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1건 없고, 매출 3분의 1토막… 소비 위축 넘어 빙하기로

이세형기자 , 한우신기자 , 홍수용 기자

입력 2015-06-19 03:00 수정 2015-06-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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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한달]메르스에 쓰러지는 한국경제

서울 용산에 사는 김모 씨(28)는 8월 초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나려 했지만 최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커진 뒤 계획을 접었다. 김 씨는 “지난달 사뒀던 물놀이 용품을 모두 환불했다”고 말했다.

수출 감소와 투자 부진이라는 ‘기저질환’으로 고전하던 한국 경제가 메르스 충격에 휘청대고 있다. 특히 회복 기미를 보이던 소비가 급격히 꺾이며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18일 메르스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지난달 20일 이후 한 달 동안 백화점 매출, 할인점 매출, 철도 여행객 수, 항공 여행객 수, 물놀이 용품 판매액, 영화관람객 수, 놀이공원 입장객 수, 프로야구 관중 수 등 각 분야의 소비동향을 분석한 결과 모든 지표가 일제히 감소세를 나타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메르스 감염 경로가 대부분 파악된 만큼 현재의 불안감은 과도한 것이라고 조언하지만 경제심리는 계속 얼어붙는 것이다. 이날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메르스 사태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는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명동 상인 “의료진 힘내세요” 응원 현수막 1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메르스 사태 해결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는 명동 거리에 이런 의료진 응원 현수막 5개를 내걸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3개월 이상 소비 위축 우려

수출 감소와 투자 부진에 허덕이는 산업계는 메르스 사태로 ‘2차 쇼크’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내놓은 ‘메르스 확산에 따른 중소기업 경영애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대상 기업 615곳 중 330곳이 “메르스로 인해 경영에 타격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소기업들은 현 상황이 지속되면 지난해 상반기(1∼6월)에 비해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평균 26.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종별로는 숙박 및 음식점업 관련 기업 10곳 중 9곳이 메르스로 타격을 입었다고 답해 최대 피해업종으로 나타났다. 이어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산업(61.3%), 교육서비스업(58.7%)의 타격이 컸다.

소비 현장은 혹한기를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 소비’의 동향을 반영하는 신세계백화점의 이달 1∼17일 기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할인점인 이마트의 매출액은 7.9% 줄었다.

온라인 쇼핑몰인 옥션에 따르면 이달 들어 17일까지 남녀 수영복, 수영모, 비치볼, 원반 등의 판매량이 작년 동기 대비 7∼39% 감소했다. 메르스 사태가 이달 안에 진정돼도 7, 8월 휴가철까지 소비에 부정적 영향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미 ‘소비 1번지’인 서울 중구 명동은 활력을 잃은 상태다. 18일 오후 명동 거리 옷가게, 구두 매장, 식당에서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명동의 한 고깃집에서 일하는 황모 씨(46·여)는 “과거 10년 동안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예약이 10건은 있었는데 지금 하나도 없다”고 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한 여성 의류브랜드 ‘에고이스트’의 정아미 매니저는 “6월 하루 평균 매출은 5월의 3분의 1 정도”라며 “중국인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여행객이 크게 줄어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 포털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7일까지 국내 항공사 7곳(대형항공사 2곳, 저비용항공사 5곳)의 여객 수는 492만8774명으로 지난달 같은 기간에 비해 110만5650명(18.3%) 줄었다. 에버랜드 방문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60% 수준으로 감소했다.

LG경제연구원은 메르스 사태가 이달 중 진정된다고 해도 소비위축 현상이 최소 한 분기(3개월) 이상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메르스 사태가 1, 2개 분기(3∼6개월) 이상 지속되면 소비가 직전 연도보다 감소하는 기간이 1년 정도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공포 잠재울 리더십 없는 정부

사회 전반에 메르스 공포감이 증폭되면서 국민들은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는 극도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는 정부의 리더십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정확한 원인 진단, 투명한 정보 공개, 검증된 처방 제시, 일관된 정책추진’의 단계를 거쳐 국민적 지지를 받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를 맞아 한국 정부는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전 과정에 걸쳐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했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은 일반 국민들도 감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소비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소비위축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정부의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소비자 불안심리가 정보 부족에서 시작된 만큼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분석결과를 공개한 뒤 정부가 사태해결의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정부가 무엇보다 노동, 금융, 교육, 공공부문 등 4대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거시경제실장은 “세계 경기가 살아날 때 수출을 늘리고, 그에 힘입어 내수까지 살리려면 지금 힘들더라도 구조개혁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이세형/세종=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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