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탈세 온상’ 부가세 납세방식 허점

동아일보

입력 2013-08-20 03:00 수정 2013-08-20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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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덜 걷힌 부가가치세 10조

의료기기 판매업을 하는 김모 씨(45)는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불법 도매상으로부터 올 초 의료장비를 100만 원에 샀다. 이와 동시에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주는 자료상으로부터 세금계산서를 사들여 장비 구입액을 150만 원으로 부풀렸다. 최근 김 씨는 이 의료장비를 180만 원에 팔았다. 이번 거래로 김 씨가 내야 할 부가세는 8만 원. 장비 매각대금 180만 원에 붙는 부가세 18만 원에서 미등록 도매상에서 장비를 100만 원에 사면서 낸 부가세 10만 원을 뺀 금액이다. 하지만 허위 세금계산서로 장비 구입대금이 부풀려져 김 씨가 실제 낸 세금은 3만 원에 그쳤다.

이처럼 부가세 탈루가 많은 것은 부가세를 받은 사업자가 1년에 2번 한꺼번에 세금을 내도록 돼 있는 납세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증세에 앞서 세금계산서 발행체계를 개선하고 세금을 떼먹지 못하도록 납세방식을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부가세는 ‘바보세’

개인사업자 사이에서 ‘부가세는 다 낼 필요 없는 세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부가세를 줄여 신고하거나 전혀 내지 않을 방법이 많다는 것이다. 부가세가 허점투성이라는 점에 빗대 ‘바보세’라는 말까지 나온다.

부가세는 도매 및 소매 단계에 속하는 사업자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10%의 세율을 적용하는 세금이다. 예를 들어 소매업자가 제조업자로부터 물건을 500원에 사서 소비자에게 800원에 팔았다고 하자. 이때 제조업자는 소매업자에게 받은 물건 대금(500원)의 10%인 50원을 부가세로 내고 소매업자는 이익을 남긴 300원의 10%인 30원을 세무서에 부가세로 낸다.

이 과정에서 소매업자는 제조업자에게서 사들이는 물건 구입대금을 부풀리려는 유혹을 느낀다. 이때 ‘자료상’이 탈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가세를 내기 직전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많다. 폐업 신고를 하고 부가세를 떼먹은 사람을 과세당국이 붙잡아 세금을 받아내기란 쉽지 않다. 많은 탈루 사업자가 노숙인이나 불법 체류자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영업하다 고의로 부도를 내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이런 고의 부도가 늘어 부가세 체납액이 6조7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국세청이 끝내 징수하지 못하고 남은 금액이 3조4000억 원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매출 10억 원 이상 사업자를 대상으로 전자세금계산서를 의무적으로 발행토록 했지만 개인사업자의 탈세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 탈세 늘면서 지하경제 300조 돌파

한국의 부가세 미징수 비율은 2010년 기준으로 14.3%다. 유럽연합(EU) 국가 평균치보다 2%포인트 정도 높은 수준이다.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를 겪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선 양호하지만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보다는 높다.

부가세를 탈루하는 사람들은 직접세인 소득세나 법인세도 실제보다 적게 낼 가능성이 크다. 조세전문가들은 부가세를 적게 신고하거나 내지 않은 사람들을 조사하면 다른 세금을 탈루한 사실도 적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와 관련해 오스트리아 요하네스케플러대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는 “2011년 지하경제 규모가 311조 원으로 국내총생산의 25% 선을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세종=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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