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영광스러운 자리 맞아요?” 박삼구 회장에게 물었더니…

심규선대기자

입력 2015-09-11 12:07:00 수정 2015-09-11 12: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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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축제한마당에 대통령이 참석했으면…”
박삼구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올해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을 맡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그는 “한국과 일본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두 나라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9월 1일 저녁 서울 삼청동 주한일본대사관저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 2015 in 서울’ 실행위원회가 끝날 무렵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6월 22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자국에서 열린 한일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 각각 참석함으로써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이 합의해서 만든 ‘함께 열어요, 새로운 미래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매우 훌륭한데, 이 캐치프레이즈가 ‘아름다운 캐치프레이즈’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한중일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도 성사되길 바라며,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친선우호대사로서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해주길 기대한다.”

박 회장이 이런 발언을 한 연유는 그가 이번에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으로 추대됐기 때문. 그는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자리를 맡게 됐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박 회장에게 한일축제한마당 실행위원장이라는 게 과연 영광스러운 자리일까’라는 의문이 살짝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는 롤러코스트를 탈 때가 많고, 한일 관계가 꼬일 때마다 축제에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실제로 걱정을 했던 해가 많았다. 아쉬울 게 없는 대기업 총수가 영광스럽다고 할 만한 자리는 아닌 것이다. 9일 서울 새문안로의 금호아시아나그룹 본관에서 박 회장을 만나 한일축제한마당 실행위원장으로서의 생각과 한일 관계 개선 방안 등에 대해 속내를 들어봤다.

먼저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속된 표현으로 ‘잘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맡게 됐느냐”고 물었다.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맡았을 뿐이다. 요즘 한 일간지에 연재되고 있는 JP(김종필) 회고록에서 JP도 한일수교 당시에는 이완용이라고 매도를 당했지만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위원장을 맡은 것이고, 한일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면 나 말고도 맡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해방둥이다. 해방둥이라는 것에 특별한 느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태어나고 나서 해방이 되었으니 큰 복을 받은 셈”이라며 웃었다. 어쩌면 해방둥이이자 기업인인 박 회장이야말로 한일이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이라는 자리의 무게야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일본과 어느 정도의 인연은 있어야 관심을 가질 만한 자리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어떤 경위로 위원장을 권유받았는지.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로부터 요청이 있었다. 전임 위원장인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도 추천을 했다고 하고, 벳쇼 대사도 나와 일본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어서 부탁을 한 것 같다.”

강신호 회장은 2009년부터 한국 측 실행위원장을 맡아 한일축제한마당이 자리를 잡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경제계에서 함께 활동해온 강 회장이 박 회장을 후임으로 추천한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벳쇼 대사가 박 회장과 일본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는 대목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자 박 회장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총무회장(76)을 거론했다. 당의 총무회장은 간사장, 정조회장과 함께 당 3역 중 하나로, 집권당의 총무회장은 그만큼 중요한 포스트다. 니카이 회장은 1983년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11선을 하면서 운수대신 2차례, 경제산업대신 3차례 등을 역임한 일본 정계의 거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국과 중국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일본 내에서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라는 점이 더 의미가 있다.

“니카이 회장은 운수대신 시절에는 하네다-김포공항 간 국제선 취항에 노력했고, 여수엑스포 때는 경제산업대신으로 여수 개최를 지지하고, 일본이 첫 번째로 참가의사를 밝히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일본 내에서 하네다-김포 국제선 취항은 나리타 국제공항이, 여수엑스포는 경제산업성이 반대를 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박 회장은 두 일을 성사시키는데 니카이 회장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김포-하네다 국제선 취항은 아시아나항공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고, 여수엑스포는 호남에 기반을 둔 기업으로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이 김포-하네다 국제선 취항을 논의할 때 도쿄특파원이었고, 귀국한 후에도 일본에 관심을 가져온 기자로서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지난해 6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마치고.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의원, 박삼구 회장, 피아니스트 나카무라 히로코 씨. 사진 제공 금호아시아나그룹

박 회장은 올 2월 니카이 회장이 일본 정관계와 관광업 종사자 1400여 명을 데리고 방한해 ‘한일우호관광교류의 밤’을 열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뒷얘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1월 니카이 회장이 자신의 지역구인 와카야마에서 전국여행업협회 총회를 열었는데, 당시 그의 초청으로 총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박 회장은 이때 “내년(2015년)이 한일수교 50주년이니, 이런 회의를 한국에서 열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니카이 회장이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 니카이 회장이 전국여행업협회 회장과 운수대신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니카이 회장은 박 회장이 제안해 성사된 지난해 6월의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서울 공연에도 도움을 줬다. 박 회장은 당시 “한일 관계가 나쁠수록 민간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NHK 오케스트라의 방한 공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니카이 회장은 200여 명의 일본인과 함께 방한해 공연을 관람했다.

그러고 보면 박 회장과 일본과의 인연은 그리 얕은 편이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센다이 오키나와 등 일본 주요 15개 도시, 19개 노선에서 매주 168편을 왕복 운항하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나항공의 큰 손님인 것이다.

또한 박 회장은 2008년부터 매년 일본 고교생을 상대로 한국어 말하기대회를 개최하고 있고, 입상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국 명소를 보여주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다. ‘그 나라 말을 알면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된다’는 박 회장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부터는 베트남에서, 2011년부터는 중국에서도 대학생을 대상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있다. 사실 젊은이 교류는 이해득실에 기반한 비즈니스 관계보다 더 깊고, 더 오래 간다는 점에서 금호아시아나의 시도는 의미가 작지 않다. 박 회장의 말대로 한국어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프로 코리안(친한국)’이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이번에 박 회장이 맡은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이라는 직책은 약간 낯설긴 하지만, 행사의 최고책임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 측 실행위원장은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맡고 있다. 행사는 한국과 일본 측이 2인3각으로 준비를 하는데, 정치적인 외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한일화해가 이뤄졌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원장 佐藤勝·사토 마사루)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한일축제한마당은 올해로 11회째다.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인 2005년, ‘한일우정의 해’의 부대행사로 시작한 ‘한일축제한마당’이 그 뿌리다. 초기에는 양국 정부가 관여하고 예산도 지원했지만 지금은 민간기업과 단체, 지자체가 협찬을 받아 꾸려가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리를 잡아가고 내용도 풍부해지면서 한일 양국 간에 가장 큰 민간교류 행사라는 말을 듣고 있다. 매년 5만 명 이상이 축제를 즐기러 오니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하다.

5회째인 2009년부터는 한국 행사 후 1주일쯤 뒤에 일본에서도 비록 규모는 작지만 같은 행사를 열고 있다. 취지와 호응이 좋은 이런 행사를 한국에서만 여는 것이 아깝다는 지적을 일본 측에서 받아들였기 때문. 올해 한국 행사는 9월 19일 서울 신촌 연세로, 20일 서울 강남 COEX B홀에서 개최된다. 일본 행사는 9월 26, 27일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열린다. 박 회장은 26일 도쿄의 개막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올 2월 14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우호관광교류의 밤. 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 김수한 한일친선협회 회장, 박삼구 회장,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의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서청원 한일의원연맹 회장, 한 사람 건너 김태환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구보 시게토 일본관광청 장관. 뒷줄에 남경필 경기도지사,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 양무승 한국여행업협회 회장 등의 얼굴도 보인다. 사진 제공 금호아시아나그룹

수교 50주년인 올해에는 예년과 다른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다. 19일 연세로에서 여는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가 그것.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에 걸쳐 12차례 일본을 방문했던 국가사절단이다. ‘통신(通信)’은 ‘신의를 갖고 교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대천의 원수’라던 일본에 사절단을 보낸 것은 실리외교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일수교 50주년을 기념할 만한 역사적 사실로써 당시의 행렬을 재현하기로 한 것이다. 당일 행사장 주변에는 조선통신사의 이해를 돕는 홍보부스도 설치한다.

박 회장은 대기업의 총수이기도 하지만, ‘문화’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유가 없지 않다. 실제로 그는 문화와 문화인의 듬직한 후원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올 3월에는 한국 메세나협회장을 맡아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을 독려하고 있다. 2009년에는 광주에 클래식 음악홀, 연극과 뮤지컬 공연관, 갤러리와 영화관을 두루 갖춘 유스퀘어문화관을 만들어 예향 광주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다음달에는 모교인 연세대 내에도 금호아트홀을 완공해 개관한다. 또 예술의전당에 30억 원, 서울대에 50억 원의 기금을 기탁해 젊은 예술인들을 기르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와는 별도로 유망한 젊은 음악가를 발굴하고, 값비싼 악기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등의 활동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독일의 명품 브랜드 ‘몽블랑’이 수여하는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받기도 했다.

박 회장에게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시에 “나는 예술에는 재능이 없으나 예술을 돕는 일에는 재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박 회장은 광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무렵, 집으로 찾아온 예술계의 대가들을 보며 느낀 것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기억에 남는 인물로 의재 허백련과 소정 변관식 화백, 국창 임방울 선생 등을 꼽았다. 소정 선생이 글을 쓸 때는 열심히 먹을 갈았고, 임방울 선생이 창을 할 때는 직접 녹음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 경험한 그런 분위기가 예술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한일축제한마당의 실행위원장을 맡은 것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일축제한마당은 앞서 얘기했듯 처음에는 양국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양국 민간단체가 축제와 놀이 속의 춤과 노래, 공연, 음식, 복식 등을 소개하는 문화교류의 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자세한 프로그램은 한일축제한마당 홈페이지 www.omatsuri.kr 참조). 물론 문화교류가 주를 이루지만, 이를 운영하는 것은 민간기업과 문화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이어서 중층적인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예술과 예술가를 후원하는 박 회장이 실행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부터 일본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열고 있다. 박삼구 회장(뒷줄 가운데)은 올해도 입상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7월 28일 서울 중구 퇴계로 ‘한국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베풀고 격려했다. 사진 제공 금호아시아나그룹

이 행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젊은이들의 열정이다. 해마다 1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자원봉사자가 되겠다고 지원을 하는 데, 이 중 800여 명을 선발해 활용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아주 나쁠 때도 지원자는 줄지 않았다. 이는 박 회장의 말대로 젊은이들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박 회장은 “우호교류라는 것은 문화교류를 포함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것, 특히 젊은이들의 그런 모습은 매우 좋은 일이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상대국가의 문화를 향유하는 것도 당연히 권장할 만한 일이다”고 했다.

한일축제한마당은 민간교류의 장으로 바뀌긴 했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 관심을 끌 때도 없지 않다. 지난해 9월 14일 COEX에서 열린 제10회 한일축제한마당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처음으로 만난 것이 대표적. 당시는 양국 관계의 냉각으로 외교부장관과 주한 일본대사가 한 차례도 만나지 않은 것이 부정적 의미에서 화제가 되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이 축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만나자 양국 언론은 사진과 함께 긍정적 의미를 담아 크게 보도했다. 후에 벳쇼 대사는 두 사람이 만난 사진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을 거론하며 사진의 힘을 실감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일본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에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류팬인 아키에 여사의 행사 참석은 당연히 한국 언론에도 중요한 뉴스로 보도됐다.

박 회장은 그래서 이번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물론 아베 총리도 도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6월 22일 수교 50주년 행사가 정부 주최의 정치적인 이벤트였던 데 비해 한일축제한마당은 민간 주도의 문화이벤트라는 점에서 두 정상이 참석한다면 화해 분위기 조성에 또 다른 차원의 순기능을 할 것이라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한국이 의장국 자격으로 10월 말, 또는 11월 초에 열기로 한 한중일 정상회담과 그때 함께 열릴지도 모르는 한일 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박 회장은 대통령이 참석을 못한다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만큼은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중일 정상회담 얘기가 나온 김에 일본이 우려하고 있는 한국의 중국경사론, 중국과 한국의 역사연대에 대해 물어봤다. 박 회장은 2005년부터 한중우호협회장도 맡고 있어 중국에 대한 이해도 높다. 그는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과 그렇지 않은 중국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곤 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연한 질문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박 회장은 담담하지만 소신 있게 답했다. 이 답변에는 한일 간에 갈등도 많지만 국제사회에서는 협력할 것도 많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들어있다.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배울 것도 있고, 한국에서 배울 것도 있다. 세계는 지금 독불장군으로는 살 수 없는 시대다. 얼라이언스(alliance·동맹 또는 연합)가 필요하다. 한국의 입장을 일본이 이해하기 어렵고, 일본의 입장을 한국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도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양국이 지금처럼 과거에만 얽매인다면, 언제 갈등을 끝낼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박 회장은 개인적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한일도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가들이 할 일도 바로 그런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19일 서울 신촌 연세로, 20일 COEX B홀에서 열리는 ‘한일축제한마당 2015 in 서울’ 포스터.

한일축제한마당에 처음부터 관여하고, 지금은 명예운영위원장인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 김&장 상임고문은 역지사지에 호응하는 일본어로 불역유행(不易流行·후에키류코)이라는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불역은 변하지 않는 것, 유행은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두 개념은 상반되지만 시와 풍류 속에서는 합쳐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일본 전통시 하이쿠의 대가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생각이다. 다카스기 고문은 한국과 일본도 상대국의 변하지 않는 것은 그것대로 인정하면서, 변하는 것은 변하는 것대로 수용한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있다. 역지사지와 상통한다.

박 회장은 한일 관계를 넘어 한중일 관계에 대해서도 분명한 견해를 밝혔다.

“한중일 삼국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팍스 아메리카 블록과 EU를 중심으로 한 유럽 블록, 그리고 동아시아 블록이 존재한다. 그런데 동아시아 블록만 한중일 간의 갈등 때문에 블록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정립(鼎立)이라는 말을 꺼냈다. 정립이란 세 세력이 솥의 세 발처럼 맞서고 있는 것을 뜻하는데, 세 발은 네 발보다 안정성이 있다고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중일이 역내 정립을 이루고, 그 역내 정립이 미국,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정립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중일이 미래지향적인 협력구도를 갖춰야 한다는 게 박 회장의 논리다. 비록 요원하긴 하지만, 그의 이런 구상은 한중일 삼국의 지식인들이 모두 입에 올리는 이상적인 구도이기도 하다.

기자는 한일축제한마당이 시작된 이후 우연하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왔다. 시작한 지 몇 년간은 관람객으로 지켜봤고, 그 후 몇 년간은 후배 기자에게 취재를 지시하는 입장이었으며, 최근 몇 년간은 실행위원으로 미력하나마 준비과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게 있다. 이 축제가 성공하려면 3개가 있어야 하고, 3개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있어야 할 3개는 우호적인 한일관계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이런 행사를 통해 한일 관계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의지,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 축제는 그저 축제로 즐길 수 있는 여유이고, 없어야 할 3개는 이 행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행사의 가시적인 성과가 빨리 나오기를 기대하는 조급증, 두 나라를 아전인수격으로 비교하는 얄팍한 애국심이다.

박삼구 회장은 그런 의미에서 한일축제한마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 생색나지 않는 자리를 흔쾌히 맡았다는 점과 문화활동에 대한 평소의 기여, 축제의 다른 한 축인 일본에 대한 이해, 올 7월 한국방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될 정도의 국제적 감각 등이 그런 기대를 갖게 만든다.

누가 알겠는가. 한일축제한마당이 30년, 50년, 아니 100년 이상 계속 열림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갈등을 빚던 두 나라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행사로 평가하게 될지. 조선통신사에 대한 평가처럼. 그러나 한일축제한마당이 조선통신사와 명백히 다른 게 있다. 조선통신사는 정치 행사였고, 문화교류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를 대표하는 정사, 부사, 종사관이 중심인물이었다. 그러나 한일축제한마당의 주인공은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사장을 찾아주는 일반 시민들이다.

아 참, 한일축제한마당을 성공시키는 데 꼭 있어야 할 것을 하나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건 이 행사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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