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대박집 옆 쪽박집… 차이는 ‘맛’ 아닌 ‘느낌’

동아일보

입력 2014-01-16 03:00 수정 2014-0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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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사는 ‘감성 리더십’

비행기를 타려고 50명쯤 줄을 서 있다고 하자. 그중 2명에게 발을 동동 구르면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라고 시키면 2분 안에 10명 이상이 무의식적으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다. 감정의 전염이다. 감정의 전염이란 두 사람의 감정 상태가 같아지는 현상이다. 휴대전화를 컴퓨터에 동기화시키는 것처럼 한쪽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방이 무의식적으로 그 감정 표현을 따라하고 결국 두 사람이 동일한 감정을 느끼는 현상이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 사무실에서도 감정의 전염은 자주 발생한다. 특히 리더의 감정은 부하 직원들에게 쉽게 전염된다. 임원에게 불려 갔던 부장이 굳은 표정으로 돌아오면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부서원들은 즉각 ‘안 좋은 일이 있었구나’ 하고 짐작한다. 발소리만 듣고도 사무실 안에 무거운 분위기가 퍼진다. 조직원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 ‘감성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고객과 소비자를 읽어 내는 감성 리더십

감성 리더십은 조직 내부의 소통뿐 아니라 조직 외부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의 사례를 보자.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면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2008년 진행한 소셜미디어 캠페인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유니레버에 대한 2분짜리 동영상을 보고 나면 그동안 유니레버에 가졌던 좋은 느낌이 싹 사라질 것이다. 유니레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야자유를 사용한다. 야자유를 얻기 위해 유니레버는 집채만 한 야자나무를 무참하게 베어 내고 무고한 원숭이들의 서식지를 불사른다. 이 동영상이 확산되며 여론이 악화되자 유니레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섰다. 그는 야자유 사용을 줄이고 2014년 말까지 모든 야자유를 출처가 분명한 곳에서 구입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유니레버는 ‘착한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CEO가 소비자의 감정을 읽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망설이지 않은 결과다.

유니레버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고객의 감정에 어필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물건 자체만 보는 게 아니다.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과 조직, 물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평판에도 관심을 갖는다. 판매자가 얼마나 ‘착한’ 기업인가, 즉 ‘그 비즈니스가 잘되면 다른 사람이나 조직도 더 잘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물건이나 서비스에 수반된 기쁨과 행복 등 감성적 편익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리더가 조직원이나 소비자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감성 리더십은 ‘마음으로 사람을 리드’하는 것이다. 리더가 자기 자신과 직원들의 감정 상태를 잘 파악하고 관리한다면 조직의 갈등을 줄이고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비전이나 카리스마, 전략과 전술을 내세우기에 앞서 조직원의 공감과 호응에 뿌리를 두는 좀 더 내밀한 리더십이다.


○ 다르게 느꼈어도 상대방 느낌 이해해야

감성 리더십을 구성하는 여러 요인 중에 중요한 두 가지는 자기 인식과 감정이입 능력이다. 자기 인식이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재빨리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을 뜻한다. 자신의 감정 상태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자기 인식을 잘하고 궁극적으로 감성 리더십을 잘 발휘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읽고 존중하는 연습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 목록이 부족한 사람은 감정 인식과 표현에 어려움을 겪을 개연성이 크므로 즐거움이나 편안함, 분노나 두려움 등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보는 연습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또 실제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 하면서 마치 개성 있는 배우가 된 것처럼 표정으로 표현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감성 리더십의 또 다른 주요 덕목은 감정이입 또는 공감 능력이다. 이것은 어떤 사물을 접할 때 다른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갖거나 설사 다른 감정을 느끼더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는 심리 작용이다. 감정이입 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상대방의 표정이나 몸짓을 잘 모방한다. 필자가 예전에 살던 동네의 시장에 비슷한 규모의 닭집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한 집은 장사가 아주 잘되는데 옆집은 파리만 날렸다. 궁금한 마음에 두 가게를 유심히 관찰했다. 차이는 가게 주인과 종업원의 표정에 있었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 주인과 종업원은 고객의 표정을 귀신같이 읽고 그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 감정이입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셈이다.

성공하는 조직은 감정이입과 의사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일본 기업 혼다는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 시절부터 최근의 후쿠이 다케오 사장에 이르기까지 사장과 임원진이 모두 한방에서 일한다. 심지어 사장은 개인 비서조차 두지 않고 차를 마시거나 대접하기도 한다. ‘접촉 없이는 감정이입도 없다’고 보고 아날로그 방식의 직접 접촉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현대카드도 비슷한 제도를 두고 있다. 현대카드는 모든 임원이 매달 한 차례씩 강당에 모여 업무를 보는 ‘임원 장터’를 연다.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도 않고 그저 같은 장소에 모여서 업무를 보는 것뿐이지만, 한데 모여 있다 보니 옆자리 임원과 신상품에 대한 즉석 회의도 열고 평소에 마주치기 힘들었던 부서장과 서로의 아이디어도 공유한다.


○ 불필요한 긴장 풀고 선입견 없애라

감정이입 능력을 강화하고 싶다면 우선 불필요한 긴장을 풀어야 한다. 너무 잘하려고 이를 악물고 일하는 방식은 감정이입과 소통의 리더십에 방해가 된다. 어금니를 꽉 깨물지 말고 편안하게 미소 지을 때 감정이입이 잘된다. 둘째,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 지연이든 학연이든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감정이입이 쉽지만 다른 그룹 사람들에게는 감정이입을 잘 못할 때가 많다. 이런 선입견은 조직원들 사이의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셋째, 예술을 즐긴다.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은 남이 겪는 갈등이나 사정을 잘 이해하고 감정이입 능력이 발달한다. 시를 읽으면 본질적인 느낌을 찰나에 파악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넷째, 공통의 프로그램을 만든다. 같은 체험을 해 보지 않고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직원들이 휴식 시간에 조깅을 하고 농구나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업무 공간을 운동센터처럼 만든 나이키가 대표적인 사례다. 조깅을 하지 않는 사람은 고객과 같은 체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좋은 조깅화를 개발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공통의 체험은 감정이입 능력을 배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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