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경제성장 70년]GDP 3만1000배 성장, 아시아의 기적

박형준 기자

입력 2015-08-14 03:00 수정 2015-08-14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헌신적 기업가 정신이 일궈냈다

국내총생산(GDP) 477억 원,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00원.

한국은행에 통계자료가 있는 가장 과거 시점인 1953년의 한국 경제 모습이다. 하지만 시계를 2014년으로 맞추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GDP 1485조 원, 1인당 국민총소득 2968만 원으로 각각 약 3만1000배, 약 1만4800배로 급증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0년 11월 한국 경제 성장을 보도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기적(Asia‘s Latest Miracle)’이라고 평가했다.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끈 주인공은 기업이다. 광복 직후 근대적 의미의 기업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은 경성방직의 김연수, 화신백화점의 박흥식 정도였다. 그 둘을 제외하면 다른 기업가들은 정미소나 쌀가게, 식료품 판매, 양조장, 포목상, 보따리 무역상을 하는 수준이었다.

세계 제일의 전자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의 이병철 창업주는 광복 무렵 정미소와 양조장, 무역을 하는 삼성상회를 운영했다. LG그룹의 구인회 창업주는 고향 경남 진주에서 포목상과 식료품점을 했다. 현대건설의 정주영 창업주는 쌀가게에서 배달 점원으로 일하다 소규모 자동차 수리점을 열었다.

하지만 현재 삼성, 현대차, LG 등은 석유 파동, 군사정권,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숱한 명장면도 남겼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며 질(質) 중심의 개혁을 주문한 신경영 선언을 가장 역사적인 장면으로 꼽고 있다. 그 후 삼성은 본격적으로 세계적 기업과 경쟁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대자동차는 역사적 명장면으로 2010년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가 가동된 것을 꼽고 있다. 이 덕분에 현대차는 전 세계 완성차 업체로는 유일하게 철판 생산에서 완성차 생산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룰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1996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SK그룹은 “CDMA 상용화는 20년 전 창조경제와 맞먹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LG는 1995년 ‘LG’ 브랜드 출범을 역사적 장면으로 꼽는다. 그 후 1994년 30조 원대이던 매출이 지난해 5배로 늘어난 150조 원대가 되는 등 지속적 성장을 했다.

포스코는 1973년 포항제철소 완공을 역사적 장면으로 여기고 있다. 포항제철소 건립으로 대한민국 전체에 좋은 품질의 철강재를 공급하면서 조선 가전 자동차 등 국가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는 제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GS는 LG에서 계열분리 돼 새로운 그룹으로 한국 기업사에 등장한 2005년을 가장 의미 있는 역사로 꼽고 있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구인회 씨와 허만정 씨가 함께 세운 이후 3대째 동업을 해오다가 2005년 1월 GS가 계열분리 됐다.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구 창업주의 가르침이 이어지면서 LG와 GS그룹은 계열분리 당시 어떤 잡음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1974년 6월 28일 울산 본사에서 열린 ‘애틀랜틱 배런’호 명명식(命名式)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이 배는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를 짓기도 전에 수주해 온 배로, 국내 조선업계의 상징성을 띤 선박이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광복 후 트럭을 한 대 구입해 인천에 ‘한진상사’란 운송 겸 무역회사를 차리고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운송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 육상과 해상 운송으로 폭을 넓혔다. 급기야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고 항공운송업에까지 진출하면서 육해공 전방위 물류전문 기업으로 거듭났다. 한진은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날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여긴다.

한화는 1958년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성공한 점을 명장면으로 꼽는다. 다이너마이트 국산화는 폐허가 된 국토의 전후 재건사업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각종 항만 도로 대교 건설 등에 큰 공헌을 했다.

KT는 1980년대 중반 국산 전전자(全電子)교환기 TDX의 개발로 대규모 전화 보급을 가능케 한 역사를 최고 명장면으로 꼽고 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