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는 소리없는 쓰나미… 10억명 生死 기로에”

동아일보

입력 2008-05-22 02:55 수정 2016-01-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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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부총장 “올해 1억명 빈곤층 추가 전망”

색스 교수 “美 옥수수 3분의 1 車연료 소비” 비판

“우량품종-비료 지원하면 개도국 농업 희망” 지적


■ 유엔 글로벌식량위기 긴급회의

“식량 위기는 ‘소리 없는 쓰나미(silent tsunami)’다.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곡물 가격 폭등은 부유한 나라 소비자들에게는 식료품비 추가 부담을 의미하지만 10억 명에 이르는 가난한 나라 빈곤층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20일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열린 글로벌 식량위기대책 긴급회의. 이날 회의에서 스르잔 케림 유엔총회 의장이 이같이 기조발언을 하자 갑자기 장내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 “가난한 나라 어머니들은 굶는다”

전 세계 80개국에서 1만4000여 명의 직원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케어(CARE)의 로버트 글래서 사무총장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일단 어머니가 음식 섭취를 중단한다. 남은 음식을 자녀들에게 먹이기 위해서다. 가난한 나라에선 하루에 한 끼를 먹던 아이들이 요즘엔 이틀에 한 끼를 먹는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도 가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식량을 한 컵이나 두 컵 단위로 사고 있다. 식량 가격이 오르면서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도 급증했다.”

탄자니아 외교부 장관 출신인 아샤로즈 미기로 유엔 사무부총장도 “지난해 한 해 동안 쌀값은 74%, 밀 가격은 130% 폭등하면서 올해 약 1억 명이 추가로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선 인구의 절반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 식량 위기, 선진국에도 책임 있다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관을 맡고 있는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의 농업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매년 생산되는 옥수수의 3분의 1이 이른바 바이오연료 형태로 자동차 연료통에 들어간다”며 “막대한 보조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지구온난화 방지 측면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아킴 폰 브라운 국제식량정책연구소 사무국장은 “미국은 일단 식량 위기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바이오연료 사용 비중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해야 할 것”이라며 “현 수준에서 동결만 돼도 옥수수 가격이 20% 하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영상메시지를 통해 “선진국들이 농업보조금으로 지출하는 돈이 매일 10억 달러에 이른다”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농업보조금 정책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유엔, 식량 위기 대책 팔 걷고 나섰다

이날 회의에서는 식량 위기 대책으로 선진국들의 식량원조 증액과 함께 개발도상국들이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개발도상국 농업부문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색스 교수는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소규모 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들에게 우량 품종과 비료 공급만 제대로 해 주면 생산성이 2배, 나아가 4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빙구 와 무타리카 말라위 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소규모 농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 결과 말라위가 이제 처음으로 이웃나라에 식량을 수출할 수 있게 됐다”고 성공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브라운 사무국장은 “최근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식량수출 금지 조치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며 수출금지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프랑스 대표는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국부(國富)펀드를 농업부문 투자에 유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 유엔은 식량 위기로 세계 도처에서 폭동이 발생하는 등 식량 위기가 안보 위기로까지 확대되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날 회의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 등 관계자가 대거 참석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세계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을 출범시킨 바 있다.

유엔은 다음 달 로마에서 식량위기 관련 고위급 회담을 열고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모색할 예정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곡물가격 급등에 따라 추가로 7억5500만 달러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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