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갈 병원이 없는데 무조건 낳으라뇨 … 열악한 어린이병원 시스템

입력 2015-12-16 17:13 수정 2017-01-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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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출산과 대형 사고로 인한 장애아동 증가를 감당할 어린이병원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대대적인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어린이병원은 환자 수나 수술 건수가 늘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수가다. 문정주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최근 서울대병원이 발행하는 ‘E-Health Policy’에 기고한 ‘어린이병원 육성 및 지원방안’이라는 글에서 “경증 외래진료에 초점을 둔 지불제도를 바탕으로 비급여진료에 따른 보충수입이 있어야 경영수지가 맞는 저수가 구조가 건강보험제도의 현주소”라며 “비급여 매출을 증대할 여지가 거의 없는 중증 어린이환자 진료는 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장애아동을 조기진단 및 치료하는 데 필수적인 어린이재활병원의 경우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장애를 지닌 소아청소년(0~19세)은 약 10만명이며 재활치료가 필요한 미등록 장애아를 포함할 경우 총 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늦은 결혼과 고령출산으로 인해 장애아동의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2011년 기준 재활의학과를 둔 어린이병원은 보바스어린이병원, 서울시어린이병원, 서울대어린이병원, 부산대어린이병원 등 4곳에 불과하다. 이런 사장은 지금도 개선된 게 없다. 이로 인해 장애아동들은 치료를 받고 싶어도 대기기간만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이 소요된다. 일본은 202곳, 독일은 180곳, 미국은 40곳의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을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김명옥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최근 푸르메재단이 개최한 ‘어린이 재활치료 현황과 과제’ 심포지엄에서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이 많지 않은 데에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소아재활 치료수가, 소아치료가 가능한 물리치료사의 상대적 부족, 치료사의 인건비 상승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국가의 제한된 복지예산으로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데 소수 장애아동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고 가조했다. 이어 영유아기를 지난 청소년층 뇌성마비 아동들의 재활을 담당해 줄 수 있는 기관의 확대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진료비 보상 기준인 수가 제도를 원가 중심에서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활병원이나 흉부외과 등 사회적인 가치가 있는 진료에 더 많은 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목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필수 보건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의료기관은 개설 주체가 민간이라 할지라도 기능면에서 공익성이 존재한다”며 “현행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어린이재활병원 지원 근거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어린이환자의 외래진료 수익은 성인 외래진료 수익의 64% 수준에 불과하다. 입원치료 수익은 성인의 84%로 그나마 높지만 어린이환자의 경우 30일 이상 장기입원하는 비율이 전체의 4분의 1에 그친다.
보통 외래 소아환자 한 명당 9000원, 1년간 병상 한 개당 2900여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소아수술실의 경우 가동률이 97%로 일반수술실의 128%보다 낮아 손실이 큰 편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병원과 달리 손이 많이 가는 어린이병원의 특성상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특히 신체성장과 정서적·심리적 발달을 고루 감안해야 하는 만큼 필요한 시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린이병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어린이가 입원 및 요양할 수 있는 내부 환경을 조성하고, 난치성질환을 앓는 어린이 환자가 학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원내 학교를 개설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별도의 놀이 공간과 영아 수유를 위한 곳도 필요하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 환자를 위한 무균실과 격리실도 필수시설이지만 설치 및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2011년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가 실시한 ‘어린이병원 운영모델 개발방안 연구’에 따르면 150병상 규모로 대학병원 수준의 권역별 어린이병원을 운영할 경우 기관당 연 65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적자의 원인은 간호인력의 투입이었고 병동과 중환자실 등 기본 진료시설을 운영해 얻는 적자만 46억원에 달했다.

이같은 이유로 수익성을 중시하는 민간병원은 대부분 어린이병원 운영을 포기한 상태다.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이 자체적으로 어린이병원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국립대병원이라고 해서 어린이 진료에 적극 나서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경북대병원, 전북대병원 등을 제외한 나머지 국립대병원은 어린이 전용 병상을 운영할 계획이 없는 상태다.

한 어린이병원 관계자는 “어린이병원 내 신생아중환자실의 경우 한 병상당 1억원에 가까운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상적인 의료수익에 의존해 진료할 경우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같은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국회나 언론 등에선 적자의 이유를 무조건 방만경영이라고만 지적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문 교수는 “권역별 어린이병원 설립을 준비하던 때부터 적자 운영이 예상됐고 설립 사업에 참여한 병원들 모두 운영예산 지원을 건의했지만 정부 예산은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며 “운영비 지원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정부의 ‘일방정익 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 정책이 추진되면 어린이병원은 방만경영의 실책을 범하는 곳으로 오해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취재 = 박정환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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