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내주고 덜 얻어낸… 한중 ‘반쪽 FTA’

손영일 기자 , 이상훈기자 , 정세진 기자

입력 2015-02-26 03:00 수정 2015-0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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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명 직후 영문협정본 공개

《 “내준 게 많지 않으니 얻은 것도 많진 않습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중국은 자동차 석유화학 등의 개방에 난색을 표하고 한국은 농수산물 시장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

25일 한중 FTA 가서명 직후 공개된 영문 협정본을 들여다보면 양국 간 ‘기(氣) 싸움’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로 민감한 품목은 개방 시기를 최대한 늦추거나 양허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다만 개성공단의 특혜관세 혜택을 늘리고 한국 건설업체의 중국 시장 진출 물꼬를 튼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 상위 10대 수출품 중 관세 즉시 철폐는 1개

협정문에 따르면 중국은 연간 수입액 기준 44.0%(733억 달러), 한국은 51.8%(418억 달러)에 해당하는 관세를 FTA 발효 즉시 철폐한다.

하지만 이 수치의 상당 부분은 ‘허수’에 가깝다. FTA 양허안에 포함된 품목을 기준으로 중국은 38.8%, 한국은 41.9%에 대해 지금도 관세를 매기지 않고 있다. 반도체, 노트북, 액정표시장치(LCD) 등 전자기기 품목이 대표적이다.

양국의 주력 제품만 놓고 보면 FTA 효과는 더욱 미미하다. 국제 품목분류 코드(HS코드 6자리)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 상위 10개 품목 중 관세 즉시 철폐 품목은 1개뿐이다. 중국은 한국의 1위 수출품인 LCD 패널에 대해 발효 후 8년간 5%의 관세를 유지하고 9년 뒤부터 2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한다.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크실렌(6위)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고 자동차부품은 발효 후 10년이 지나서야 관세가 사라진다. 한국도 중국산 LCD 패널과 전선 등에 대해 ‘10년 내 단계적 철폐’로 개방 수위를 낮췄다.

아예 빗장을 열지 않은 품목도 많다. 중국은 ‘자국산업 육성’을 이유로 아연도금 강판, 굴착기, 2차전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을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도 면직물, 전동공구 등 공산품 일부와 쇠고기, 돼지고기, 감귤, 사과, 배, 마늘, 양파, 고추, 인삼 등의 농산물을 개방 대상에서 뺐다.

다만 양국 간 경쟁이 덜한 전략적인 부분에서는 큰 틀에서 개방도를 높였다. 중국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인 폴리우레탄(즉시 철폐), 이온교환수지(5년 내 철폐) 등과 에어컨·진공청소기(10년 내 철폐) 등을 개방했다. 한국은 경쟁력 유지가 어려운 의류(10∼15년 내 철폐)와 중소기업들이 원료로 수입하는 합성수지(즉시 철폐) 등의 빗장을 열었다.

구체적인 양허안이 공개되자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공작기계, 플랜트부품 생산업체와 식품업계 등은 관세 철폐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것을 기대했다. 반면 석유 및 철강업체, 자동차부품업체 등은 관세 철폐 기간이 길고 개방 폭이 낮아 실망감을 드러냈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제품은 무관세로 한국 철강시장을 잠식하고 심지어 자동차 강판까지 밀고 들어오는데 우리 주력 제품은 FTA 대상에서 빠져 반쪽에 그쳤다”고 말했다. 애초 수출품 대부분이 무관세인 전자업계 역시 FTA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 ‘메이드 인 개성’ 특혜관세 확대

개성공단 제품에 대해 관세 혜택의 폭을 넓힌 것은 한중 FTA의 큰 성과로 꼽힌다.

‘메이드 인 개성’을 한국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미 FTA 등과 달리 한중 FTA에서는 개성공단 생산제품 중 310개 품목에 대해 협정 발효와 동시에 특혜관세 혜택을 부여했다. 유럽자유무역연합(EFTA·276개) 인도(108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100개) 등과의 FTA와 비교해도 특혜관세 인정을 가장 많이 받았다. 양국은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꾸려 FTA 발효 이후 북한에 역외가공지역이 추가로 생겼을 때 특혜관세를 부여할지도 논의하기로 했다.

상하이에 진출한 한국 건설업체들을 위한 조항도 삽입했다. 한중 FTA에 따라 상하이 자유무역구(FTZ)에 설립된 한국 건설업체는 상하이에서 외국 투자비율 요건의 규제를 받지 않고 합작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한국 기업이 50% 이상을 투자한 건설업체에 한해 중국에서 수주가 허용된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향후 열릴 후속협상에서 한국 건설업체들의 혜택을 늘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전문가들 평가 엇갈려 ▼


“민감품목 대거 빠져 최소 5년 지나야 성과”
“중국시장 워낙 커서 낮은 개방에도 큰 효과”


전문가들은 양국이 민감한 품목을 대거 FTA 대상에서 제외해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최소 5년이 지나야 관세 혜택이 본격화되기 때문에 당장 눈에 띄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중 FTA 발효 후 2년 내에 개시되는 서비스·투자 후속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정식서명이 되기 전까지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시장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개방 수준과 상관없이 성과가 있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농수산물, 중소기업 상품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과감한 개방을 하지 못했다”면서도 “중국이 한국의 가장 큰 시장인 만큼 한중 FTA를 통해 개방된 수준에서도 정부와 기업이 잘만 활용하면 기대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이상훈·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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