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말이 참 많은 세상… 그대, 찬란한 오해를 그치시라

박민우기자

입력 2015-06-15 03:00 수정 2015-06-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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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지도 모른다. ―무소유(법정·범우사·1999년) 》

타인의 속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같이 문자메시지로 소통하는 시대에는 대화가 이해보다는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가 더 많다. 상대방의 얼굴과 목소리에 나타난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덧붙여진 웃음(^^)이나 눈물(ㅠㅠ) 등 감정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한다.

남을 이해하려는 욕망은 더 큰 오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은 “연인들은 자기만이 상대방을 속속들이 이해하려는 맹목적인 열기로 하여 오해의 안갯속을 헤매게 된다”며 ‘자기 나름의 이해’를 경계했다.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는 연인들도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면을 보이면 사랑이 한순간에 깨지기도 한다.

연인의 속마음보다 복잡 미묘한 것이 세상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1950년)에서는 일본 전국시대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두고 살인 용의자와 사무라이의 아내, 목격자, 사무라이의 영혼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하나의 현상이 일어나도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진실’이 달라진다.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은 서로 다른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늘어났다. 정부와 여야, 시민단체, 언론은 무상교육의 개념과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달리 해석한다. 사회와 정치를 해석해주는 시사토크 프로그램 속의 평론가들도 서로 다른 말을 쏟아낸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 속 ‘침묵의 의미’라는 글에서 “현대는 말이 참 많은 시대”라고 했다. 많은 현대인들이 침묵과 자기 사유의 과정 없이 던져진 말들을 그대로 주워서 앵무새처럼 흉내 내 떠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기 나름의 이해와 무책임한 말들을 버리고 오래 침묵해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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