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는 김앤장, LG- 롯데는 태평양… 선호 로펌 다르네

배석준 기자 , 신나리 기자

입력 2015-09-24 03:00 수정 2015-09-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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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그룹 소송폭발 시대]<下>대기업-로펌 관계망 분석

“컨설팅회사와 회계법인의 경쟁업체는 이제부터 로펌이다.” 국내 굴지의 컨설팅회사 고위간부가 최근 자주 하는 말이다. 법정 소송 대응은 물론이고 준법감시, 자문, 국제중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법률 전문가 수요가 늘면서 기업에 법률 자문은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 삼성은 대형 로펌 기피… 현대차는 김앤장 의존

국내 5대 그룹과 주요 로펌의 짝짓기는 어떻게 이뤄질까. 동아일보는 사회관계망분석(SNA) 프로그램을 활용해 국내 10대 로펌과 5대 그룹 사이의 소송 수임 관계를 처음으로 분석해 봤다. 그 결과 양측의 조합은 크게 △현대자동차-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장 △SK LG 롯데-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화우 △삼성-법무법인 율촌, 나머지 로펌 등 3그룹으로 나뉘었다.

삼성의 경우 율촌을 제외하고는 6위까지의 대형 로펌과 다소 거리를 뒀다. 특히 업계 1위 김앤장과는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단 한 건의 민사, 행정소송도 수임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스스로 대형 로펌 규모의 사내 변호사(335명)를 두고 있는 삼성은 한두 대형 로펌과 깊은 유대관계를 갖기보다는 여러 로펌 중에서 분쟁의 성격에 맞는 로펌을 선임하는 ‘맞춤형’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3년 12월 특허권침해금지 청구 소송에서 애플에 패소한 이후 항소심 대리인단으로 율촌을 선임했는데 당시 애플의 대리인은 김앤장이었다. 삼성은 2012년에도 LG디스플레이와의 특허권침해금지 소송에서 김앤장과 맞붙었다. 2014년 11월 독일 회사인 유코컨설팅이 수수료 등을 두고 삼성전자에 16억 원을 달라는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당시 유코 측은 화우가 맡았는데 이때부터 화우는 주로 삼성을 상대로 한 소송에 공격수로 나서는 모습이다. 화우는 이건희 삼성 회장과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간 소송에서도 CJ 측을 맡았다.

단순 사건 수임 건수로는 8위인 법무법인 지평과의 연결 빈도가 가장 높았는데 주로 내부 직원과의 근로관계 소송 수행을 많이 맡겼다. 10위 대륙아주와의 친밀도도 높았다. 두 로펌을 제외하고 삼성은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특허권침해금지 청구 소송에서 손해배상 소송에 이르기까지 유형별로 다양한 로펌들과 수임 계약을 맺어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계열사별로도 다른 기업과 달리 분포가 가장 고른 편이었다.

삼성과 달리 현대차는 김앤장 의존도가 높았다. 총 142건 중 67건(47.2%)을 김앤장에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 노동 소송은 김앤장, 손해배상 및 해고무효나 직무발명보상금 등을 놓고 사내 직원들과 다투는 소송은 광장의 독무대였다. 김앤장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건을 제외하고 현대차 조합원들의 해고 소송에서 사측을 대리해 왔으며,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차 노조가 통상임금을 확대해 달라고 제기한 대표소송에서 사실상 사측의 승소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김앤장과 광장의 관계였다. 김앤장과 광장은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그룹에서 엇비슷한 사건 수임 수를 기록했다. SK와 LG 롯데는 김앤장과 광장에 7∼13건을 맡겨 미미한 수준이었다.


○ 노동 소송 김앤장이 독식… 전체 건수 태평양 1위

전체 수임 건수에서는 뒤지지만 김앤장은 행정 소송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행정 소송 전체 125건 중 59건을 수임해 절반 가까운 47.2%를 차지했다. 50∼60명으로 국내 로펌 중 최대 규모의 노동팀을 갖고 있는 김앤장은 수임한 59건의 행정 소송 중 노동 관련 사건이 48건(81.4%)으로 강세를 보였다.

전체 분석 대상 550건 중 118건을 수임한 태평양은 다른 9개 로펌을 제치고 기업 소송 수임 건수 1위를 차지했다. 태평양은 특히 SK와 LG, 롯데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보였다. LG와 롯데는 각각 46.5%, 51.2% 등 절반에 가까운 사건을 태평양에 맡겼고 손해배상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태평양은 건수는 많지만 실제 소송가액이 그리 크지 않고, 덩치가 큰 기업 자문 건을 따내기 위해 5대 그룹 등 대기업 사건 수임을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실제 SK그룹이 태평양에 맡긴 28건 중 소송가액이 10억 원을 넘는 것은 단 한 건뿐이었다.

대형 로펌 고위 관계자는 “김앤장 등 일부 대형 로펌은 국내 기업과 경쟁 관계인 글로벌 기업들의 자문을 받는 관계이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 사건을 맡기 어렵다”며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받는 수임료가 국내 대기업 사건의 10여 배에 이른다”고 말했다. 세종 등 일부 대형 로펌은 소송 수임에 치중하지 않고 기업 자문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들이 과세당국과 송사를 벌이는 사례가 늘면서 조세 분쟁에 특화된 로펌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조세팀이 전체 매출의 23%를 올린 율촌은 5대 그룹의 조세 소송 수임 저변을 다져오다가 최근 3년간 다양한 과세 소송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율촌은 2013년부터 5대 그룹 가운데 현대차와 롯데의 법인세 부과 소송, 종합부동산세 소송을 도맡았다.

기업들이 소송 유형별로 승소율을 높이기 위해 로펌마다 갖고 있는 강점을 따져 보는 만큼 로펌들도 기업들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안정적인 수임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고액의 수임료를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개별 고객들이 늘지 않는 것이 로펌의 고민이다”라며 “대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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