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대기업 사옥과 풍수

동아일보

입력 2013-12-14 03:00 수정 2013-12-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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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밥먹을 정도로 재물이 풍성한 곳”… 그 주인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풍수지리학자인 조광 미르지리연구소장이 ‘자신의 신조’라고 밝힌 말이다. 사실 이 말은 풍수지리 연구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매출액이 한 해 수조 원 또는 수십 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들도 미래의 운명을 ‘풍수’에 맡기곤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기업활동의 근거지인 ‘사옥(社屋)’이다. 사옥 위치와 출입문 방향, 심지어 화장실이나 경영진 사무실 위치까지도 풍수학자들의 의견을 구한 뒤 결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내 10대 그룹 중 하나인 A사는 아예 풍수학자 7, 8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10대 그룹의 한 계열사는 해외 사업장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 국내 풍수지리학자를 현지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풍수지리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 이 때문에 한 건물을 두고서도 풍수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석이 난무하기도 한다. 해당 기업이 승승장구한다거나 반대로 실적이 부진하면 “그게 다 터가 좋은 덕분” “그게 다 안 좋은 터 때문”이라며 결과론적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면서 국가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비(非)과학적이라는 비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풍수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요즘처럼 극심한 경기불황에 시달릴 때는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들도 ‘하늘의 섭리’나 ‘땅의 기운’에 잠시나마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풍수학자들에게 ‘극찬’을 받는 삼성그룹 서초사옥

동아일보가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한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명당’이라 지목한 곳이 있다. 2008년 금융 부문을 제외한 삼성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옮겨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삼성그룹 사옥이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회장은 이곳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타운은 관악산 지맥이 우면산을 거쳐 입수한 곳으로 남쪽(우면산), 동쪽(역삼역 일대), 서쪽(서초동 법원 일대)이 모두 높고 북쪽이 낮다. 즉, 삼면에서 모인 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에 유입되는 터다. 여러 계곡의 물이 한곳에 모였다가 천천히 흘러나가니 부귀병발(富貴竝發·재산과 지위가 한꺼번에 높아진다는 뜻)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우면산은 소가 누워 있는 ‘와우(臥牛)’ 형태라 누워서 밥을 먹을 정도로 재물이 풍성한 곳이다.”

풍수지리상 가장 좋은 땅의 요건은 ‘배산임수(背山臨水)’다. 산이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앞에는 물이 있어야 기(氣)가 응집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물은 재물운과도 관계가 깊다. 이런 측면에서 삼성 서초사옥만 한 장소가 없다는 게 풍수지리학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 소장은 “서초사옥 터는 어머니 품속 같은 자리”라며 “삼성은 앞으로도 더 발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석우 용인대 사회교육원 교수(풍수지리학)는 “서초사옥은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룬 곳”이라며 “많은 물을 머금은 명당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회장은 이 터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도 궁합이 좋다는 해석도 내놨다. 그는 “중구 태평로에서 서초동으로 옮긴 것은 ‘남동방(南東方)’에 해당한다. 1968년생인 이 부회장과 서로 ‘연년방(延年方)’에 해당해 가업을 계승하고 집안이 편안하기에 매우 길한 방위”라고 말했다.

잘나가는 기업, 망하는 기업은 다 이유가 있다는데

재계 1위 그룹인 삼성그룹이 좋은 터를 잡았다면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어떨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자동차들은 서초구 양재동에 우뚝 솟은 현대차그룹의 21층짜리 건물 2개와 마주친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구룡산 청계산 대모산의 물이 모이는 지점인 이곳을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2001년 현재 서관을 사들여 현대차와 기아차가 입주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임직원들도 늘어나자 2006년 동관을 새로 지었다. 이후 현대차가 동관으로 옮겨갔다. 서관의 빈자리에는 다른 그룹 계열사들이 들어왔다. 동관은 서관과 높이는 같지만 면적이 더 넓다.

신 교수는 “현대차그룹의 반듯한 건물 형태는 풍수지리 관점에서 아주 좋은 형상을 하고 있다”며 “더 좋은 것은 현대차 건물이 기아차 건물보다 더 커서 확실한 서열과 질서가 잡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재계에서는 ‘서울역 맞은편 괴담’이 돌고 있다. 인근에 터를 잡은 굴지의 기업들이 줄줄이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에 사옥을 둔 기업 중 불운을 겪은 가장 최근 사례는 2000년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다 한순간에 추락한 STX그룹이다. GS그룹 주력 계열사인 GS건설도 부동산 경기 추락으로 실적 부진에 신음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을 썼던 대우그룹과 게이트웨이타워를 지어 사옥으로 썼던 벽산건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들 모두 돌발적인 외부 요인과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빚어진 결과지만 풍수지리학자들이 내놓는 해석은 조금 다르다. 풍수에서 터는 면배(面背)로 나뉘는데 면 쪽은 길하지만 등 쪽은 흉하다는 것이다. 서울역 인근으로 치자면 명동이나 남대문 시장이 면(面)에 해당한다. 서울역 맞은편은 등에 해당한다. 신 교수는 “배(背), 즉 등 쪽은 무정한 곳이라 하여 풍수지리적으로는 오래 살아서는 안 되는 곳으로 간주한다”며 “이런 곳에 살면 사람이 다치고 재물이 줄어든다고 했다”고 전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경제 발전의 ‘상징’이었던 대우빌딩은 이후 바뀐 주인에게도 썩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합병(M&A)하면서 대우빌딩을 손에 넣은 금호그룹은 이듬해 7월 이 건물을 외국계 투자회사 모건스탠리에 넘기면서 꽤 쏠쏠한 차액을 남겼다. 그러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을 잇달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동성 위기 탓에 일부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운명을 맞았다. 여기에 오너 형제 다툼마저 벌어졌다.

물론 금호그룹의 사세가 축소된 배경을 2008년 입주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신사옥(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배산임수의 지형지세에 합당한 새문안 교회와 달리 건너편의 신사옥은 터의 기운이 떨어진다는 게 첫째 이유다. 또 약간 휘어져 올라간 건물 형태에 대해서는 “배를 내밀고 남을 질시하는 듯한 거만한 형태로 서 있어 남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비보(裨補·도와서 모자람을 채우는 것) 풍수학’

재계 3위인 SK그룹 본사가 위치한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자리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 터로 유명하다. 이곳은 북한산에서 남진한 용맥(龍脈·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이 북악산으로 솟기 직전에 한 줄기가 삼청공원으로 가지를 친 뒤 낮은 구릉으로 남진해 청계천을 만나면서 지기(地氣)가 응집하고 있다고 풍수지리학자들은 설명한다.

게다가 SK빌딩에는 풍수 최고의 비책이 숨어 있다. 빌딩 정면의 중심에는 거북 머리 형상 구조물을 설치하고 빌딩 네 귀퉁이에는 발 모양의 무늬를 만들었다. 그리고 건물 뒤쪽에 거북꼬리를 뜻하는 삼각문양을 그려 넣었다. 거북이 건물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형상을 완성한 것이다. 고 회장은 “전설에 동해 바다에는 삼신산이 물에 떠 있는데 여섯 자라가 머리로 산을 떠받들고 있다고 했다”며 “빌딩을 거북 등에 세우는 것은 그 빌딩이 나라의 기둥으로서 역할을 다한다는 기원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땅의 모자람을 작은 구조물을 통해 극복하려는 비보 풍수학은 생각보다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부건설이 8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세운 ‘아스테리움 서울’(주상복합 및 오피스텔 단지) 앞에는 코끼리상(像) 하나가 설치돼 있다. 이곳 역시 ‘서울역 맞은편의 괴담’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역이다. 이 구조물은 ‘코끼리→호랑이→개→고양이→쥐(→코끼리)’로 이어지는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다섯 마리의 동물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평온을 유지한다는 뜻)’을 염두에 둔 것이다. 서울역 주변이 풍수지리학적으로 ‘호랑이’ 기운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이를 견제할 코끼리를 건물 주변에 세운 것이다. 그 바람이 통했는지 자금난을 겪던 동부건설은 아스테리움 서울의 오피스동을 10월 한 자산운용사에 매각(3616억 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물론 비보 풍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조 소장은 “쉽게 얘기해서 터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거북과 코끼리를 놓고 출입문 방향을 잘 맞춰도 그 자리가 길지(吉地)가 되진 않는다”며 “모든 것은 땅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싸게는 막걸리 한 잔, 비싸게는 건당 수억 원”


대기업들이 풍수전문가들에게 의뢰하는 일은 사옥에 관한 일 외에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 은밀하게 부탁하는 것 중 하나는 대기업 총수들의 묏자리를 선정해 달라는 일이다. 최명우 현공풍수지리학회 전 대표는 “한 기업의 회장님 묏자리를 알아봐줬더니 최근에 또 다른 의뢰를 해왔다”며 “대부분은 비공개로 해 달라는 전제가 붙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통은 사업하는 분들의 의뢰가 많이 오지만 가끔은 정치인들이 찾아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다른 한 풍수지리학자는 “10대 그룹 중 하나인 B사의 경우 그룹 총수 부인 묘 이장에 이어서 총수 본인의 가묘(사망 시 쓸 묘) 자리를 봐 달라는 일을 맡겼다”며 “제일 많이 받았을 때는 17억 원도 받았지만 어떨 때는 막걸리 한 잔에도 해준다”고 말했다.

장관석 jks@donga.com·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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