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한다면 소득:법인:부가세, 3:2:5 비율이 바람직”

손영일 기자

입력 2015-06-04 03:00 수정 2015-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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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본보-건전재정포럼 ‘세제개편’ 토론회


건전재정포럼과 동아일보, 종합편성TV 채널A는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재정건전성 확보와 경제활성화를 위한 세제개편 과제’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 김승래 한림대 교수,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성명재 홍익대 교수, 이우성 한림대 객원교수(왼쪽부터)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복지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세출 조정도 중요하지만 각종 조세가 소득 분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입 측면에서도 조정이 필요합니다.”(건전재정포럼 공동대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건전재정포럼과 동아일보, 종합편성TV 채널A가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재정 건전성 확보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적절한 세입 기반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조세정책이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조세 개편 때 인구 고령화, 국제적 조세경쟁, 환경규제 강화 등 미래 환경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며 법인세율 인상 등 특정 세목에 매몰된 논의가 아니라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여러 주요 세목을 적절히 배합하는 ‘조세 믹스(tax mix)’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다양한 세목의 조합 필요”

이날 주제 발표에 나선 김승래 한림대 교수(경제학)는 “중장기적으로 (세목 비중을 조정하는) 포트폴리오 형태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며 ‘4―6―3―2―5 룰(rule)’을 제안했다. 세출 구조조정과 증세를 ‘4 대 6’의 비율로 나눠 재원을 조달하고 늘어나는 조세 부분과 관련해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3 대 2 대 5’의 비율로 부담하도록 배정하자는 것이다. 단일 세목에만 의존하는 증세를 추진하면 과세의 효율성과 형평성 가운데 한 가지 효과만 나타나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내기 어려운 만큼 적절한 균형을 찾도록 다양한 세목의 배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 역시 암묵적으로 조세 믹스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구조조정뿐 아니라 담뱃값 인상, 세액공제 전환 등 세법 개정,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한 기업의 실효세율 강화 등을 통해 ‘사실상 증세(增稅)’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조세 믹스를 지금처럼 산발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큰 그림을 그린 뒤 사회적 합의를 거쳐 명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양한 세목에서 세율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이우성 한림대 객원교수는 “연말정산 파동에서 보듯 국민 대부분은 세율 인상을 통해 세수를 늘리는 걸 싫어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소득세, 부가가치세, 소비세 등 규모가 큰 세목을 조정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세금에 대한 국민의 오해와 편견이 크다”며 “부가가치세 인상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하는데 지금은 심각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시대인 만큼 겁을 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 “한국, 소득 재분배 효과 미미”

조세·재정지출로 인한 한국의 소득 재분배 효과는 8.4%(지니계수 변화율 기준)로 미국(15.2%) 영국(34.6%)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편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소득에 대한 누진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성명재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소득세나 부가가치세의 누진도만 높인다고 해서 반드시 소득 재분배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누진 부담 구조를 가진 관련 세목의 세수 규모 자체를 키우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 최상위 소득구간인 10분위의 소득세 누진도가 한국보다 낮지만 소득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효과는 한국보다 크다. 결국 소득세 최고 구간의 세율을 올리는 방식으로는 소득 재분배 효과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면세점을 낮춰 소득세를 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지만 이 또한 조세 저항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 2013년 말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세법 개정으로 소득 재분배 효과가 개선됐으나 여론 악화로 올 5월 연말정산 보완책이 마련되면서 그 효과가 반감됐다. 성 교수는 “제도를 왜곡할 바에는 차라리 소득세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게 차선책”이라며 “향후 5∼10년은 현행 소득세 과세체계의 근간을 유지한 뒤 장기적으로 물가연동 세제를 도입해 소득세제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부가가치세 증세 과정에서 저소득층의 세 부담이 커지는 역진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지만 재정 지출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부가가치세가 역진성을 띤 것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찾아보자는 주장도 나왔다.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전 관세청장)은 “외환위기 전에는 부가가치세의 역진성이 거의 없었는데 그 이후에 역진성이 커졌다”며 “경제 상황이나 소비 행태가 많이 변했는데 세제는 바뀌지 않다보니 역작용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조세를 포함해 전반적인 한국의 경제 시스템을 재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반장식 전 기획예산처 차관 등 경제 분야 원로들이 다수 참석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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