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예산 ‘잔디 깎기’… 정치권 압력에 ‘누더기 편성’ 위험

동아일보

입력 2013-09-11 03:00 수정 2013-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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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 늘고 지역사업 줄고… 2014년 멀어지는 균형재정

《 내년도 복지예산이 사상 처음 100조 원을 돌파하는 것은 고령화 추세로 국가가 구축해온 사회 안전망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대폭 늘어난 데다 출산장려와 저소득층 지원에 투입하는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 이외의 분야에 배정된 예산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예산안 편성 전부터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따내려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정치적 압력이 커지면서 내년도 예산이 ‘누더기 예산안’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 수혜대상 늘어 복지예산 급속 증가

복지예산이 늘어나는 분야를 보면 신규사업이 많아졌다기보다는 기존사업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령화 추세로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올해 7월 340만 명에서 내년 말 374만 명으로 늘어난다. 기초노령연금도 수급자가 많아져 정부가 내년에 부담해야 할 돈이 5조 원으로 올해보다 2조 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복지공약 중 하나인 고교 무상교육사업은 내년에 도서벽지부터 시작해 2017년에는 전국으로 확대된다. 정부 세수(稅收)가 부족해 단계적으로 수혜대상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또 기초생활보장을 받던 수급자가 생활여건이 약간 나아져 정부 보조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 교육비와 의료비를 2년 동안 지급하고 있는데 이 규모를 점차 늘릴 예정이다.


○ 줄어든 예산 따내기 각축전

기획재정부는 복지를 제외한 사회간접자본(SOC),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외교 등 다른 분야의 예산을 대폭 깎는 1차 심의와 소폭 깎는 2차 심의를 최근 마쳤다. 이 작업은 기재부 내부기준에 비해 유달리 많은 예산을 일률적으로 깎는다는 의미에서 ‘잔디 깎기’라는 은어로 통한다. 잔디 깎기 과정에서 가장 큰 폭으로 예산이 삭감된 분야는 SOC다. 그중에서도 철도사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일례로 공사가 장기간 중단된 경전선 전남 보성∼임성리 구간(79km)은 국토교통부가 200억 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기재부는 ‘잔디 깎기’ 과정을 거쳐 단 2억 원만 배정했다. 사실상 공사를 중단하고 용지가 황폐화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관리만 하라는 의미다. 이천∼문경, 포항∼삼척, 동두천∼연천, 진주∼광양 철도공사는 모두 2차 심의까지 예산을 전혀 배정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석준 기재부 제2차관과 예산실 공무원들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로 불려 들어갔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복지예산을 많이 늘리고 SOC 예산을 줄인다는 얘기가 돌면서 지역사업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예산을 총괄하는 이 차관에게 국회에서 협의를 갖자고 요구한 것. 예산 편성 과정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공식 당정협의에서 한 의원은 “지역구에선 당연히 철도가 건립되는 줄 알고 있는데 예산이 한 푼도 배정되지 않으면 내 체면이 안 선다”고 하소연했다. 이미 많은 국회의원들이 몇십억 원이라도 예산을 따내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뒤 예산 규모를 늘리려면 최소한 정부 예산사업 리스트에 들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금액과 상관없이 일단 예산을 배정받으려는 것이다.

기재부는 평창올림픽 유치로 착공을 서둘러야 하는 원주∼강릉 철도와 현재 진행 중인 고속철도 건설에 철도예산을 집중 투입할 예정이다. 전체 철도예산 한도가 1년에 6조∼7조 원 정도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급하지 않은 철도공사에 돈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 당국자는 “철도사업은 덩치가 크고 사업기간이 길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예산안 통과의 칼자루를 쥔 의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 고민에 빠졌다. 실제 정치권의 로비가 일부 먹혀들어 예산에서 완전히 빠졌던 사업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복지자금 잘 전달하는 체계 필요

전체 예산안에 영향을 주는 핵심 분야인 복지예산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돈만 늘릴 게 아니라 돈을 전달하는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취업자 대비 공무원 수의 비율은 2011년 기준 3.92%로 2010년(4.39%)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민간의 복지 분야 종사자 비율은 2011년 5.41%로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저소득 서민에게 복지자금을 전달하는 업무를 민간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복지 선진국으로 통하는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호주 스페인 등은 모두 공무원이 복지전달체계를 맡아 복지예산의 누수를 최소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도 자금집행과정을 정밀하게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춘 상태에서 공공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본다. 김종숙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은 “복지가 필요한 곳에 정확히 돈이 들어가도록 하려면 지역 사정을 꿰뚫고 있어 부당수급을 막아줄 사회복지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홍수용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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