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법앞에 평등” 구국영웅 내친 베네치아 시민들

백연상기자

입력 2015-02-09 03:00 수정 2015-02-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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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란 이제 태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반대로 그와 같은 걱정을 잊고 단호히 판결을 내리는 나라라면 언제고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침묵하는 소수(시오노 나나미·한길사·2010년) 》

21세기의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낭만이 흐르는 관광 중심지다. 시계추를 되돌려 14세기 도시국가 베네치아로 가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돈이 흐르는 무역 중심지를 만나게 된다. 당시 독점 무역 체제를 갖춘 베네치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제노바였다. 두 도시국가는 이권을 둘러싼 충돌이 잦았다. 베네치아의 카를로 제노는 에게 해의 테네도스 섬에서 제노바인들의 공격을 받은 베네치아인들을 지켜 내 영웅이 됐다. 그 후 제노는 많은 승전보를 올리며 베네치아 해군 그리스 지역 사령관, 해군 총사령관, 프랑스 대사까지 지내며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침묵하는 소수’는 이탈리아에서 수십 년간 거주하며 고대 로마사와 르네상스를 연구한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에세이집이다. 1406년 1월 20일 당시 70세가 넘은 제노가 갑자기 체포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제노는 파도바의 군주 프란체스코 카랄라에게 400두카토를 받은 혐의를 받았다. 400두카토는 현재 가치로 8000만 원 정도 된다. 당시 국정에 관여한 귀족들은 법에 따라 외국인들과 상업 이외의 금전 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 제노의 변호사는 “카랄라가 밀라노 공에게 잡혀 있을 때 빌려 준 돈을 받은 것뿐이다”라고 항변했지만 재판을 담당한 10인 위원회는 “사소한 잘못을 눈감으면 법의 정당성이 흔들린다”며 그에게 2년 실형에 공직 영구 박탈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수많은 업적을 거둔 구국 영웅을 내친 베네치아 사람들도, 그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인 제노도 먼저 생각한 것은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다. 베네치아는 이런 전통에 힘입어 1797년 나폴레옹에게 함락되기까지 1000년 넘게 국체(國體)를 유지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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