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의 힐링투어]일본 니가타 속살 트레킹

동아일보

입력 2013-09-05 03:00 수정 2013-09-0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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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하면 설국&사케?
스노피크 본사를 품은 호텔급 캠핑장도 숨었네


긴잔다이라에서 산길로 40분 정도 가면 닿는 해발 1000m의 아라사와 계곡의 중턱. 이곳의 눈은 한여름에 녹지 않고 이렇듯 쌓여있는 만년설로 두께는 최고 12m쯤 되는데 그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니가타현 아라사와 계곡=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영화 ‘설국열차’를 보며 일본의 니가타(현)를 생각했다. 니가타는 도쿄 북부, 속초에서 동해에 자를 대고 수평으로 줄을 그으면 닿는 혼슈(本州) 서해안. 눈 많이 내리기로 이름난 곳으로 스키, 간기(雁木·눈처마), 레르히(최초의 서양스키 전수자) 등이 그 상징이지만 역시 으뜸은 일본에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설국(雪國)’이다. 그 무대가 눈 덮인 니가타며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집필한 곳 역시 에치고유자와(현 유자와 정)다. 그래서 니가타는 그 자체로 ‘유키구니(설국)’라 불린다. 이 소설과 영화의 이미지가 일치를 이룬 것은 기차. 소설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 펼쳐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주인공 시마무라(무용평론가)를 태운 ‘설국열차’가 군마와 니가타 두 현의 경계를 이룬 산악의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올 때 펼쳐진 한밤의 설경에 대한 짧은 묘사다.

니가타의 이해를 돕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쌀이다. 니가타는 일본의 곡창으로 벼는 에치고 산맥과 바다(동해) 사이 에치고 평야와 산간의 계단논에서 두루 경작된다. 그리고 긴 일조 시간과 겨우내 엄청난 강설, 그게 녹아 이룬 일본 최장 시나노 강의 풍부한 물이 그 벼를 키운다. 일본 최고 품질의 사케 역시 이 쌀과 눈 녹은 지하수로 빚는다. 현 가운데 최다 양조장(92개), 일본 최고의 도지(杜氏·사케 양조장인), 최다 고급주(긴조슈) 생산량과 1인당 술(사케) 소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이처럼 니가타의 상징인 눈. 그건 다시 니가타를 일본 스키의 발상지(1921년 조에쓰 시)로 만들었다. 또 쓰바메·산조 시의 솜씨 좋은 장인과 그 손에서 다듬어진 정밀한 가공품 및 공예품 역시 그 눈의 산물이다. 그건 스위스가 시계로 유명해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긴 겨울 눈에 갇혀 지내는 이런 곳에선 집중력이 높아져서다. 술 양조도 같다. 긴 겨울을 극복하는 데 술만 한 친구도 없잖은가. 또 춥고 흐리며 눈 덮인 산하는 품질 좋은 사케 양조에 더없이 기막힌 조건이다. 니가타의 고급스러운 사케 맛이 그 눈에서 비롯한 부드러운 연수(軟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도 역시 눈이 기여한 바 크다.

여행의 묘미란 낯선 곳을 찾아 그들의 일상을 살피고 거기서 전혀 뜻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접하며 소박한 기쁨을 얻는 데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인문학적 지식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낄 수 있어서다. 이 정도 지식이라면 이제 니가타를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생겼을 것으로 본다. 그러니 이제 니가타로 여행을 떠나 보자.


만년설의 냉장고계곡 아라사와

해발 190m의 산중턱 초원구릉의 스노피크 캠핑장. 텐트 뒤로 보이는 건물이 스노피크 헤드쿼터(본사)다.
만년설이란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눈. 얼지도 흐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빙하(氷河)와는 구별된다. 그런데 이런 곳이 니가타 현에 있다. 긴잔다이라의 아라사와 계곡이다. 연중 눈이 쌓였다니 높은 산중일 거라 짐작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해발 1000∼1500m의 가파른 계곡이다. 폐광마을 긴잔다이라에서 산길 1km(40분) 거리로 마을에서 멀지 않다.

지난주 찾은 이곳. ‘V’자 계곡의 만년설에서 옅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12m 두께의 눈더미 아래에선 계곡물이 힘차게 흘렀다. 설면은 나뭇잎 흙먼지로 덮여 거무스름했다. 그래도 눈은 눈. 100m쯤 앞으로 다가가자 냉장고 문을 열 때처럼 냉기가 전해왔다. 설면에 올라서 기온을 쟀다. 섭씨 20도. 긴잔다이라보다 7도가량 낮았다.

이렇다 보니 한여름에 찾는 이가 많다. 이곳까지 오는 길은 그 자체가 특이하다. 산악도로와 터널, 산정호수의 뱃길까지 다양해서인데 니가타 버전의 ‘알펜루트’(네 가지 교통수단을 이용해 도야마∼나가노의 3000m 산악을 관통하는 산악관광지)라 할 만한다. 첫 번째는 해발 750m의 오쿠타다미 댐까지 오르는 ‘오쿠타다미 실버라인’ 산악도로. 총연장 25km 중 무려 22km가 터널구간이다. 1960년대 도쿄에 전력 공급을 위해 오쿠타다미 댐을 세울 당시 공사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뚫은 것인데 지금은 관광용으로 쓰인다. 두 번째는 댐의 호수를 유람선으로 건너는 40분간의 수상여행. 배에서 내리면 거기가 긴잔다이라다.

해발 750m의 긴잔다이라는 한때 은광이 있던 곳. 지금은 산악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아라사와 만년설계곡 트레킹이나 맑고 깨끗한 계곡에서 곤들매기와 송어 낚시를 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 이곳에선 매년 공설운동장에 눈 더미를 쌓아 거적으로 덮어 보관해 두었다가 7월 말 그걸 이용해 유노타니 유키마쓰리(눈축제)를 연다. 숙박촌엔 온천이 딸린 통나무집도 있다. 여기서 잡은 곤들매기 소금구이에 송어회를 곁들인 소바 세트는 만년설 트레킹의 묘미를 배가시킬 기막힌 선택이다.


천상의 캠핑, 스노피크 헤드쿼터 캠프필드

캠퍼라면 누구나 침을 흘리는 캠핑 브랜드가 있다. 스노피크(Snow Peak)다. 처음엔 품질과 디자인에, 다음엔 가격(고가)에 놀라는 캠핑 명품이다. 그런데 이게 니가타 브랜드란 사실은 니가타를 십수 차례 취재해 온 나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나는 최근 스노피크의 소재지를 듣고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거기가 세계 최고의 정밀가공품을 만들어 내는 수공업 장인의 본산 쓰바메·산조 시여서다. 이곳 장인의 우수성은 흔히 노벨상 수상식장의 디너 테이블을 통해 소개된다. 포크와 나이프 등 테이블 웨어(철제)가 모두 쓰바메·산조 시에서 만든 명품이다.

나는 스노피크 본사―‘헤드쿼터’라 부름―에 캠프장이 있다는 말에 그리로 향했다. 그런데 가 보니 그 모습은 반대였다. 캠핑장에 본사가 들어선 모습이었다. 그곳은 시내에서 차로 15분쯤 오른 산 중턱. 온통 산에 둘러싸인 구릉의 초원에 캠프 몇 동이 그림처럼 설치돼 있었는데 이게 스노피크 캠핑장(해발 200m)이었다. 헤드쿼터는 입구에 있는데 건물 자체도 특이했다. 사방이 통유리창인 하얀 직육면체(지하 2층, 지상 1층) 건물이었다. 태양광발전기로 전기의 25%를 충당하고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건물의 3분의 2를 지하에 매몰시킨 자연 친화형이다.

텐트는 헤드쿼터 바로 옆 잔디밭에도 설치됐다. 캠핑 혹은 쇼핑차―헤드쿼터 지상 층의 절반이 직매장―들른 고객이 직접 보고 만지도록 한 것인데 내구성 테스트도 겸한다. 저녁 무렵 초원에선 캠퍼들이 서서 타는 두 바퀴 자동차로 캠핑장 곳곳을 오갔다. 그리고 노을 아래 랜턴 불이 켜지면서 광대한 초원에 단 네 동의 캠프만 있던 캠핑장은 천국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휴가철 한국의 캠프장―모두 그런 건 아니라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샤워장 화장실 개수대 모두 캠핑장의 오성호텔 수준이다.


니가타 장인정신의 극치, 가메노오(龜の翁)

감히 말한다. 일본 전국에서 수많은 사케가 양조되지만 그건 두 종류, 니가타 것과 그 나머지로 나눌 수 있다고. 7년의 취재 결과 얻은 이 결론은 일본 대표 명주의 반열에 니가타산―고시노칸바이 핫카이산 구보타 등―이 최우선적으로 언급되며 동시에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최다 양조장(92개), 최다 고급주 생산량, 도지(양조기술자)의 명가란 기록은 사족이다.

그 비결, 역시 눈에서 왔다. 쓰바메·산조의 장인처럼 긴 겨우내 한 가지 일에만 천착하는 집중력, 밖으로 벌이기보다는 안으로 파고드는 완벽성, 내세우기보다는 스스로 즐기는 소박함. 이 모두가 산과 바다에 둘러싸여 눈과 함께 지내는 불편한 환경에서 왔으니 지리로 삶을 조명하는 인문지리의 시각은 이 니가타에서 더더욱 효과적이다.

가메노오는 180년 역사 구스미슈조(久須美酒造·창업 1833년)의 대표 사케다. 7대째 대물림 된 이 양조장은 92개 양조장 중 16개(전체 생산량 50% 차지)가 밀집한 나가오카 시 외곽의 논 과 숲 사이에 있다. 가메노오를 장인정신의 극치라 부르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6대 사장 구스미 노리미치 회장이 보여준 노력에 감복해서다. 이 술은 가메노오(龜の翁)라는 쌀로 만드는데 1945년 이후엔 사라진 품종.

구스미 회장은 이 쌀로 빚은 옛 술맛을 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쌀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1980년 볍씨가 매달린 이삭 몇 개를 어렵사리 구했다. 거기서 얻은 볍씨는 1500알. 그는 그것으로 쌀농사를 지어 술을 빚었다. 그렇게 양조에 성공한 술이 품종과 발음은 같고 글자만 다른 가메노오다. 이 극적인 스토리는 한 만화가에게 알려져 ‘나쓰코노사케(夏子の酒)’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연재되고 단행본으로도 발간돼 인기를 모았다. 또 그 만화를 토대로 후지TV가 드라마를 제작, 방영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현재 가메노오는 세 종류가 판매되고 있는데 그 맛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깊다. 잃어버린 옛 맛을 찾는 사케 애호가와 주당에겐 꼭 한 번 마시고 싶은 술로 등극했다. 그런 까닭에 희소성까지 더해져 4000엔짜리 한 병이 그 열 배로 거래되기도 한다.


■Travel Info
◇항공편: 인천∼니가타 매일 운항(대한항공·2시간 소요)


◇긴잔다이라 ▽찾기=조에쓰신칸센 우라사 역 하차. 도쿄∼우라사 100분 소요. 역∼오쿠타다미, 긴잔다리아는 합승택시 이용. ▽유노타니 여름 유키마쓰리=매년 7월 하순 긴잔다이라에서 열림. www.unotani.com ▽우오누마 시: 일본 최다 강설 지역. 고시히카리 쌀 명산지. www.city.uonuma.niigata.jp/kankou www.uonuma.com www.uonumakara.com


◇스노피크 캠핑장: 캠핑(장비 대여)은 물론이고 겨울 아웃도어 액티비티(스노모빌 설피워킹 등)도 가능. 직판장 가격도 저렴하다. 쓰바메산조 역(조에쓰신칸센)에서 차로 15분. www.snowpeak.com


◇구스미슈조: 양조장 견학 불가. 가메노오는 니가타공항 내 상점에서 판매.


◇이와무로 온천: 낙조 명소 마제 해안의 야히코 산(www.yahico.com) 신사로 이어지는 길목. 에도시대 300년간 참배객의 사랑을 받았다. 수질은 약알칼리성 유황천. 산조쓰바메 나들목에서 20km. www.iwamuro.info


▼스노피크 캠핑 포함, 니가타 3박4일 패키지

일본 캠핑과 트레킹 전문 에나프투어에선 스노피크에서 캠핑(1박·장비 대여 포함)하며 이틀간 렌터카로 니가타를 여행(긴잔다이라 만년설계곡, 야히코 신사, 사케 양조장)하는 3박 4일 패키지(99만9000원)를 판매 중.

무라스기 온천에선 료칸, 니카타 시내에선 호텔 숙박. 인천∼니가타 직항(대한항공) 이용. 4박 5일(김포∼하네다, 니가타∼인천 항공편)은 139만9000원. 02-337-3088, www.enaftour.co.kr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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