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 왔다 삼성으로 간 국세청 전산 책임자

동아닷컴

입력 2013-09-22 14:00:00 수정 2013-09-22 14: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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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개방형 공무원 제도의 불편한 진실

● 방산업체 전 임원, 방위사업청 계약책임자 거쳐 청장까지
● 롯데 출신 검역본부장이 롯데 아이스크림 세균 사건 처리
● 국세청, 전산 책임자에 삼성·LG 출신 인사 번갈아 임명
● 삼성·LG, 국세청 전산사업 60~80% 싹쓸이
● 무늬만 ‘개방형’…해당 부처 인사들이 개방직 독식


지난해 7월,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이하 검역본부)는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아이스크림에서 기준치 이상의 세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세균이 검출된 제품은 롯데제과 ‘돼지바’ ‘옥동자’, 롯데삼강 ‘빠삐코’, 해태제과 ‘누가바’ 등이었다. 검역본부는 즉각 해당 제품에 대한 리콜을 결정했다.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식품이라 검역본부 발표는 큰 파장을 불렀다. 해당 제품 매출도 급감했다. 당시 이 사건을 처리한 검역본부의 수장은 서울대 교수 출신인 박용호 본부장이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 아시아수의과대학장협의회 회장 등을 지낸 그는 2011년 8월 개방직 고위공무원 직위인 검역본부장에 취임했다.


○ ‘세균 아이스크림’ 사건

시선을 끄는 대목은 박 본부장이 ‘세균 아이스크림’ 사건의 당사자인 롯데삼강의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점. 박 본부장은 2010년 3월부터 검역본부장이 되기 직전까지 롯데삼강 사외이사를 맡았고, 그 기간 중 롯데삼강으로부터 6900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박 본부장으로선 불과 1년 전까지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에 칼을 들이댄 셈이다.

올해 4월 롯데푸드로 이름을 바꾼 롯데삼강은 식품 관련 수출입업, 가공·제조업을 하는 회사다. 롯데그룹의 주력회사들과 사주 일가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9.79%), 호텔롯데(9.33%),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87%),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1.87%) 등이 그들.

지난해 검역본부 발표에 따르면 기준치를 초과한 세균이 발견된 아이스크림은 총 8종이었고, 그중 6종이 롯데삼강 등 롯데그룹에서 생산, 판매한 것이었다. 롯데제과 제품 중엔 기준치의 11배가 넘는 세균이 검출된 것도 있다. 그러나 당시 검역본부는 “이번에 검출된 세균은 식중독균이 아닌 일반 세균이므로 인체 유해 정도는 식중독균보다 약하다”(2012년 7월 4일자 조선일보)고 밝혔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후 사건은 잊혔다.

이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검역본부장이 롯데삼강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졌다면 여론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와 관련해 검역본부 측은 “지난해 ‘세균 아이스크림’을 적발한 뒤 관할 자치단체에 즉각 이 사실을 통보했고, 자치단체는 기준에 따라 행정처분을 한 것으로 안다.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사건이 처리됐다. 본부장의 개인 경력이 사건처리에 영향을 준 것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개청준비단 정책기획부장(2005년 8월)과 방사청 계약관리본부장(2006년 3월), 방사청장(2006년 8월~2008년 3월)을 지낸 이선희 전 청장의 사례도 눈에 띈다.

공군 준장 출신인 이 전 청장은 방사청 고위공무원이 되기 직전까지 군수업체이자 상장사인 휴니드테크놀로지스(이하 휴니드)의 부사장(2002년 5월~2005년 8월)을 지냈다. 통신 관련 업체인 휴니드는 항공우주 관련 연구개발, 부품 제조 및 판매 사업뿐 아니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관련 사업에까지 진출해 방산업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던 기업이다.

이 회사는 이 전 청장의 거취에 따라 매출액이 요동쳤다. 2002년 673억 원, 2005년 482억 원에 불과하던 휴니드의 매출은 그가 방사청장에 오른 2006년엔 750억 원, 2007년엔 826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 청장이 퇴임(2008년 3월)한 뒤에는 매출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2008년 매출은 432억 원으로 1년 만에 반 토막이 났고, 이듬해인 2009년 매출도 611억 원에 그쳤다. 지난해 매출액은 410억 원이었다. 이 전 청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라는 증거는 없지만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휴니드는 이 전 청장이 청장에 취임하고 보름 남짓 지난 뒤엔 미국의 보잉사로부터 2000만 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2006년 8월 26일). 이로써 보잉사는 휴니드의 2대 주주(지분 17.44%)가 됐다.


○ 거취 따라 실적 등락

개방형 고위공무원 제도를 통해 농림수산검역본부장을 맡은 박용호 전 서울대 교수(앞줄 가운데). 2011년 12월 박 본부장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휴니드가 체결한 각종 계약을 살펴보면 이 전 청장의 거취에 따라 움직인 경영실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휴니드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2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 64건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가운데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 군과 맺은 계약은 34건. 국방과학연구소 등 군 관련기관과의 계약을 포함하면 건수는 더 늘어난다. 그런데 휴니드가 군과 맺은 계약은 주로 2002~2007년에 몰려 있다. 이 기간은 이 전 청장이 휴니드 부사장을 거쳐 방위사업청에 몸담았을 때다.

2003년 휴니드가 맺은 5건의 계약 중 4건이 국방부 발주 사업이었고, 2004년에는 6건 중 5건이었다. 2005~2008년 휴니드가 맺은 계약은 35건인데, 그중 21건이 방사청 등 군에서 발주한 사업이다. 그러나 이 전 청장이 방사청을 떠난 이후 휴니드의 계약건수, 특히 군 관련 계약은 급감한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약 5년간 맺은 19건의 계약 중 방사청과 맺은 계약은 4건에 불과하다. 2003~2008년 휴니드가 방위사업청과 체결한 주요 계약은 다음과 같다.

△2003년 8월 AM무전기 외 24항목 공급(46억6800만 원) △2004년 6월 차기 FM무전기 장치대 공급(24억7200만 원) △2005년 12월 다중채널 VHF장비 공급(32억3000만 원) △2006년 8월 보잉사와 함께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사업 참여 △2006년 9월 다중채널 VHF 장비 공급(515억5000만 원) △2007년 11월 다중채널 VHF 성능개선사업 참여(61억600만 원) △2008년 7월 FM무전기 장치대 공급(49억 원)

2010년 휴니드 대표는 회삿돈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은 “휴니드는 부품 수입 과정에서 수입자재비를 과다계상하거나 부품원가를 부풀려 방사청과 계약하는 방법으로 수년 동안 비자금을 조성해왔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이 전 청장에게 취재 내용을 알린 뒤 입장을 들었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휴니드에서 부사장과 고문을 지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아 책임을 지고 그만뒀다. 방사청에 근무할 당시 나는 휴니드로부터 어떠한 청탁도 받거나 들어준 적이 없다. 휴니드를 떠난 뒤 사적인 자리에서 휴니드 측 인사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내 거취에 따라 휴니드의 매출, 계약건수가 움직였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방사청은 구조적으로 개별 기업과의 계약에 청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었다.”


○ 삼성, LG, 국세청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이 이선희 방위사업청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국세청의 대표적 개방직인 전산정보관리관(이하 전산관리관)은 2006년 직위 개방 이후 3명이 거쳐 갔거나 재직 중이다. 첫 개방직 전산관리관은 삼성그룹 출신의 이철행 씨. 이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총괄팀장을 지내다 국세청으로 옮겼다.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미국 유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삼성SDS 컨설팅사업부를 시작으로 삼성그룹 Y2K지원팀, 정보전략팀 등에서 일한 정통 ‘삼성맨’이다.

2009년 1월 이 씨가 물러난 뒤 이 자리에는 LG CNS 임수경 상무가 발탁됐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LG CNS 기술대학원장, 기술연구부문장, 사업개발부문장 등을 지냈다. 임 씨 후임에는 국세청 내부 인사가 발탁됐다. 지난해 7월 임명된 김재웅 관리관이다. 세무대 1기 출신의 정통 세무공무원인 그는 국세청 조사2과장 등을 지냈다. 김 관리관은 현재 국세청이 야심 차게 준비 중인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추진단 단장도 겸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산관리관을 배출한 삼성과 LG가 매년 국세청이 발주하는 전산 관련 사업을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는 점. 국세청이 최근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을 통해 공개한 자료(정보화사업 계약 체결 현황)에 따르면, 삼성과 LG는 2000년대 이후 매년 국세청이 발주하는 전산사업의 60~80%를 독식하고 있다. 이 씨가 전산관리관을 맡았던 2008년의 경우 삼성(삼성SDS,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은 그해 국세청이 발주한 전산 관련 사업의 45.4%를 수주했다. 금액으로는 431억 원이 넘었다. 같은 기간 LG그룹이 수주한 액수도 343억 원에 달했다.

임 씨가 전산관리관이 된 첫해인 2009년에는 삼성과 LG의 수주 금액이 역전됐다. 삼성 계열사가 23.1%(46억 원) 수주에 그친 반면 LG 계열사들은 40%(80억 원)를 독식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엔 다시 삼성이 주도하고 있다. 삼성은 2010년 전체 발주 금액의 59.8%(605억 원)를 수주한 데 이어 2011년에는 280억 원(42.6%)을 수주했고, 지난해에는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 전면 개편 1단계 사업 사업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삼성이 국세청에서 수주한 사업은 495억 원이 넘는다.

삼성과 LG의 국세청 전산사업 독점 문제는 2010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다. 당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2009년 국세청 전산 프로그램 운영비 213억 원 중 80%가 삼성과 LG 두 회사에 편중됐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의 첫 개방직 전산정보관리관을 지낸 이철행 현 삼성SDS 통합서비스팀장(오른쪽). 2007년 7월 5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부동산 거래 의혹과 관련된 자료 유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국세청 전산실을 방문한 한나라당 차명진, 윤건영 의원(왼쪽부터)이 취재진의 출입을 막지 말라며 연좌농성을 벌이자 이철행 당시 관리관이 일어나라고 부탁하고 있다.
첫 개방직 전산관리관을 지낸 삼성전자 출신의 이 씨가 국세청 퇴임 직후 삼성그룹의 전산 전문 기업인 삼성SDS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삼성SDS가 참여하고 있는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 사업은 규모가 2300억 원에 달한다. 삼성SDS는 지난해 1단계 사업에 이어 올해 2단계 사업도 수주했다. 업계에서 “삼성SDS가 국세청 전산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게 됐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까닭이다.

이 씨는 삼성SDS 통합서비스팀장을 맡고 있다. 삼성SDS 관계자는 “통합서비스팀은 조직 내에서 직간접적으로 국세청 사업 등 SI(system integration)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SI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 시스템에 관한 기획에서부터 개발과 구축, 운영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국세청이 추진하는 각종 전산사업도 대부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씨에 이어 전산관리관을 지낸 임수경 씨는 국세청 퇴임 직후인 지난해 12월 KT로 자리를 옮겼다. 임 씨는 G·E 시스템사업본부장을 거쳐 현재는 글로벌앤엔터프라이즈부문 G·E 사업 총괄전무를 맡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신회사인 KT는 수년 전부터 SI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KT가 국세청 관련 사업 참여를 염두에 두고 임 전무를 영입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 “경제검찰이 어떻게…”

국세청 전산망은 우리나라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개인과 법인이 수행하는 경제활동 정보가 여기로 모인다. 국세청은 이 시스템을 바탕으로 기업과 개인에 대한 세무조사와 세금징수를 진행한다. 지난 3월 ‘주간경향’ 보도에 따르면, 국세청은 1970년대 말부터 개인의 기록을 전산화했고 부동산거래 정보는 1981년부터 기록하고 있다. 국세청은 금융기관에 의뢰해 개인의 금융거래 내역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의 가족관계는 물론 병력, 사업내역, 체납내역 등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7월 제정된 ‘과세자료의 제출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정부 기관이 가진 세금 관련 정보를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출케 하고 있다. 개인과 법인은 물론 정부기관 정보까지 국세청에 취합되고 있는 것. 국세청 전산 정보가 잘못 활용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지난 6월엔 국세청 일부 직원들이 국세청 전산망에서 개인 정보를 무단 유출해 사적으로 활용한 사실이 내부 감찰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개인 정보를 세무사에게 빼준 사례도 적발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이렇게 우려했다.

“모든 경제주체에게 영향을 주는 정보화 사업을 특정 대기업이 싹쓸이하고, 또 이들 대기업 출신 인사가 개방형 직위라는 이름으로 국세청 총괄책임자를 맡고, 임기가 끝난 후엔 다시 해당 대기업으로 가서 ‘전관예우’를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검찰’이라 할 국세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이들은 국세청이 국회에도 주지 않는 보안자료들을 다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아닌가. 국가의 정보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편으론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 대기업 출신이 국세청 전산관리관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직 국세청 고위간부는 “기업 출신 전산관리관이 국세청 전산망의 정보를 활용하거나, 특정 기업이 이를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은데, 국세청 전산망이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세청 인사부서 관계자는 “전·현직 전산관리관 3명 모두 정상적인 공모를 거쳐 임명됐다. 국세청은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인사를 하지 않는다. 또한 2명의 사기업 출신 전산관리관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개방형 직위제는 정부 내 직책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에게 개방하는 제도다. 1999년 5월 국가공무원법 개정과 함께 공직사회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해 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폐쇄적인 공직사회 문화를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4년간 이 제도를 놓고 찬반 양론이 끊이지 않았다. 더 많은 자리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고, 공직사회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정실인사(情實人事)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 도입 취지 무색

‘신동아’는 정부 전 부처를 대상으로 ‘개방형 직위 중 3급 이상 고위공무원의 현황과 신상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170개의 3급 이상 고위공무원 직위와 135개의 과장급 직위를 개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2013년 6월 30일 현재). 이들과 성격이 좀 다르지만 공모직위도 91개에 달했다. 공모직위제는 효율적인 정책수립 또는 관리를 위해 직위별로 임용자격요건(직무수행요건)을 미리 정해놓고 결원 발생 시 그 요건을 갖춘 자를 정부 내에서 공개 모집하는 제도. 외부 개방이 아니란 점에서 개방형과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가 민주당 임수경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최근 4년간 중앙부처 개방형 직위 임용자 현황)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 9월까지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개방형 직위 임용자 302명 중 249명(82.4%)이 부처 내부 인사거나 타 부처 공무원이었다. 해당 부처 내부인사 비중은 75.9%에 달했다. 중앙부처 개방형 직위 고위공무원에 민간인이나 타 부처 공무원이 임명된 비율은 2007년 56.8%에서 2011년엔 35.2%로 하락했다.

6개의 고위공무원 직위를 개방한 기획재정부는 타 부처와의 인적 교류는 비교적 원활한 편이지만 민간인 출신을 임명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22개의 직위를 개방한 외교부도 2008년 이후 임명된 개방형 직위에 민간인 출신이 앉은 적은 없다. 개방형 직제를 총괄·관리하는 안전행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감사책임자를 개방형 직위로 임명토록 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이 2011년 7월부터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현 감사관을 포함해 역대 감사관(5명) 전원이 내부 인사였고 해양수산부,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관도 모두 내부 인사였다. 국세청은 2011년 퇴임한 감사원 출신의 문호승 감사관을 제외한 4명이 모두 내부 인사였다.

외부 인사를 감사관에 임명한 부처는 외교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방위사업청 등이었다. 외교부와 경찰청의 경우 2008년 이후 임명된 감사관은 모두 감사원 출신이었다. 방위사업청은 그동안 안전행정부 출신 인사를 감사관으로 임명해왔고, 농림축산식품부 감사관은 감사원 출신이었다. 국토교통부 신인철 감사관과 교육부 박준모 감사관은 검찰 출신 인사여서 눈길을 끌었다. 신 감사관은 청주지검 차장, 박 감사관은 인천지검 강력부장을 지냈다.

일부 부처는 개방형 고위공무원 제도가 실시된 초기에는 다양한 분야의 민간인을 특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부 인사 비중이 높아졌다. 국무조정실에서 가장 먼저 개방형으로 바뀐 정책평가관리관의 경우 2005년 건국대 하만형 교수(현 중앙대 교수), 2007년 서울대 연구원 출신의 고기석 씨를 임명했으나 이후에는 국무총리실 내부 인사들이 자리를 채웠다. 환경부도 감사관과 국립환경과학원장 같은 자리에 외부 인사를 임명한 적이 있으나 지난해부터는 내부 인사가 기용됐다.


○ 김앤장 출신 다수

김앤장에서 왔다 김앤장으로 돌아간 이지수 전 국세청 납세자보호관.
법조인에서 관료로 변신하거나 개방직 공무원을 거쳐 법조계로 자리를 옮긴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특허청의 경우 개방형 직위를 거쳐 간 전직 고위공무원 중 상당수가 관련 업계에 진출해 있었다. 주로 특허법률사무소나 관련 협회였다.

2009년 국세청 납세보호관이 된 이지수 변호사는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출신이다. 김앤장이 대기업의 세무 관련 소송을 많이 맡아왔기 때문에 그가 납세보호관에 임명되자 논란이 빚어졌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강성종 민주당 의원은 “김앤장 출신이 납세자보호관에 임명돼 세무조사 중지, 조사반 교체, 직원 징계 요구 등 국세청 내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올해 초 국세청을 떠나 김앤장으로 돌아갔다.

한철수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은 공정위 부이사관이던 2003년부터 1년간 휴직한 뒤 김앤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이후 한 처장은 다시 공정위로 돌아와 시장감시국장 등을 거친 뒤 개방직인 소비자정책국장에 올랐고, 2011년 1월 사무처장이 됐다.

2009년, 공정위 개방직인 심판관리관에 임명된 판사 출신의 김은미 관리관은 2007년까지 삼성그룹에서 일했다. 삼성그룹 법률자문, 삼성카드 준법감시실장을 맡았다. 공직에 진출할 당시에는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관세청 감사관 중에는 LG그룹 출신이 있었다. 2007년부터 3년간 재직했던 류상기씨다. LG그룹 비서실 감사팀을 거쳐 LG카드 전략기획 담당 상무를 지낸 류상기 씨는 2007년부터 3년간 관세청 감사관으로 재직했다.

2006년, 개방직인 방사청 획득기획국장에 임명된 김종민 전 해군 준장은 방사청 차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9년 국방조달업무로 특화한 법무법인 한신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사청 계약관리본부장을 지낸 송학 씨도 2010년 퇴임 후 법무법인 김앤장으로 옮겼고, 국방부 출신으로 방사청 전산정보관리소장과 계약관리본부 원가회계검증단장을 지낸 김용남 씨는 퇴임 직후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옮겼다. 2011년 8월부터 현재까지 방사청의 사업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오태식 본부장은 방사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삼성항공산업,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상무를 지낸 민간인 출신이다.

퇴직공무원이 대기업이나 로펌으로 가는 문제는 종종 논란이 됐다. 특히 공직에 있을 때 맡은 업무와 연관이 있는 사기업으로 진출할 경우가 심각했다. 올해 4월에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검사 출신인 이재원 전 법제처장의 법무법인 율촌 취업을 불허한 바 있다. 공직자윤리법(17조)은 공직자가 일정 기간 내 업무 연관성이 있는 사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을 법으로 막고 있다. 17조(퇴직공직자의 관련 사기업체 등 취업제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급이나 직무분야에 종사한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의 임직원은 퇴직일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하였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기업체 등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의 승인을 받은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방형 직위제를 통해 고위공무원이 된 사람들도 퇴직 후에는 공직자윤리법의 규정을 받는다. 길어야 5년, 짧으면 2~3년만 공직에 몸담고도 원칙적으로는 퇴직 후 2년간 업무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적용 정도는 느슨한 편이다. 공직자윤리위 관계자는 “공무원이 되기 전에 일하던 분야로 돌아가는 경우에는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허가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앞의 몇몇 사례를 살펴보면 개방형 직위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직을 떠난 뒤는 물론이고 공직 재직 중에도 감시의 눈길이 필요할 듯하다. 당장 드러난 잘못이나 부정은 없다 해도 공직이 사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 고위공무원으로 변신한 전문가들

김재련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 양근복 국세청 감사관, 신호영 국세청 납세자보호관.(왼쪽부터)
지난해 4월 국세청은 신호영 고려대 법학과 교수를 납세자보호관에 임명했다. 196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신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를 나왔고 행정고시(39회)와 사법시험(37회)에 합격했다. 행정고시 합격 후 국세청 일선 세무서와 서울지방국세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지냈고 2009년부터는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으로도 일했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최고의 적임자가 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 국세청의 생리를 잘 아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 보호관 이전에 납세자보호관을 지낸 이지수 변호사와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에 대해서도 조직 안팎에서 좋은 평가가 많았다.
지난 6월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에 오른 김재련 변호사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인권 문제 전문가인 그는 변호사 시절 연예인 지망생 성폭행 사건,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된 성범죄 사건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았다. 최고의 인권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국세청 감사관에 취임한 양근복 전 서울고검 검사도 화제의 인물이다. 그는 2008년 감사원 출신의 문호승 전 감사관에 이어 두 번째로 외부 출신 감사관이 됐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그가 국세청 공무원들의 근무 기강을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원칙을 강조하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판 때문이다.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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