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대륙의 ‘짝퉁’굴기

고기정 특파원 , 구자룡특파원

입력 2014-09-27 03:00 수정 2014-09-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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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짝퉁’굴기

중국 베이징의 짝퉁 전문 상가인 훙차오 시장 2층 가방 매장에서 15일 한 손님이 직원과 짝퉁 명품 가방을 놓고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핑궈류(빈果六·아이폰6) 850위안(약 14만4000원)!”

15일 중국 광둥(廣東) 성 선전(深(수,천)) 시의 화창베이(華强北) 전자시장. 세계 최대 전자제품 도매상가인 이곳에서는 아직 중국 시장에 나오지도 않은 아이폰6 판매가 한창이었다. 물론 ‘짝퉁’(가짜 물건)이다. 하지만 앱스토어 아이콘부터 외장 케이스까지 너무도 완벽하게 베꼈다.

같은 날 베이징(北京) 시내의 짝퉁 전문 매장인 훙차오(紅橋) 시장 2층. 여직원이 루이뷔통 브로슈어(소책자)를 펼쳐 보이며 원하는 품목을 고르라고 했다. 진품이라면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가방 하나를 고르자 창고에서 ‘짝퉁’을 들고 나왔다. 외국 관광객들은 “육안으로는 도저히 진품과 구별하기 힘들다”며 탄성을 터뜨렸다. 직원들이 부른 가격은 1500위안(25만4000원)이지만 흥정을 잘하면 훨씬 더 깎을 수도 있다고 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은 ‘짝퉁의 본산’이란 악명을 3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짝퉁 본능’은 옷 가방 휴대전화에 그치지 않는다. 톈진(天津)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시내를 베낀 금융구역을 건설하고 있다. 모방의 대상과 규모를 도시 전체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총인원 152만 명을 동원해 지식재산권 침해 현장을 단속했다. 기업의 의뢰를 받아 짝퉁을 적발하는 사설 업체도 2만 곳에 이른다. 그럼에도 짝퉁이 근절되지 않는 건 세계적 수요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짝퉁 전문 상가 슈수이제(秀水街)에서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35개국 지도자와 부인들이 쇼핑을 했을 정도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중국산 짝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과 소비자는 짝퉁의 출현을 즐기기도 한다. 거액을 쉽게 벌 수 있고 진품 구매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모든 짝퉁 제조업체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일부 기업은 모방을 통해 진품 업체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누른 샤오미(小米)도 ‘짝퉁 아이폰’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출발했다.  


▼ 통 커진 모방… 맨해튼 통째 베낀 금융타운 건설중 ▼

아이폰6 출시 두달전 짝퉁 깔려… 갤럭시기어 닮은 스마트워치
100개 주문했더니 “40% 할인”… 이름 살짝 바꾼 짝퉁 대학 200여개
복제 스핑크스 항의받고 철거도



세계 최대 전자제품 도매상가인 광둥 성 선전의 화창베이 전자시장 내부. 1만여 개 매장에서 정품과 짝퉁이 뒤섞여 팔리고 있다. 아직 중국에서 출시되지 않은 아이폰6도 두 달 전에 이미 짝퉁이 나왔다. 선전=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중국의 짝퉁 시장에서 진품과 모조품의 경계는 모호했다. 싼 물건과 그렇지 않은 제품이 있을 뿐이다. 짝퉁 아이폰을 팔고 있는 화창베이 전자시장에는 연면적 20만 m²에 상점 1만 개가 들어서 있다. 진짜를 빼닮은 모조품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지 “진품을 골라낼 수 없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곳 종업원은 1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설명을 들으면 ‘진품 애용자가 짝퉁 찬양자로 돌아서겠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베낄 수 없는 건 없다”

이곳에서 아이폰6 짝퉁이 나온 건 두 달 전이다. 9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진품이 베일을 벗기 전에 이미 다양한 형태의 모조품이 매장을 차지했다. 전문가가 아니면 외양이 실제 아이폰6와 얼마나 다른지 구별하기 어렵다. 다들 감쪽같아서다. 가격은 내장 메모리와 중앙처리장치 등 성능에 따라 달라진다.

갤럭시 기어와 같은 스마트워치도 각양각색의 제품이 깔려 있었다. 맥박과 운동량을 확인할 수 있으며 블루투스(근거리 무선 통신) 기능으로 휴대전화와 연결해 이메일을 받아볼 수 있다. 기능 면에서는 정품과 다름없다. 개당 250위안(약 4만2000원)짜리를 100개 주문하겠다고 했더니 개당 155위안(약 2만6000원)에 주겠다고 선수를 쳤다. 점원은 “1년간 애프터서비스를 해준다. 수리는 전혀 문제없다”고 장담했다.

완제품뿐 아니라 회로기판과 액정 등 ‘짝퉁 부품’도 넘쳐난다. 2층 전문매장에서는 갤럭시노트 액정이 350위안(약 5만9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기술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짝퉁 부품을 사서 조립하면 스마트폰을 뚝딱 만들 수 있다. 선전에 사는 교민 배모 씨는 “짝퉁 액정을 사서 휴대전화를 고쳐봤는데 정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화창베이를 보고 간 한국 전자업체 관계자는 “이럴 거면 ‘왜 공장을 짓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여기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중국 스마트폰을 베낀 짝퉁도 적지 않다. 중국산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다. 화창베이에는 심지어 일층 대로변에 샤오미 짝퉁 대리점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샤오미는 영업비를 줄이기 위해 전문매장을 두지 않고 있다. 리레이(李磊) 샤오미 대외담당 매니저는 “3월부터 대대적인 짝퉁 적발에 나섰다. 베이징은 물론이고 선전, 광저우, 청두, 쿤밍 등에서 짝퉁이 발견됐다”며 “황당하게도 샤오미 진품보다 값이 비싼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짝퉁은 제조업 상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런던 브리지’ ‘인도의 타지마할’이 중국 땅에서 복제됐다. 허베이(河北) 성 스자좡(石家莊)의 한 테마파크에 세워졌던 높이 30m의 짝퉁 스핑크스는 이집트의 항의를 받고 철거하기로 했다.

‘짝퉁 대학’도 200개가 넘는다. 유명 대학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홈페이지 주소가 교육기관을 나타내는 ‘edu.cn’ 대신 ‘com’이나 ‘org’로 끝난다. 중국 교육부가 매년 가오카오(高考·대학입학시험) 전에 학생모집 자격이 있는 대학 명단을 발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박과 욕망의 교차

짝퉁 제조는 로또와 비슷한 산업이다. 중국에서 스마트폰 모델 하나를 만드는 원가는 200위안(약 3만4000원)에 불과하다. 500위안(약 8만5000원)에 10만 대를 팔면 3000만 위안(약 50억8000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샤오미의 올해 중국 내수 판매 목표는 6000만 대다.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는 짝퉁 소비를 떠받치는 요인 중 하나다. 올해 베이징의 대졸자 평균 초임은 월 2400위안(약 40만 원)이다. 대당 4000∼5000위안인 갤럭시나 아이폰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품을 탐내는 이들의 욕망은 짝퉁 시장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지식재산권 침해 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지 않은 데다 단속이 쉽지 않은 점도 짝퉁이 줄지 않는 배경이다.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발생한 지식재산권 침해 사건은 8만3100건으로 과태료는 총 11억2100만 위안(약 1900억 원)이 부과됐다. 이 중 사안이 중하다고 보고 사법기관으로 넘긴 사건은 477건뿐이다. 1789개 업체는 영업장이 폐쇄됐다. 서동욱 주중 한국대사관 특허관은 “민사소송에서 부과된 벌금의 중간 값이 원화로 2700만∼300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짝퉁 제조로 적발되더라도 그 업체가 받는 타격은 크지 않다”며 “미국은 중간 값이 100억 원 안팎”이라고 말했다.

짝퉁도 정품처럼 분업화, 전문화돼 있다. 플라스틱 제품은 도매시장에 정품 샘플을 제시하면 전국에 산재한 원료 산지와 금형, 상표 부착업체들을 연결해 물건을 내놓는다. 밀폐용기 생산업체인 락앤락의 노석주 베이징법인장은 “제품이 완성되면 심야에 상표를 달아 시장에 뿌려버리기 때문에 제조현장을 찾아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짝퉁 생산공장을 확인했더라도 지방에 있다면 공권력 집행기관인 현지 공안의 협조를 받는 일도 쉽지 않다. 지역보호주의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한 관계자는 “지방에서는 주민들이 서로 가까운 관계인 데다 짝퉁 공장이 지역 경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공안도 선뜻 단속에 응하지 않는다. 공안 책임자의 사촌이 짝퉁 공장 사장이면 단속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국에서는 짝퉁을 ‘자훠(假貨)’와 ‘산자이(山寨)’로 구분한다. 자훠는 말 그대로 가짜 모조품이다. 반면 산자이는 모방품이나 유사품을 일컫는다. 베끼긴 했지만 상표나 모양이 조금씩 다른 제품이다. 산자이는 원래 ‘산적들의 소굴’이라는 뜻이지만 수호지의 양산박(梁山泊)처럼 ‘의적들의 웅거지’라는 인상도 준다. 다소 관대하게 보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산자이 제품이 지식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면 범죄 행위로 인식해야 마땅하지만 ‘후발자의 이익(later's advantage)’으로 인정하려는 속마음도 엿보인다.


속 끓이는 한국 업체들


스마트폰 업계의 강자로 떠오른 중국 샤오미의 대외담당 매니저인 리레이 씨는 “이제 샤오미를 본뜬 짝퉁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진출의 성공 사례로 꼽혀왔던 락앤락은 올 2분기(4∼6월) 중국 매출(435억 원)이 1년 전보다 44% 줄었다. 회사 전체 매출(1028억 원)도 24% 감소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짝퉁 탓에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게 자체 판단이다. 노 법인장은 “2004년부터 중국 내수 판매를 시작했는데 2005년부터 짝퉁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2007년부터는 경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락앤락이 중국 시장에서 수거한 짝퉁 플라스틱 용기는 겉모양만으로는 정품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물병 유사품도 상표는 조금 달랐지만 색깔과 모양, 손잡이의 요철 부위까지 똑같이 만든 탓에 구별이 쉽지 않았다. 노 법인장은 “짝퉁 업체들의 기술력이 락앤락에 근접하게 따라왔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식별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이후 27건의 짝퉁 관련 사건에 소송을 걸었다.

근래에는 상표권 분쟁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 새 브랜드가 나오면 중국에서 누군가가 이를 등록해서 선점하는 식이다. KOTRA 베이징무역관의 이돈기 차장은 “최근 한 화장품 업체가 한국에 상표를 출원한 지 2주 뒤 중국에 상표를 등록하려고 했더니 이미 같은 상표가 있었다”며 “한국에서 새 브랜드가 나오면 실시간으로 중국에서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국중법률사무소의 김덕현 박사는 “중국의 상표등록 비용은 1000위안(약 17만 원)에 불과한데도 미리 등록하지 않아 피해를 보는 사례가 없지 않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짝퉁은 정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리고 유통망을 흔든다는 점에서 2차 피해를 주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품으로 둔갑한 짝퉁을 산 고객들이 품질 문제 때문에 삼성에 항의하는 사례도 있다. 짝퉁이 늘어나면 정품 가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유통시장도 교란된다”고 말했다.

짝퉁 피해는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하면서 더 심해지고 있다. 단속이 쉽지 않아서다. 중국 인터넷 상거래 포털 사이트인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타오바오(淘寶)도 짝퉁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정식 입점회사는 모조품 판매를 규제할 수 있지만 개인이나 소기업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오픈마켓에서는 단속이 어렵다. 그나마 단속을 시작하면 오픈마켓이 위축될 수 있어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중국 베이징의 짝퉁 시장 중 하나인 슈수이제 외관. 왼쪽에는 ‘품질’, 오른쪽에는 신용을 뜻하는 ‘성신’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짝퉁 천국’ 중국에는 ‘짝퉁 사냥’ 전문 업체들도 성황이다. 기업의 용역 의뢰를 받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스스로 짝퉁을 적발하는 곳도 있다. 짝퉁을 발견한 뒤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걸어 “신고하지 않겠다”며 돈을 뜯어내는 이들도 활개를 치고 다닌다.


“짝퉁 잡아드립니다” 2만 곳 분주

다하이(大海)비즈니스자문 유한공사의 왕하이(王海·41) 대표는 ‘짝퉁 퇴치의 선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비자보호기금회로부터 ‘가짜 퇴치(打假) 소비자상’도 받은 중국 제1의 짝퉁 사냥꾼이다.

그가 짝퉁 사냥에 뛰어든 건 1993년 소비자권익보호법이 제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상품이 가짜이면 환불 및 물건값을 배상한다’는 규정을 보고 여러 상가를 돌며 가짜를 산 뒤 배상을 받았다. 그를 따라하는 사람이 늘어 ‘왕하이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를 선량한 소비자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베이징 차오양(朝陽) 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왕 대표는 “지금까지 ‘밤길 조심하라’는 위협전화도 많이 받았지만 다행히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인터뷰 사진촬영 요청에는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고 했다. 얼굴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상하이신정신(上海新諍信)지식재산권서비스의 쑨카이(孫凱·43) 총재는 지재권 보호 업체로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 350여 명이 포진한 이 회사는 상표, 특허, 저작권 등 짝퉁이 나올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상담과 증거 확보, 법적 소송을 대행해주는 중국 최대 지재권 보호 업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국과 미국의 거대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쑨 총재는 “짝퉁을 적발하고 피해 구제를 대행하는 기관이 중국에 대략 2만 개로 추정된다”며 “그중 100개 정도가 기업과 같은 체제를 갖추고 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짝퉁 사냥은 제조 공장을 적발하는 게 핵심이다. 현장을 급습하면 근로자들이 쇠파이프와 낫을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하기도 한다. 베이징의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간혹 따라가 보기도 하는데 신변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워 멀찍이서 보고 돌아온다”며 단속 현장을 취재하고 싶다고 요청한 기자를 한사코 말렸다.

짝퉁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5만 위안(약 848만 원) 이상이면 공안국에 출동을 의뢰할 수 있다. 하지만 워낙 신청이 밀려 있어 사전에 증거 목록과 피해 현황을 완벽하게 자료로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어렵사리 출동해도 차량 출동비와 식대에다 사후 수고비까지 얹어주는 게 관례다.

중국 정부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과 자국 브랜드의 피해로 예전보다 더 짝퉁 단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달 1일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廣州)에는 지재권 침해 전담 ‘지재권 법원’이 설치됐다. 지난해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됐다.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 판단되면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다. 쑨 총재는 “최근 상표법도 전면 개정돼 배상 최고액이 50만 위안에서 300만 위안으로 조정되는 등 지재권 보호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덕현법률사무소의 주루이링(朱瑞領) 변호사는 “지식재산권 전문 법원을 둔 것은 그만큼 분쟁이 늘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분쟁 해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짝퉁 중국’의 법률 분쟁 해결도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드웨어 기지로 변신 중인 짝퉁 본산

짝퉁은 중국 제조업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광둥 성 선전은 이미 ‘산자이 공장에서 하드웨어의 수도’로 변신 중이다. 화창베이 전자시장의 주변 아파트에서 스마트폰을 단순 조립하는 영세 공장은 아직 수준이 낮지만 짝퉁 부품을 공급하다 덩치를 키워 업계 선두를 향해 질주하는 업체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애플에 전자부품을 공급한 중국 기업은 2011년 8개에서 지난해에는 16개로 두 배로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은 중국 업체가 만든다. 짝퉁 DVD플레이어를 만들던 오포가 6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이라며 두께 6.3mm짜리를 내놓자 또 다른 중국 업체인 지오니는 7월 5.5mm짜리를 선보이며 한 달 만에 기록을 갈아 치웠다.

중국 휴대전화 업계가 급성장한 배경은 애플과 삼성이 열어준 시장에서 선진기술을 모방하며 무한경쟁을 벌이는 부품 업체들이 바닥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생 제조업체에 초기 자금과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인 핵셀러레이터(Haxlr8r)의 창시자 시릴 에버스웨일러는 지난해 본사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선전으로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는 반경 1km 안에서 어떤 부품이라도 찾을 수 있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어디에서도 불가능하다”며 “왜냐하면 그곳에는 화창베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품 경쟁력은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화창베이의 점원들은 아이폰 짝퉁을 소개하다 손님들이 돈을 좀 더 낼 의향이 있어 보이면 바로 샤오미를 꺼내 놓는다. 아이폰이나 갤럭시의 반값인 1999위안(약 34만 원)에 불과하지만 ‘정품’인 데다 기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KOTRA 선전무역관의 박은균 관장은 “한국에서 2만 원가량인 32기가 메모리가 여기에서는 8400원에 팔린다. 외국 업체가 가격 경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이 하드웨어에서는 충분히 성장했지만 창의력 부재라는 근본 과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선전스마트홈협회 차이진장(蔡錦江) 부회장은 “관건은 창의력이 아니라 현지화”라고 단언한다. 세계 시장을 잡으려면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부터 확보해야 하는데 중국 업체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샤오미가 1주일에 한 번씩 운용체제(OS)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비결은 자국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개선 요구를 바로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과 기술 기반 때문”이라며 “애플과 삼성은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정품에서 밀리면 짝퉁 시장에서도 퇴출

짝퉁에서 거금을 쌓아놓은 중국 업체들은 이제 특허와 기술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발명특허 출원 건수는 82만5000건으로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실용신안과 디자인을 포함하면 전체 출원 건수는 237만7000건에 이른다. 화웨이(華爲) 등 대형 기업들의 특허도 많지만 수많은 부품 업체가 벌 떼처럼 나서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중국의 두꺼운 산업 기반을 가늠하게 한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특허를 담보로 대출도 해주고 있다. 특허 가치의 20%까지 저리 융자를 내준다. 서 특허관은 “2012년 말 기준으로 담보대출 총액이 7조 원을 넘었다. 이 중 발명특허만 4조 원대”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간 기술력 경쟁에서도 한국이 중국에 뒤질 수 있는 상황이다. 박 관장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정보기술(IT)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려 하지만 화웨이 같은 기업이 원하는 기술 수준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짝퉁 휴대전화의 기술력이 삼성의 85% 수준으로 2년 반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스마트폰 같은 시장에서는 1위 업체의 기술력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짝퉁에 치이고, 짝퉁에서 진화한 정품에 쫓기는 한국 업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기술을 더 개발하든지, 브랜드와 디자인을 차별화해 고급 소비를 유도하든지 해야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락앤락은 중국 영업 전략을 바꿨다. 기존 주력 상품인 플라스틱 밀폐용기는 모방과 모조가 쉽기 때문에 끊임없이 신상품을 내놓되 제품군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또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식기나 수납용품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기술이 평준화하는 상황에서 특정 브랜드를 갖고 있는 데 따른 심리적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생존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짝퉁 시장에서조차 자기 브랜드가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말을 뒷받침이나 하듯 그 넓은 화창베이 전자시장에서 삼성과 경쟁하다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된 노키아는 짝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선전=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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