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투자 불확실성 시대 ‘新재테크’

동아일보

입력 2014-04-12 03:00 수정 2014-04-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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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도 더”… 단기 특판상품 찾는 당신은 금리 노마드

회사원 김모 씨(48·서울 서초구)의 은행 통장에 얼마 전 ‘200,000,000’이라는 숫자가 찍혔다. 노후에 대비해 부동산 임대업에 관심이 많던 그는 올해 초 수도권 대학가의 소형 아파트를 유심히 살폈다. 정부가 부동산 핵심 규제를 풀면서 집값이 꿈틀거리자 투자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김 씨는 손실 난 상태로 1년 넘게 쥐고 있던 주식형펀드를 해지하고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을 찾아 2억 원의 매입자금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김 씨가 매물을 찾는 사이 정부의 임대소득자 과세 확대 방침이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의 온기는 다시 식어버렸다. 고민하던 그의 선택은 수시입출금 통장. 원금 손실 없이 언제든지 출금이나 해약을 할 수 있으면서 정기예금 수준의 이자를 주는 상품이 꽤 있었다. 그는 “금리도 낮고 주식시장도 안 좋은데 2억 원을 다시 펀드나 예금에 넣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며 “적절한 부동산 매수 타이밍이나 마땅한 금융상품을 찾을 때까지 잠시 돈을 넣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시장이 여전히 시계(視界) 제로다. 저금리에 증시 침체가 길어지면서 돈 굴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미국의 돈줄 죄기(양적완화 축소), 중국발 경제 리스크 등 국내외 금융시장을 흔들 변수의 움직임도 가늠하기 어렵다.

재테크가 아무리 어려워도 신(新)재테크족은 새로운 투자환경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수익을 향해 움직인다. 여윳돈을 잠깐 맡겨두고 기회를 엿보는 ‘파킹 투자족’, 대박의 환상을 접고 현실적인 수익을 노리는 ‘중박족’, 조금이라도 수익이 더 나는 곳을 찾아 옮겨 다니는 ‘금리 노마드족’ 등이 대표적이다.

파킹 투자족… 잠깐 쉬는 것도 투자

자동차를 잠시 주차해 두는 것처럼 본격적인 투자 대상을 결정하기 전에 짧은 기간 안전한 투자처에 자산을 예치해 두는 것을 파킹(parking) 투자라고 한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파킹투자족이 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통계에서도 장기간 돈을 묶어 두는 예금보다 현금화가 쉬운 예금으로 돈이 몰리는 현상이 확인된다. 지난해 말 은행 정기예금은 558조8983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7조 원가량 줄어든 반면 요구불예금은 111조4059억 원으로 10조5000억 원 가까이 급증했다. ‘파킹통장’에는 주식 펀드 투자나 부동산 매수 타이밍을 저울질하는 대기자금, 자녀 결혼자금이나 학자금 용도의 목돈이 몰린다. 자금을 ‘파킹’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자 수익을 내야 한다는 게 파킹투자족의 투자 원칙이다.

시중은행들도 고금리를 내세운 자유입출금 통장을 속속 선보이며 파킹투자족 잡기에 나섰다. 한국씨티은행이 이달 초 선보인 자유입출금 예금 ‘참 착한 통장’은 판매 7일 만에 2500억 원이 들어왔다. 하루만 예치해도 예금 잔액에 따라 연 0.1∼2.5%의 이자를 주는 상품이다. 이종웅 씨티은행 수신상품개발부 부장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5000만 원 이상을 넣어 두면 아무 조건 없이 연 2.5%의 이자를 주니 고객이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 2.25%의 이자를 주고 다른 은행 현금인출기(ATM)에서 돈을 찾아도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KDB산업은행의 ‘KDB다이렉트 수시입출금 통장’은 2012년부터 올 3월까지 2조6000억 원이 예치됐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지난해 2월 선보인 자유입출금 통장 ‘마이심플통장’도 연 최고 2.4%의 금리를 앞세워 이달 초 수신액이 3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

금리 노마드족… 단타로 치고 빠지기

회사원 한모 씨(37)는 틈날 때마다 금융 신상품을 검색하는 ‘신상족’이다. 업무 중에도 상사나 동료의 눈을 피해 증권사 지점이나 사이트에 들러 신상품을 살펴본다. 금융사가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특판상품을 잡기 위해서다. 한 씨는 신상 검색 끝에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둔 1000만 원을 연 4% 금리의 단기 환매조건부채권(RP)에 투자하기로 했다. 한 씨는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크고 금리가 낮을 때는 장기 투자보다 짧게 잘라가는 게 낫다”며 “그래야 연 1%라도 이자를 더 주는 상품을 찾거나 증시 상황이 좋아졌을 때 바로 투자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씨 같은 금리 노마드족이 늘어나는 것은 투자처를 결정하지 못하고 시장을 관망하는 투자자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위험자산인 주식계좌와 안전자산인 은행 정기예금에서 동시에 돈이 빠지는 현상은 단기 금융상품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최근 돈이 몰리는 대표적 단기 금융상품은 만기가 짧은 기업어음(CP)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다. 이달 8일 기준 MMF 설정액은 약 76조 원으로 지난해 말(66조4000억 원)보다 9조6000억 원 늘었다. 올 들어 하루 평균 14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MMF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은행권에서 판매하는 단기 특정금전신탁(MMT)의 상황도 비슷하다.

하루만 돈을 맡겨도 이자를 주는 CMA에도 올해 1조30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CMA 잔액은 작년 말 41조7850억 원에서 4월 현재 43조1100억 원으로 늘었다. 공성율 KB국민은행 목동PB센터 팀장은 “회사채나 기업어음도 만기가 긴 상품보다는 3, 6개월짜리 단기 상품이 인기가 있다”며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연 2.7%인데 신용등급이 좋은 CP는 3개월짜리가 연 4% 안팎이어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중박족… ‘중위험 중수익’이 낫다

주부 이모 씨(45)는 2011년 인기를 끌던 자문형 랩 상품에 1억 원을 투자했다가 지난해 여름 눈물을 머금고 해지했다. 곤두박질쳤던 수익률이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1500만 원가량 손해 본 상태였다. 이 씨는 재테크 전문가에게 “앞으로는 수익이 덜 나도 좋으니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씨가 추천을 받아 투자한 것은 주가연계증권(ELS)과 롱숏펀드. 현재까지 결과는 만족스럽다. ELS는 가입 6개월 만에 조기 상환돼 연 5%의 수익을 올렸고 롱숏펀드도 현재 7%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송재원 신한PMW여의도센터 PB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시장의 폭락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며 “정기예금보다 약간 더 높은 금리를 얻을 수 있는 ‘중위험, 중수익’의 중박 상품이 최근 금융시장의 트렌드가 됐다”고 말했다.

중박 상품의 대표 주자가 롱숏펀드다.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사고(Long) 주가가 떨어질 것 같은 주식은 공매도(Short)해서 차익을 남기는 구조다. 금융사들은 “상승장뿐 아니라 하락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도록 설계됐다”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른 중위험 상품과 달리 주로 국내 주식에 투자해 비과세된다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1조40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롱숏펀드로 유입된 데 이어 올해도 3개월여 만에 95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2012년 1700억 원 수준이던 롱숏펀드 순자산 규모는 현재 17배로 늘어난 2조89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롱숏펀드가 비교적 안정적인 상품이지만 알아둬야 할 리스크도 있다. 송 팀장은 “안정적 수익률에 절세효과까지 있어 지난해 프라이빗뱅킹(PB) 고객들이 많이 가입했고 지금은 일반 고객까지 몰리고 있다”며 “자금이 너무 몰리면 운용이 힘들어져 수익률이 둔화될 우려가 있다”고 조언했다. 증시가 박스권에서 지지부진하면 롱숏펀드가 수익을 내겠지만 코스피가 2,100이나 2,200을 넘는 강세장으로 바뀌면 수익률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절세 투자족… 위험은 낮추고 세금은 줄이고

ELS도 중박족이 즐겨 찾는 상품이다. ELS는 증권사들이 개별종목의 주가나 특정지수의 움직임에 연동해 투자자에게 약정한 수익률을 주도록 설계됐다.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폭 이상 변동하면 손실이 발생하지만 리스크가 채권보다는 높고 주식보다는 낮아 대표적인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꼽힌다.

2011년 32조9000억 원 수준이던 ELS 발행 규모는 지난해 45조9000억 원을 넘어섰다. 50조 원에 육박하는 ELS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금융사 간 상품 경쟁도 치열하다. 이관석 신한은행 자산관리솔루션부 팀장은 “부자 고객들은 절세 차원에서 ELS도 월지급식 상품을 많이 찾는다”며 “한꺼번에 상환되면 금융소득종합과세 소득이 갑자기 올라가기 때문에 월지급식이 유리하다”고 귀띔했다.

만기 1년 미만의 국공채는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약간 높고 안전하면서도 환금성이 좋아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자산운용이 2월 말 내놓은 우리단기국공채펀드는 하루 30억 원 이상의 신규 자금이 유입되며 40여 일 만에 설정액이 700억 원을 넘어섰다. 안형상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1팀장은 “금리 상승 우려로 채권 투자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 단기 국공채는 만기가 1년 미만으로 짧아 금리 상승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원화가치 상승세(원-달러 환율 하락)가 이어지자 외화예금이나 달러보험 등의 형태로 달러를 사들이는 모험에 나서는 투자자도 있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강남센터 지점장은 “환율이 많이 떨어지면 결국 나중에 다시 오른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학습효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쌀 때 미리 사두자’는 달러 투자 수요가 있다”며 “환차익이 비과세되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기 상품이나 재테크 트렌드에 현혹되기보다 시장 흐름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 팀장은 “수익률을 결정하는 건 결국 시장의 흐름과 경기 움직임”이라며 “인기 상품보다 이를 먼저 파악하는 게 투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임수 imsoo@donga.com·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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