을 간질인다. 겨울, 그리고 프랑스. 비행기는 파리를 향해 날았다.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도시. 내겐 어떤 추억을 선물해줄까. TV와 영화에서 보던 파리를 떠올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몽마르뜨 언덕에 비가 내리면

오랜 날갯짓이 힘들었는지 비행기가 땅에 내려앉으며 궁둥이를 바르르 떨었다. 자연스레 감았던 눈이 뜨였다. 샤를드골 국제공항, 어느새 내 몸이 파리에 들어와 있었다. 파리에 도착했던 날, 늦은 오후에 날씨까지 흐려서 도시의 첫인상은 흑백에 가까웠다.

세월이 올라앉은 영화 필름처럼 제법 물기가 빠져나간 컬러가 파리 공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차가웠다. 세계의 패션이 시작되는 화려한 도시인데 내 눈에 파리는 차가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낯선 이방인 같았다.

▶ 센강을 따라서 비를 맞으며 걸었던 추억이 강렬하다

파리를 흑백사진으로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건 몽마르뜨언덕에 도착했을 때다. 그게 좋은 의미 만은 아니었다. 빈티지하지만 화려한 컬러가 돋보이는 곳을 흑백으로 담겠다니. 사실 몽마르뜨는 내게 2001년 개봉한 영화 <아멜리에>로 대변되는 곳이었다. 그저 구전되던 단어로만 생각했던 몽마르뜨언덕. 그곳에 가면 검은 단발머리에 큼직하고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아멜리에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마중 나와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신이 없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찌꺼기일 뿐” “손가락이 천국을 가리킬 때 바보는 손가락을 쳐다보죠”라는 명대사를 쏟아놓은 영화 속 그녀는 유럽판 빨강 머리 앤처럼 말랑말랑한 감성을 가진 아가씨였다.

그런데 땅거미가 내린 몽마르뜨에는 마침 보슬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난 우산이 없었다. 사실 우산을 잘 쓰지도 않는다. 나 말고도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이 제법 많았다. 12월의 끝자락,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라지만 비를 맞고 있어도 파리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 파리는 고요한 소음이 있었고, 따뜻한 냉기가 흘렀다

카메라를 흑백모드로 맞췄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컬러는 오롯하게 조금 더 검고 조금 더 하얀색으로 담기게 된다. 날씨도 한몫했지만, 갑작스레 차분해졌다.

하릴없이, 별일 없는 추억들

언덕을 오르는데 상점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었다. 처음 방문한 파리, 아무런 정보 없이 왔다는 건 아쉽다. 여행마다 그랬지만 이번에도 조금은 후회스럽다. 가게 불을 끄고 셔터를 내리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귀띔으로 언덕 꼭대기 사크레쾨르 성당에 오르면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 몽마르뜨 언덕에서 마주한 영화 속 주인공 같던 파리지엥 남녀

빗줄기는 더 가늘어졌지만 제법 젖은 몸과 이미 어두워진 거리 때문에 을씨년스러움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 아직 환하게 불을 밝힌 카페 안쪽으로 마치 프랑스 멜로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앉아 있는 남녀와 눈이 마주쳤다. 난 멈칫했는데, 그들은 문밖에서 서성이는 낯선 여행객의 카메라에 살짝 미소 짓고는 이내 자신들의 이야기로 다시 빠져들었다.

파리지엥에겐 그냥 평범한 저녁 시간일 텐데 ‘행인1’ 역할을 하던 난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에펠탑을 기대했건만. 성당까지 갔는데 날씨 탓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포기할 만도 했지만 직접 에펠탑 앞에까지 가서 야경을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머뭇거리다간 밤이 될 것 같아 근처 물랑루즈 극장까지 분주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오래된 건물에 앙상하게 붙어 있는 이정표를 보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물랑루즈는 찾기 쉬웠다.

▶ 붉은 네온사인이 매력인 ‘붉은 풍차’라는 뜻의 물랑루즈

물랑루즈는 프랑스어로 ‘붉은 풍차’라는 뜻이다. 건물 옥상에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인적이 줄어든 시간이지만 화려한 조명만으로도 과거 이곳이 얼마나 불야성을 이루던 곳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에펠탑.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조명이 화려했다. 에펠탑에서 쏘아 올린 조명이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가른다. 고요했다. 잔잔한 바람이 귀를 간질였다. 그제야 파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가만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날 밤은 유난히 조용했고, 나 역시 설렘을 꾸짖으며 조심스레 사진을 찍었다.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에펠탑에서 쏘아 올린 조명이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가른다. 고요했다. 잔잔한 바람이 귀를 간질였다.”


▶ 그날 에펠탑이 쏘아올린 조명이 밤 하늘을 갈랐다


관심 밖의 루브르와 오르세

파리에 머물렀던 일주일. 날씨는 한결같이 흐림을 유지했다. 덕분에 혼자 다녔지만 나는 고독과 동행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센강을 따라 늦은 저녁까지 걸었던 날도, 에펠탑 밑에 앉아서 과자 두 봉지를 먹으며 샹송 한 곡을 외우던 날도,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그림이 멀찍이 보이는 의자에 기대어 쪽잠을 청했던 날도, 오르세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내가 아는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날도, 별이 땅으로 쏟아진 것처럼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이 거리를 수놓던 샹젤리제 거리를 걷던 날까지. 난 절대 외로움이 아닌 고독과 함께했다. 처음엔 파리의 축축한 겨울 날씨를 탓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그럴 만해서 그랬지 싶다.

고독한 눈으로 본 세상을 흑백으로 담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설렘은 점점 줄어들고 대단한 것보다는 소소한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많은 것을 찍어서 한장을 얻기보다 한 장을 찍어서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상한 습관을 들이고 있었다.

▶ 천문학적 가치를 가진 모나리자는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일자무식으로 찾았던 파리에서도 꼭 가보고 싶던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이미 설렘은 바닥을 달리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졌다는 모나리자 그림을 마주하고도 ‘알고 있는 그림’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정말로 그랬다. 학창시절 시험에 나온다고 달달 외우던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보고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고풍스러운 박물관 건물 곳곳을 찍다가 나중엔 그림과 조각이 놓인 받침대나 가장자리가 깨진 대리석 계단, 유리창 밖의 풍경, 바닥에 붙어 있는 껌 등을 찍었다.

그날, 그 시간, 그곳의 추억은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내가 속해있던 공간을 찍은 사진이 더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 뛰노는 아이들조차 누군가는 그 안에서 고독을 느낀다
찍다 보니 흑백사진은 단순히 OX나 YES, NO로 나눌 수 있는 흑백논리의 것이 아니었다. 어둡고 밝은 것으로만 표현하는 흑과 백 속에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가 존재했다.

셔터를 많이 누르지 않는 나지만 더 고민하고 아껴서 찍었다. 필름도 아닌 디지털 사진인데 웃긴 일이다. 가끔 ‘그때 조금 더 많이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정리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사진을 찍는 쪽보단 그날 찍은 사진을 열었을 때 한 번에 보면서 떠올릴 수 있는 쪽도 나쁘지는 않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해, Aren't you?

고작 일주일. 4일이 지나면서 난 그냥 길을 걸어 다녔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걸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는 분명해졌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는 몰랐다. 흐림으로 일관한 파리의 겨울 속에서 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고독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 현대인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생각을 하며 시작한 사진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물론 내 생각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이것 역시 내 생각이다. 외로움은 누군가 대상이 필요한 상태여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채워져야만 해소되는 마음의 상태다. 하지만 고독은 대상이 필요하지 않다. 그게 사람이든 혹 사물이든 고독은 채워야 할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독은 ‘즐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고독은 인생의 과정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다. 포만감으로 이어지던 마음에 공극이 생겨나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되새김하는 비어 있는 만큼의 공허함이다. 모두가 가지지만 아무도 채울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인생의 굴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게 됐다. 뭐가 고독인지, 그게 왜 고독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끌리는 대로 발을 내딛고 눈에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누르면서 아직까지 고독은 내 사진의 작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처음 갔던 그때 파리의 겨울. 흑과 백으로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진 흑백을 경험한 이후, 그랬다.


글/기고 = 칼럼니스트·포토그래퍼 감성사진사 이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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