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CEO]한성무역, 새터민 기업의 힘… 당겨주고 밀어주며 따뜻한 상생

동아일보

입력 2013-12-27 03:00 수정 2013-12-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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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에 일 제공해 정착 도와… 생필품 수출 분야 강소기업

추워지는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나눔이 절실해지는 12월의 세밑. 새터민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이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는 탈북자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따뜻한 바람의 진원지는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생활용품 수출 업체 한성무역(회장 한필수·www.hansung.asia)이다.

2003년 설립된 한성무역은 중국 동북 3성과 화남지역을 대상으로 세제 등 생활용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 이 회사 한필수 회장은 기업계에서 몇 되지 않는 탈북자. 함경북도 출신인 한 회장은 탈북 후 2002년 남한에 정착해 온갖 고생 끝에 지금의 한성무역을 설립했다. 물론 인맥도 자본금도 없었다. 정부에서 준 정착 지원금 1000여만 원이 밑천이었다.

탈북자 고민의 정점에는 정착 문제가 자리한다. 한성무역은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면서 탈북자들의 사회 적응을 적극 돕고 있다. 한성무역의 직원 총 70명 중 90%인 60여 명이 북한 이탈 주민이다. 전 직원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 2006년 15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2010년 320억 원, 지난해 450억 원으로 증가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한성무역이 단순히 성공한 새터민기업이 아니라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SL 설립… 21개 품목 비누 자체 생산, 전량 중국 수출 쾌거


한성무역은 지난해까지 LG생활건강, 애경, 아모레퍼시픽 등의 제품을 중국으로 수출해 수익을 올렸다. 한성무역은 이와 별도로 전자상거래 업체인 ㈜리빙홈, ㈜대신무역 등을 거느리고 다양하게 유통망을 넓히고 있다. 이 회사는 경영혁신 중소기업으로 두 차례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한국무역협회로부터 수출 기업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한성무역은 최근 새로운 도약을 위해 자체 생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를 위해 10월 파주시에 자체 생산기지인 ㈜SL을 설립하고 공장을 준공했다. 이곳에서는 오이클렌징비누와 오트밀 때비누, 참숯비누 등 21가지 품목의 비누 제품을 생산한다. 본사에 자체 연구소와 디자인팀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년 1월에는 연구 인원을 더욱 보강할 예정이다.

이달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중국 바이어들과 함께 준공 기념행사를 성황리에 끝낸 한 회장은 “10년간의 중국 사업 경험을 통해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큰 강점이다. 중국인의 니즈에 맞게 제품을 개발할 수 있으며, 현재 자체 개발 생산을 통해 수출하고 있는 비누 역시 중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는 전량을 중국에 수출 중이며, 일본과의 계약도 진행 중이다. 향후 아시아 전역을 공략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생산품목 다변화, 많은 탈북자 고용


한성무역은 생산 품목도 향후 샴푸와 주방세제, 액체세제 등으로 다변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에는 경기 연천군 백학산업단지 내에 1만6628m²(약 5100평)의 생산 공장 용지를 매입하기도 했다. 이곳에 들어설 ㈜HSL생활건강은 내년 3월 착공에 들어간다.

공장을 세워 기계화 시스템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고, 많은 탈북자를 고용해 그들에게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한 회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탈북자 기업의 모습이다. 그런 한 회장이 보기에 지금의 새터민 지원 정책은 문제가 많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육받고 살아온 사람들을 보상, 정착금만 주어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던져 버리는 방식이라고 본다. 새터민들이 정상적으로 한국 기업과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새터민 정책이 시행돼야 하는데, 지금은 지원에만 의존하는 사회적 부적응자로 남게 하고 있다는 것.

탈북자 기업의 성공 또한 어려운 일이다. 이들을 더욱 맥 빠지게 하는 건 차별과 편견이다. 심지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데도 탈북자 기업이란 꼬리표 때문에 매번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새터민을 고용하는 기업에 가야 할 정부지원금이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새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작 탈북자 기업을 도와야 할 돈이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 실제로 기업 지원금이나 취업 장려금이 탈북자에게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탈북자 기업 육성만이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고 명분뿐인 ‘응원’보다는 현실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현장의 소리다.


▼ “탈북자기업 지원이 최고의 새터민 정책” ▼
인터뷰 / 한필수 회장


“통일부는 새터민 정착 지원에 힘쓰고 제도 개선에 나선다고 하는데, 정작 탈북자 기업이 정착하기 좋으면 왜 지원을 요청하겠습니까? 새터민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우리같이 영세한 기업을 지원하는 겁니다.”

탈북자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이 시급하다는 한필수 한성무역 회장의 외침이다. 그는 탈북자 관련 법이 귀순자들을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적응시키는 효과적 지원책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탈북자들은 새로운 환경과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입북을 기도하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요. 정착금을 사기당해 거지꼴이 된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새터민을 개인적으로 지원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한 회장은 “탈북자 기업이 고용창출을 통해 새터민들에게 재정적인 안정과 더불어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와 같은 탈북자 기업들이 성장해야 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합니다”고 강조했다.

탈북자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도와줄 수 있는 건 탈북자 기업밖에 없다는 얘기다. 탈북자에 대한 단순한 보상에 그치는 현행법을 보다 종합적인 귀순동포의 재사회화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장치로 바꿔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일침이다.

맨몸으로 한국 땅으로 건너온 한 회장은 수많은 역경을 딛고 전도유망한 수출 기업을 설립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땅에서 사업을 하면서 안 해본 고생이 없다.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중국에서 자전거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납품했고, 악착같이 거래처를 뚫었다.

지금도 공장 건물에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큼지막한 사훈이 걸려 있다. 그의 고단했던 인생 여정은 바로 이 사훈에 그대로 압축돼 있다.

그는 자신처럼 희망과 꿈을 갖고 있는 새터민들을 적극 고용하고 있다. 한성무역에는 한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초반의 새터민부터 10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은 50대까지, 제각각 사연을 지닌 이들이 내국인들과 함께 꿈을 키워 가고 있다. 출신 배경, 연령 등을 따지지 않고 일을 하고 싶다는 이들을 우선 고용했다.

그리고 기업의 이윤보다는 직원들의 능력 키우기에 우선순위를 뒀다. 또 이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북한이탈주민 채용 보조금을 연봉에 포함하지 않고 더해서 지급한다. 한성무역 새터민 직원들의 연봉은 인턴(1개월) 종료 후 2600만 원에서부터 시작한다.

한성무역을 반드시 큰 기업으로 만들어 북한이탈주민 3000명을 고용하는 게 한 회장의 최종 목표다. 현재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이 2만5000여 명인데, 3000명을 고용하면 그 가족들까지 1만여 명이 정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통일 후를 생각하면 탈북자들은 북한과 남한을 잇는 가교역할을 할 ‘예비군’이나 다름없으며 탈북자 지원은 통일을 준비하는 투자라는 것이다.

한 회장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탈북자 노인을 위한 쉼터를 만들어 회사가 비용을 전액 지원해 운영 중이며 향후에는 비영리 교육학원을 설립하여 탈북자 자녀들의 교육에도 이바지하겠다는 계획이다.

“탈북자에 대한 일자리 창출은 귀순동포의 바른 정착과 지속 가능한 발전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기업의 책무”라는 그의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난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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