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바닥은 아랫집의 천장” 소통-배려가 소음갈등 해결사

동아일보

입력 2013-09-06 03:00 수정 2013-09-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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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해결, 이렇게 하면 100점]<하>민원 제로 아파트 가보니

‘우리 집 바닥, 아랫집 천장입니다.’

지난달 23일 찾은 경기 하남시 신장동의 동일하이빌아파트 승강기에는 얼마 전까지 이런 캠페인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곳은 층간소음이 없는 아파트로 유명하다. 올해 5월에는 서울시에서 주최한 ‘층간소음 해결 세미나’에 우수사례로 초대받았을 정도다.

이 아파트 관리소장 권영섭 씨는 “층간소음은 ‘데시벨’의 문제가 아닌 이웃과의 약속 문제”라며 “주민들이 캠페인에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층간 소음갈등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곳도 지난해까지는 여느 아파트처럼 층간소음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438가구가 함께 사는 큰 단지라 의자 끄는 소리, 아이 뛰는 소리, 가전제품 소음 등을 호소하며 이웃 간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았고 신고되는 민원이 한 달에 20건이었다.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자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층간소음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머리를 맞댔다. 전문가를 초청해 교육을 받는 한편 주민끼리 3차례 공청회를 벌여 8개 항목의 규칙을 정했다.

원칙은 간단했다. 시간 규칙을 정해 최선을 다해 지키자는 것.

집마다 시간대에 대한 의미가 다르지만 이 차이를 극복해 보기로 했다. 오후 9시면 어떤 집에서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지만 다른 집에서는 퇴근 뒤 가족의 여가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이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벌였고 이를 바탕으로 생활 규약을 만들었다. 세탁 청소 등 가사, 악기 연주, 운동기구 사용 등은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금지됐다. 물 쓰는 시간도 정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시정권고를 내리고 3번 위반하면 5만 원을 관리비로 징수한다.

벌칙도 벌칙이지만 이웃 간 친밀도를 높이려는 노력도 주효했다. 승강기와 게시판에는 ‘웃으며 인사하기’ 같은 글귀가 붙었다. 정창연 대책위원장은 “옆집, 윗집, 아랫집과 인사를 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되면 서로 양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규칙이 처음 도입된 지난해 10월 이후 민원이 서서히 줄기 시작했고, 최근 석 달 동안 관리사무소로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민원은 단 한 건도 없다.

국토교통부의 ‘층간소음 예방 우수사례’ 대상 수상 단지로 확정된 경기 오산시 금암동 ‘금암마을 휴먼시아3단지’도 이웃 간 소통을 통해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했다. ‘이웃사촌 맺기’와 ‘더불어 사는 세상’ 운동을 하면서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바자회와 노래자랑 행사를 열고 꽃 심기 행사도 벌였다.

전문가들은 두 아파트 사례처럼 아파트 입주민들의 공동체 문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규제를 강화해도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고 본다. 국토부는 층간소음 예방 주민행동 요령이 담긴 표준관리규약 준칙을 하반기 전국 시도에 배포할 방침이다. 가사, 악기 연주, 아동 소음, 인사하기 등에 대해 세부 규칙 예시를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자율적 규약을 만들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소음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기술적 보완만으로는 층간소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주민들의 자율과 배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남=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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