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잡스, 놀랍지 않으세요?

김상수기자

입력 2015-03-16 03:00 수정 2015-03-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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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산업부 차장
스티브 잡스가 관속에서 일어난다면 지금 돌아가는 판을 보고 놀라 자빠질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지?’ 그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인 아이폰의 화면이 믿을 수 없게 커진 사실에 놀라고, 스마트폰이 해내고 있는 수많은 기능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화면은 손에 쏙 들어갈 수 있게 3인치대로 작아야 돼. 그래야 엄지손가락으로 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거든. 내 사전에 대(大)화면은 없어. 그건 몰상식한 모방꾼(Copycat)들이나 하는 일이야.” 잡스의 철학은 이랬다.

하지만 2011년 그가 사망한 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2012년 4인치짜리 아이폰5를 내놓더니 지난해 각각 4.7인치와 5.5인치짜리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로 대박을 쳤다. 지난해 4분기에만 7446만8000대를 팔아치웠다. 시간당 3만4000대씩 팔린 것이다. 분기 매출 80조 원에 영업이익 19조 원이라니, 세상에….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기업은 없었다. 아이폰6의 히트에 대화면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잡스조차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성의 휴대전화 갤럭시가 아이폰을 모방한 것이었다면 애플의 대화면 전략은 갤럭시를 따라한 것이다. 글로벌 추세가 대화면임을 간파한 팀 쿡은 잡스의 원칙과 철학도 무시한 채 상대방의 강점을 접목해 성공을 이뤄냈다.

잡스가 놀랄 일은 또 있다. 그가 내놓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하나가 산업 간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산업 컨버전스(융·복합)는 2000년대 들어 눈에 띄는 흐름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대세가 됐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의 컨버전스는 비약적이다.

아이폰이 처음 나온 2007년, 세상은 터치스크린으로 인터넷과 e메일, 음악 다운로드, 동영상 촬영 등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나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5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쇼핑도 하고 지하철도 탈 수 있다. 결제가 가능하니 신용카드도 필요 없다(아마 조만간 플라스틱 신용카드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오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물과 인간이 소통하게 됐다. 내가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 혈압은 높은지 체크해준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LG전자는 스마트워치로 차량의 시동을 걸거나 문을 여닫는 기능도 선보였다. 조만간 스마트폰이 대형마트에서 내가 뭘 사야 할지, 심지어 연애상대로 누가 적당한지 알려줄 것이다.

‘연결’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종(異種)산업이라는 과거의 구분도 무의미해졌다. 병원, 자동차, 카드, 엔터테인먼트, 유통, 통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기업들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서로 모방을 통한 혁신이 성할 것이다. 삼성이 핀테크업체 ‘루프페이’를 인수한 것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인수합병(M&A)도 활발해질 게 분명하다. 사고(思考)를 유연하게 바꾸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 하나가 불과 8년 만에 바꾼 변화다.

이 모든 걸 과연 스티브 잡스는 예상했을까.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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