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빛바랜 ‘접속’의 추억? 우리 아직 안 죽었어

곽도영 기자

입력 2015-06-20 03:00 수정 2020-04-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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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천리안, 유니텔

PC통신 유니텔(왼쪽 위부터 1996-2004-2015년)과 천리안(2006-2010-2015년)의 시대별 변천사. 투박한 파란색 화면은 사라지고 수많은 이용자들은 떠났지만 아직까지 천리안과 유니텔의 서비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야밤에 혼자 채팅하려는데 ‘삐’ 하는 모뎀 소리가 너무 크잖아. 사운드 조절도 안 되고. 안방에 그 소리 안 들리게 하려고 이불로 컴퓨터 본체를 둘둘 만 다음에 켜곤 했어.”(1985년생)

“90년대 후반, 학생운동이 거의 막바지 불꽃을 태울 때쯤 유니텔, 나우누리에 폐쇄방(회원 전용 게시판)이 있었어. 어디 어디로 이동하라는 내용, 집회 일정, 그런 것들을 경찰 피해서 은밀히 공유했었지.”(1979년생)

파란 화면에 납작한 흰색 고딕 글자, ‘삐∼∼∼’ 하고 요란하게 접속을 알리는 모뎀 소리가 울리며 화면이 선명해지면 묘하게 두근거렸다. 1986년 대한민국 ‘원조 PC통신’ 천리안의 등장이었다. 이후 1992년부터 2년 간격으로 하이텔과 나우누리, 유니텔이 잇달아 나왔다.

내가 쓰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첫 아이디(ID)는 엄청난 고심 끝에 만들어졌다. 밤새 채팅을 하다가 전화요금 폭탄에 엄마에게 혼쭐이 나는 날도, 모르는 이와 삐삐 번호를 교환한 뒤 10원짜리 동전을 들고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설렘도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 1화에서 등장한 데스크톱 PC 모니터와 파란색 초기화면은 7080세대의 강렬한 향수를 이끌어냈다. 2015년 현재 하이텔과 나우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조사기업 랭키닷컴에 따르면 유니텔을 방문하는 건수는 한 달 7만 건, 천리안은 22만 건이다.

희미하지만 놓칠 수 없는 추억

천리안은 1984년 한국데이터통신의 전자사서함 서비스로 출발했다. 통합 PC통신으로 출범한 뒤에도 e메일 서비스는 채팅과 함께 천리안의 주축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종합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이 등장한 뒤 주인공 자리를 내줬다. 천리안은 뒤늦게 포털로 서비스를 개편했지만 이미 잃어버린 젊은층 이용자들을 돌이킬 수 없었다. 직원들도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현재 천리안을 서비스하는 미디어로그 김현승 팀장은 “당시 천리안의 e메일 서비스를 구축했던 사람이 다음이나 네이버로 넘어가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포털 천리안은 이후 주 이용층인 4050세대에게 초점을 맞췄다. e메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가끔 들어오는 이들을 붙들기 위해 영화나 만화 등 ‘킬링타임’용 콘텐츠에 주력했다. 다른 포털과 달리 게임 서비스 중에서도 바둑 대전 같은 보드게임류가 선호됐다.

2000년대 초반 3000만 명을 넘어가던 이용자는 현재 250만 명이 남았다. 그중에서도 실사용자는 유료 e메일 서비스 가입자 5만 명을 포함해 수만 명 수준이다. 하지만 e메일 서비스만 유지하는 데도 각종 보안 장치와 인증 장치, 서버 비용이 고스란히 들어가 총 연간 유지비만 30억∼40억 원이 든다.

그럼에도 서비스를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e메일 서비스의 시초를 열었던 천리안인 만큼 1990년대 무역업계 임직원들 중 ‘@chollian.net’ 주소를 아직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이들이 있다. e메일 주소를 바꾸면 20여 년 동안 국내외를 오가며 쌓아온 거래처와 인맥들이 끊길 수도 있다. 김 팀장은 “데이콤 시절부터 천리안 주소를 써왔던 기업 임원들이나 지방자치단체 고위공무원분들이 20년째 그 주소를 쓰고 있다”며 “전직 데이콤 상무, 전무들이 아직도 e메일 서비스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전화를 해서 조치를 취해 드리곤 한다”고 말했다.

유니텔도 마찬가지였다. 1996년 삼성SDS에서 처음 PC통신과 e메일 서비스를 주력으로 유니텔을 개발한 후 1997년과 1998년 삼성물산 등 무역 계열사에서 근무했던 임직원들은 해외 업체들에 유니텔 e메일 주소를 적어서 보냈다. 현재 유니텔에 등록된 e메일 대부분은 비즈니스 용도가 대부분이다. 유니텔을 현재 서비스하는 다우기술 정혁남 부장은 “e메일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면 저희 측에서 인지하기 전에 즉각 고객센터를 통해 문의 전화가 걸려 온다”고 말했다.

2003년 다우기술이 유니텔 서비스를 인수하면서 유니텔은 커뮤니티 중심 포털을 지향하고자 했다. 검색 중심인 일반 포털과 차별화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유료 e메일 주소를 지키려는 4050세대 이용자들을 위해 프리미엄 콘텐츠도 계속 개발해 갔다. 정 부장은 “요즘 e메일을 누가 5000원씩 주고 사용하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4050세대 가입자들의 입장에서는 20년 된 ‘내 주소’를 지키면서 친숙한 홈페이지를 통해 만화와 웹툰, 주문형비디오(VOD)를 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PC통신 뿌리 위에서 자라난 효자 서비스들

천리안과 유니텔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하이텔과 나우누리의 정리를 지켜보면서 쇄신을 다짐했다. 한국 통신과 인터넷 역사의 발전과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니텔은 삼성SDS에서 분사했다가 2003년 종합 소프트웨어 콘텐츠 기업 다우기술에 인수돼 계열사가 됐다. 이후 2008년에 다우기술로 공식 합병됐다.

서비스 부문에서 자연스럽게 유니텔은 다우기술의 핵심이 됐다. 유니텔에서 파생된 서비스들은 현재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정 부장은 “유니텔 서비스 안에서 인큐베이팅하거나 내부 이용자 반응을 보고 판단해 독립해 나간 서비스가 많다. 유니텔 하나만 보면 손익 맞추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지만 회사 전체로 보면 중요한 테스팅베드이자 자산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다우기술이 제공하는 서비스인 엔팩스(Enfax), 다우페이가 대표적 사례다. 비즈니스 e메일 이용자가 많았던 유니텔의 인수는 다우기술이 인터넷 팩스 사업인 엔팩스에 착안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이동통신사 가입자 수가 폭증하기 시작할 무렵 사업은 호황을 맞았다. 가입자 정보를 팩스로 주고받던 초기 이동통신사는 다량의 팩스 정보를 인터넷 e메일 주소로 받아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엔팩스 덕을 크게 봤다.

이창원 다우기술 CNC사업팀 팀장은 “이후 전국 가스충전소에 공시 가격을 보내는 데 사용되는 등 엔팩스는 아직도 인터넷 팩스 시장의 8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며 “연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 사업”이라고 말했다. 유니텔에서 게임이나 콘텐츠 등의 결제에서 시작한 인터넷 결제 솔루션 다우페이도 다우기술의 대표 서비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커뮤니티의 신뢰도와 통신 인프라도 신사업 구축에 기반으로 작용했다. 유니텔은 우수한 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전국 교사들이 일정 시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교원 연수 사업을 초창기부터 끌어왔다. PC통신 세대가 대부분 남아있는 교직에서는 지금도 ‘유니텔 연수원’으로 불리는 서비스다. 민간 교원 연수 서비스 사업자 10여 곳 중 유니텔 연수원은 시장 점유율 3, 4등을 다투고 있다. 이 팀장은 “이런 서비스들 대부분이 처음 유니텔 플랫폼에서 이뤄졌다”며 “플랫폼 테두리 안에서 검증되고 이것저것 실험을 진행하면서 고도화 단계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천리안도 마찬가지다. 천리안 플랫폼에서 파생된 서비스는 웹하드 형태의 다운로드 서비스인 디스크팟, 소프트웨어 자료실 모음 서비스 심파일 등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승승장구하던 디스크팟은 현재 서비스를 종료했다. 하지만 심파일은 네이버 전속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임대 사업을 맡는 등 아직 건재하다. 영화 수입 배급 영역과 ‘만화 1번지’, 클래식 교육을 지원하는 온라인 강의서비스 ‘클래식팟’ 등 콘텐츠 사업 영역 또한 천리안의 문화 커뮤니티 배경에서 나올 수 있었다.


서비스 종료는 없어

다우기술 5명과 미디어로그 12명. 현재 유니텔과 천리안 서비스를 지키는 직원 수다. ‘응답하라 1997’ 시리즈로 복고 문화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 두 회사 회의실에서는 모두 “90년대식으로 개편해 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많았다고 했다. 홈페이지를 파란 화면에 흰 텍스트 디자인으로 바꾸고 ‘삐’ 하는 모뎀 소리도 효과음으로 넣자는 논의도 나왔다. 하지만 전사 차원에서 모아 검토했던 아이디어들은 결국 비용 문제가 너무 커서 실현되지 못했다. 김 팀장은 “이렇게 하면 과연 고객들이 다시 올까라는 의문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찾아오는 이가 있는 한 서비스 종료는 생각지 않고 있다고 했다. 천리안과 유니텔을 서비스한 곳 모두 오늘날의 국내 주류 대기업에서 태동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져 나와 벤처와 대기업의 중간지대를 이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의 사업 다각화를 일으킨 받침돌이자 20년이 넘게 찾아온 이용자들과 함께 커온 서비스로서의 상징성을 버릴 수 없었다. 수십억 원의 유지비용을 내고 손익 비율을 겨우 맞추면서도 서비스를 종료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 팀장은 “천리안은 PC통신 초창기를 선도했던 주력 사업이자 현재 미디어로그의 대표 웹 서비스”라며 “서비스를 원활히 유지해 20년이 넘은 이용자들에게 아직까지 고객 만족을 드리고 있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지금 다우기술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업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몇 안 되는 회사가 됐다”며 “우리가 유니텔을 통해 그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모바일 시대에 대응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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