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판장 열고… 농사펀드 만들고… 도시에서 농업 일군다

김범석기자 , 김유영기자

입력 2014-11-24 03:00 수정 2014-1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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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농업에서 미래를 연다]<中>부가가치 올리는 ‘도시형 농사꾼’

천재용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천재박 씨(왼쪽)가 21일 서울 롯데백화점 강남점 내 ‘농부로부터’ 매장에서 농민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촌 사이인 이들은 농민과 도시민 사이의 ‘다리’ 역할을 꿈꾸며 친환경 농산물 판매점인 ‘농부로부터’를 운영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강남구 도곡로 롯데백화점 강남점의 식품 매장인 ‘농부로부터’. 200m² 규모의 매장에는 ‘청년 농업 기업가’로 불리는 천재용 씨(37)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발굴한 농산물들이 진열돼 있다. 국산 잡곡과 과일, 채소는 물론이고 밥에 넣어 먹는 말린 밤과 장국 재료로 쓰는 쑥부쟁이 가루 등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농산물도 있다. 일부는 천 씨가 포장디자인까지 직접 해서 부가가치를 높인 것들이다.

천 씨는 “상품의 품질이 우수한데도 판로를 뚫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농부와 신선한 먹을거리를 찾으려는 도시인 사이의 다리가 되려고 한다”며 “최근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농업 관련 사업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히 크다”고 강조했다.

천 씨처럼 도시에서 농업 관련 사업을 하는 젊은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고정관념을 깨고 전통산업인 농업에 다른 분야를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 농사는 구닥다리 산업? 농사는 예술!

천 씨는 1990년대 인기 패션브랜드였던 ‘쌈지’를 창업한 천호균 씨의 장남이다. 아버지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오너 2세’가 ‘농산물 장사꾼’으로 변신한 데에 적지 않은 사람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한다.

“쌈지의 사세가 기울던 무렵 취미 삼아 텃밭에 채소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흥미를 느꼈어요. ‘농사가 곧 예술’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예술작가가 고뇌 끝에 작품을 창조하듯 농부는 오랜 시간 정성과 땀을 쏟아 농산물을 키워내니까요.”

그는 2009년 농업컨설팅 회사인 ‘쌈지농부’를 세우고 농산물의 디자인을 개선하고 브랜드를 개발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농부들을 접하다 자연스레 농산물 유통업에도 뛰어들게 됐다. 2011년 7월 경기 파주시 헤이리에 ‘농부로부터’ 1호점을 낸 것을 시작으로 서울 마포구에 홍대점을 냈고, 롯데백화점 강남점과 롯데월드몰점에도 입점했다.

천 씨는 농업 관련 교육사업도 하고 있다. 헤이리의 가게에서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쌈지어린농부학교’를 운영한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 흙을 밟고 농사를 체험하며 농업과 식품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농업에 교육서비스업을 접목해 새로운 산업을 발굴한 것이다. 또 주말이면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보통직판장’이라는 장터를 열어 지방 농부들이 도시 소비자들을 만나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쌈지농부’의 직원은 현재 15명으로 지난해 매출액은 20억 원에 이른다.


○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농부?… 농업펀드로 안정된 수익

농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사업모델을 만들어낸 젊은이도 있다. 한때 귀농했다가 도시로 올라온 김승연 씨(34)는 농부들을 괴롭히던 여러 가지 고민거리에 주목했다.

“‘농부가 큰 빚을 지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농부가 날씨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없을까’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은 없을까’ 등 갖가지 고민이 머리를 맴돌았어요.”

그는 소농(小農)에게 영농자금을 지원해주는 ‘농사펀드’를 지인들과 함께 만들어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친환경 농사에 필요한 영농자금을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농부에게 빌려주고, 투자자에게는 믿을 수 있는 좋은 농산물로 배당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씨가 만든 펀드는 올 5월 충남 부여군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부 조관희 씨에게 투자를 했다. 그는 우선 크라우드펀딩(불특정 다수에게 기금을 모으는 것)으로 1500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모았다. 그러곤 투자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조 씨가 농사 짓는 모습을 틈틈이 전했다. 또 모내기와 벼 베기 등의 행사에 투자자들을 초대하는 체험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이런 김 씨의 사업은 이달 결실을 맺었다. 농부 조 씨는 투자금을 밑천으로 무사히 농사를 마치고 투자자들에게 친환경 쌀과 시래기, 참기름 등을 보냈다. 농산물의 재배 과정을 실시간으로 봤던 투자자들은 “어느 대형마트에서도 구하기 힘든 선물”이라며 열광했다.

김 씨는 펀드를 청산한 뒤 농기구 임대료와 도정비, 인건비 등 비용 명세를 공개했다. 인건비는 조 씨에게 월급 형태로 지급된 돈이다. 김 씨는 “농사펀드의 규모가 커질수록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게 많아진다”며 “내년에는 토종 잡곡 등 다양한 작물로 펀드 규모를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농사는 농촌에서만?… 빌딩 옥상에서도 가능

아예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사례도 있다. 이예성 씨(28·여)는 도시농업 협동조합인 ‘파절이’를 이끌고 있다. 그의 일터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5층짜리 건물 옥상. 이 씨가 건물 옥상을 밭으로 만들어 재배한 콩과 루콜라, 밀 등의 농산물은 홍익대 인근 레스토랑이나 카페, 빵집 등에 납품된다.

이 씨의 주 고객은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농산물인 ‘로컬푸드’를 선호하는 요리사들이다. 고객인 요리사들은 직접 이 씨의 옥상 텃밭을 둘러보고 계약을 맺었다.

이 씨는 처음에는 재미 삼아 농사를 시작했다가 사업 형태를 협동조합으로 바꿔서 조합원들과 수익을 나누고 있다. 조합원은 약 70명으로 대부분 20, 30대 젊은이들이다. 이 씨는 “농촌에서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며 “아직 사업 초기라 수익이 많이 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옥상텃밭을 홍익대 인근 식재료 기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abc@donga.com·김범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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