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단통법과 IT강국

송진흡기자

입력 2015-05-18 03:00 수정 2015-05-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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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 산업부 차장
토요일이었던 16일 오후 TV 채널을 돌리다가 생소한 스마트폰을 봤다. SK텔레콤이 롯데홈쇼핑을 통해 팔고 있는 ‘아이돌 착(idol Chac)’이라는 모델이었다. 삼성전자나 LG전자에서 새로 내놓은 제품인가 싶었지만 제품 어디에도 삼성이나 LG 로고가 붙어 있지 않았다. 어느 회사 제품인지 궁금해서 방송 화면에 나오는 자막을 살펴봤지만 제조업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호기심이 생겨 롯데홈쇼핑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거기에는 ‘TCT모바일’이라는 중국 회사 제품이라는 짧은 설명이 나와 있었다. 중국 스마트폰이 수입됐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TV홈쇼핑에서 파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지난해 10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된 이후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마니아층이 두꺼운 애플 ‘아이폰’을 제외하고는 ‘외산폰의 무덤’이라고 불렸던 국내 시장에 중국산 중저가 제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조금 제한으로 프리미엄 제품 위주인 국산 스마트폰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생긴 틈새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국내업체들도 변화가 많았다. 보조금 제한이 생기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국내 3위 스마트폰 업체인 팬택은 회사 매각과 청산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 구도를 바꾸기 위해 단통법 도입에 찬성했던 LG전자도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보조금 제한으로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야심 차게 개발한 전략 스마트폰 ‘G4’ 판매가 당초 예상보다 저조하기 때문이다.

단통법 도입에 극렬히 반대했던 삼성전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신제품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가 국내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보조금 제한 때문에 판매 열기가 뜨겁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단통법 시행에 따른 보조금 제한으로 국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얼어붙은 게 ‘IT 강국’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실 한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첨단 기능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를 겨냥한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보조금 제한으로 국내 소비자들이 첨단 제품을 찾지 않는다면 ‘국내 소비자 요구→기술 개발→세계 시장 진출’이라는 선순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해외에서 중국 업체들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업체들이 프리미엄 제품 개발 동력까지 약화되면 노키아나 소니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소비자들도 불만이 많다. 특히 첨단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젊은층은 “정부가 이동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을 막아 최첨단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하는 게 말이 되냐”며 “현 정부가 정치노선은 우파지만 이동통신정책은 하향 평준화를 지향하는 좌파”라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국내 이동통신사의 올해 1분기(1∼3월)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급격히 호전된 것으로 나오자 인터넷에는 “단통법이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을 넘어서 ‘단번에 통신사 배를 불린 법’이 됐다”라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최근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는 후배 기자가 한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 경쟁을 막는 단통법을 가만히 놔두고….”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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