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모로코, 파란마을 ‘쉐프샤우엔’ & 천년의 미로도시 ‘페스’

입력 2015-12-15 17:48 수정 2017-01-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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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상 ‘질레바’ 입고 푸른 골목 거닐며 사색 … 현지인과 로컬음식 즐겨



#. 파란나라를 보았니? : 쉐프샤우엔
부르노 바르베(Bruno Barbey)’의 사진집 ‘마이 모로코’(My morocco)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하얀색 페인트로 덧칠한 벽과 푸른색으로 물든 바닥을 가진 골목길 속, 아이의 손을 잡고 쫓기듯 황급히 도망치는 여인의 사진이다. 여인의 상황을 추측하다 문득 배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메디나의 골목은 푸름과 아기자기함으로 가득하다.모로코의 많은 도시들이 메디나(성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형성된 시장과 마을)의 역동적인 이미지로 대표된다. 하지만 이곳 쉐프샤우엔은 여유로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페스(모로코어 Fes, 영어 Fez 페즈)에서 CTM 버스로 3시간을 이동하면 리프산맥 봉우리에 걸쳐 있는 조그만 마을에 도착한다. 해발 600m 고지에 있는 이곳은 시장이 아닌, 사람들이 생활하는 거주지다. 집의 색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지대에 있고 좁은 골목길이 마을의 상징이라는 부분이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유사하다.

메디나 중심까지 약 20여분을 걷는다. 주변 건물은 짙은 인디고 블루 색상과 하얀색으로 도배돼 있다. 심지어 집 대문과 상점 앞 진열된 바구니조차 파란색이다. 마치 바다 속을 헤엄치는 기분마저 든다. 과거 스페인 그라나다 지방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후 그들의 영적인 색상으로 마을을 물들였다고 한다. 골목길 어딘가에는 스머프들이 뛰어 놀 것만 같다.

이튿날 숙소 부근 상점에서 ‘질레바’(모로코 전통 민속의상으로 긴 외투 모양의 끝에 모자가 달려 있다)를 구매한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감촉과 가벼움에 맞춤옷 같다. 현지인으로 빙의한 채 골목길을 거닌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아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골목길을 걷다 하늘을 쳐다본다. 맑은 하늘의 푸른색과 듬성듬성 떠 있는 구름의 흰색이 마을과 절묘할 정도로 어울린다. 이런 모습에 어떤 관광책자는 이곳을 모로코의 ‘산토리니’라 표현했다. 마을이 유명해지자 이곳은 연중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관광객이 많은 오후 시간대를 피해 다시 골목길을 목적 없이 걷는다. 그래도 길을 잃어버릴 확률은 낮다. 내리막으로 향하다 보면 쉽게 광장을 마주한다. 그곳은 마을의 시작점이다.

머문 며칠 동안 연중 비가 왔다. 비가 오는 아침에도 의식 없이 숙소를 나온다. 건물의 파란 색상이 빗물에 녹은 듯 더욱 찐하다. 깊은 심해로 들어온 것 같다. 은은한 블루색의 편안함은 적시는 빗방울 덕에 진한 공허함으로 변한다.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는 건 항상 같은 곳을 지키는 고양이 뿐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마을이다. 하지만 여유롭게 사색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힐링된다. 잠시 시간을 잊은 채 이곳에서의 휴식은 다음 여정을 위한 마음의 보충이다.


[TIP 1] 쉐프샤우엔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Bouzaafer’로 불리는 언덕이 있다. 마을 동쪽 ‘밥 엘 안사르’(Bab el-Ansar) 문으로 나가 계곡과 빨래터를 지나 30분 정도 오르면 된다. 그곳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의 전경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단 이곳을 오를 때 따라오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얼굴은 해골 형상을 하고 이가 상당히 빠진 자라면 100% ‘해쉬쉬’를 권한다. 모로코는 마리화나의 최대 생산지로 해쉬쉬가 바로 마리화나이다.

[TIP 2] 모로코 현지인들은 사진을 찍히면 영혼을 뺐긴다고 여긴다. 특히 도심보다 시골 동네에서 이같은 경향이 짙다. 장사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관광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사진을 찍을 일이 있다면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맛집] 이 곳의 맛집으로는 ‘카사 알라딘’(Casa Aladin)을 꼽을 수 있다. 론리 플래닛에 나온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광장 중심에 위치해 있다. 야경을 보기에도 훌륭하고, 음식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포근한 느낌의 내부는 여행자들이 분위기를 내기에 적합하다. 타진, 쿠스쿠스 등 기본 음식도 팔지만 치킨을 볶아 잘게 자른 후 파이를 얻어 양념을 낸 파스텔라(Pastella) 음식도 권할 만하다.

레스토랑 몰레이 알리 벤 라시드(Moulay Ali Ben Rachid)의 이름은 쉐프샤우엔을 처음으로 건축한 스페인 망명자의 이름과 같다. 어원을 딴 만큼 현지인들에게는 이곳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이지 않을까?
현지 음식점을 찾을 때는 가이드북을 주로 참고한다. 하지만 뻔한 음식에 싫증이 나거나 진정한 ‘로컬음식’에 도전하고 싶을 때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로 북적인 곳으로 들어간다. 관광객 하나 없는 현지인 틈에 있으면 마치 그곳의 거주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느 책자에도 나오지 않은 내가 발견한 로컬 음식점을 하나 소개한다. 메디나 서쪽 외곽을 둘러싼 길(길 이름도 식당이름과 동일하다)에 위치하고 있는 ‘몰레이 알리 벤 라시드’(Moulay Ali Ben Rachid) 레스토랑 이다.

이곳은 생선튀김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허름한 간판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해산물이 잔뜩 진열돼 있다. 오징어링, 새우튀김, 튀긴 생선, 감자튀김, 샐러드, 밥 등 배불리 시키고 먹어도 50디르함(한화 약 8000원 수준)이다. 단 메뉴판은 사진 없는 현지어와 스페인어로 되어 있기에 번역앱을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미로 도시 : 페스

‘세계 최대의 미로 도시’, 과거 천년전 모로코의 수도 페스를 부르는 말이다. 야간버스 이동에 체력은 이미 바닥이다. 친절한 택시 기사 덕분에 블루게이트까지 무난히 도착했다. 하지만 숙소까지 찾아가는 방법이 문제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켠다.

졸린 눈을 비비고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도무지 사방팔방 가지로 갈라져 있는 길 때문에 위치감각이 사라진지 오래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을 매고 주변을 몇 바퀴나 돌고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한다. 긴 거리를 매번 이동하는 것도 힘들지만, 도착 후 숙소까지 무사히 가는 것도 꽤나 여행자를 지치게 만든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메디나 안에는 약 9000개의 골목이 있다. 메디나는 크게 2구역으로 구분된다. 초입 부분에는 상점과 가죽을 염색하는 테너리가 있고, 그 뒤로 현지인들이 사는 생활 터전이 있다. 블루게이트를 지나 입구로 들어간다. 골목에는 생활용품, 수공예품, 전통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뿐만 아니라 목수, 대장장이 등 다양한 사람들도 눈에 띈다. 골목의 벽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빛바랜 모양은 시간을 중세로 되돌린 듯 착각마저 든다. 골목은 그리 넓지 않다. 마치 인도의 바라나시처럼 비좁다. 하지만 그곳처럼 지저분하지 않다. 또 골목에 소가 다니지 않는다. 가끔 가죽을 싣고 다니는 당나귀만 보일 뿐이다.

1시간 정도 골목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슬슬 역겨운 냄새가 올라온다. 악취는 테너리 부근에 왔음을 말한다. 지나가는 꼬마에게 장소를 물어본다. 가죽제품이 진열된 상점 3층으로 올라가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게 주인이 민트 잎을 건넨다. 그리고 코에 대고 있으라는 시늉을 한다.

테너리는 가죽을 염색하는 작업장이다. 수백년간 이어져 온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죽을 염색한다. 흰색의 통에서 가죽을 세척하고 각양각색 염료 통에서 염색한다. 염료는 화약약품을 쓰지 않고 비둘기똥, 소 오줌, 동물 지방 등을 사용한다. 염료의 지독한 냄새에 본능적으로 잎사귀를 코에 가져간다. 주인에게 약간의 팁을 주고 좋은 자리를 선점한다.

염료통에 발을 담그고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는 이들 몇몇이 보인다. 하지만 오후 3시가 넘어 작업자들이 많지는 않다. 작업은 보통 오전 이른 시간에 시작해 오후 3시 이전에 대부분 끝난다고 한다. 여행 계획을 가진 사람들은 꼭 참고할 사항이다. 이곳에서 염색 작업이 끝난 가죽들은 건물 곳곳에 걸려 있는 긴 줄에 빨래처럼 널린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입었던 가죽 옷과 가방 등을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새삼 복잡하고 힘들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곳을 빠져 나와 미로 같은 골목을 거닐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진다. 시간의 흐름조차 필요 없는 공간에서의 하루는 더 없이 빨리 간다.

페스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유럽 여행을 위해 스페인으로 향한다.

장기백 여행칼럼니스트 eyebuson@gmail.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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