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종합병원에 ‘5% 룰’… 규제에 묶인 일자리 수만개
동아일보
입력 2013-07-22 03:00 수정 2013-07-22 03:00
[의료관광산업,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자]<上>일자리의 오아시스, 해외환자 유치
서울의 A종합병원은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 최근 검진센터 규모와 시설을 두 배로 늘렸다. 중국어로 된 안내책자와 표지판을 마련하고 중국인 통역도 고용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1∼6월)에 이 병원을 찾은 중국인 건강검진 환자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10%가량 줄었다. 병원 관계자는 “중국 부자들이 많이 늘고 있고 이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투자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중국 환자가 줄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관광의 가파른 성장세를 주도하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 2009년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되면서 본격화한 한국 의료관광 산업의 성장동력이 꺼져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높은 규제 장벽과 중장기 전략 부재가 의료관광이 가져올 수만 개의 일자리를 신기루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 의료산업은 질 좋은 일자리 ‘보고’
의료산업은 제조업이나 다른 서비스업에 비해 일자리의 질이 높아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해법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의료관광은 일반 환자를 상대하는 경우보다 부가가치가 높아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병원 컨설팅회사인 HM&컴퍼니 임배만 대표는 “외국인 환자들은 치료 단가가 높고 신속한 외래 진료와 집중적인 입원 치료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내국인 환자를 진료할 때보다 의사를 갑절로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호인력도 더 늘어난다. 국내 최상급의 병동 간호서비스의 경우 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 환자 50명당 간호보조원 3명을 배정하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호하는 외국인 환자들의 경우 환자 2명당 간호사 1명, 환자 50명당 간호보조원 5명을 고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의료기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만큼 의료관광 성장잠재력도 다른 서비스업보다 훨씬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의료관광 육성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해묵은 규제가 뽑히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이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환자를 ‘전체 병상의 5%’로 묶어 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암, 심장병 등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외국인 환자들은 대형 종합병원을 선호한다. 하지만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환자 수에 상한선을 두다 보니 부가가치가 큰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외국인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투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현재 규제는 국가대표 격인 대형 종합병원이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환자를 한 해 6000∼1만 명으로 묶어 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태국 등 의료관광 대국들은 정부와 민간 병원이 함께 뛰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부유한 외국인 환자를 받기 위해 의료시설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싱가포르 등의 병원들은 해외에 거주하는 환자를 원격으로 진단하고 필요할 경우 자국으로 불러와 치료를 하지만 국내에선 치료를 받고 돌아간 해외 환자의 수술 경과를 살펴볼 수 있는 ‘원격진료’조차 불법이다.
김준철 삼정KPMG 헬스케어부문 상무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당장 허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성형, 피부, 치과 등 의료관광 수요가 많고 의료의 공공성을 해칠 위험이 적은 분야부터 의료관광 목적형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의료관광 특별법-정부 주도 ‘원스톱 서비스’ 필요
보건복지부는 의료,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 중심 업무를 담당하는 식으로 정부 부처의 업무가 이원화돼 융합산업인 의료관광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병원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병원에 돈도 없고, 꽉 막힌 규제와 부처 간 칸막이로 법과 전략도 없는 현 상태로는 정부가 목표로 내건 2020년 의료관광객이 100만 명은커녕 30만 명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관광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하고 성장엔진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융합산업인 의료관광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의료관광특별법’을 제정해 안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서비스 수출’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정부가 환자 유치-진료-사후관리의 단계를 직접 보증하는 ‘원스톱(One stop) 관리서비스’도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세계 주요국에 거점을 두고 매년 수십억 원을 들여 정부가 직접 의료관광을 홍보하고 비자 수속부터 의료진 선정, 숙박 등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구가 중국 칭다오(靑島) 등 세 곳에 의료관광 상담센터를 세워 환자를 유치한 뒤 자체적으로 육성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와 통역 200명을 붙여 입국부터 출국까지 관리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용(경제부) parky@donga.com
▽팀원 문병기 장윤정 조은아(경제부) 염희진(소비자경제부) 유근형 이철호(교육복지부)
서울의 A종합병원은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 최근 검진센터 규모와 시설을 두 배로 늘렸다. 중국어로 된 안내책자와 표지판을 마련하고 중국인 통역도 고용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1∼6월)에 이 병원을 찾은 중국인 건강검진 환자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10%가량 줄었다. 병원 관계자는 “중국 부자들이 많이 늘고 있고 이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투자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중국 환자가 줄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관광의 가파른 성장세를 주도하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 2009년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되면서 본격화한 한국 의료관광 산업의 성장동력이 꺼져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높은 규제 장벽과 중장기 전략 부재가 의료관광이 가져올 수만 개의 일자리를 신기루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 의료산업은 질 좋은 일자리 ‘보고’
의료산업은 제조업이나 다른 서비스업에 비해 일자리의 질이 높아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해법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의료관광은 일반 환자를 상대하는 경우보다 부가가치가 높아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병원 컨설팅회사인 HM&컴퍼니 임배만 대표는 “외국인 환자들은 치료 단가가 높고 신속한 외래 진료와 집중적인 입원 치료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내국인 환자를 진료할 때보다 의사를 갑절로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호인력도 더 늘어난다. 국내 최상급의 병동 간호서비스의 경우 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 환자 50명당 간호보조원 3명을 배정하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호하는 외국인 환자들의 경우 환자 2명당 간호사 1명, 환자 50명당 간호보조원 5명을 고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의료기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만큼 의료관광 성장잠재력도 다른 서비스업보다 훨씬 크다고 보고 있다.
성형외과들이 즐비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거리에서는 중국인 의료관광객을 겨냥해 중국어 간판을 건 성형외과나 피부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원건 기자 lapta@donga.com
○ 해묵은 손톱 밑 가시정부가 의료관광 육성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해묵은 규제가 뽑히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이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환자를 ‘전체 병상의 5%’로 묶어 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암, 심장병 등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외국인 환자들은 대형 종합병원을 선호한다. 하지만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환자 수에 상한선을 두다 보니 부가가치가 큰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외국인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투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현재 규제는 국가대표 격인 대형 종합병원이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환자를 한 해 6000∼1만 명으로 묶어 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태국 등 의료관광 대국들은 정부와 민간 병원이 함께 뛰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부유한 외국인 환자를 받기 위해 의료시설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싱가포르 등의 병원들은 해외에 거주하는 환자를 원격으로 진단하고 필요할 경우 자국으로 불러와 치료를 하지만 국내에선 치료를 받고 돌아간 해외 환자의 수술 경과를 살펴볼 수 있는 ‘원격진료’조차 불법이다.
김준철 삼정KPMG 헬스케어부문 상무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당장 허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성형, 피부, 치과 등 의료관광 수요가 많고 의료의 공공성을 해칠 위험이 적은 분야부터 의료관광 목적형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의료관광 특별법-정부 주도 ‘원스톱 서비스’ 필요
보건복지부는 의료,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 중심 업무를 담당하는 식으로 정부 부처의 업무가 이원화돼 융합산업인 의료관광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병원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병원에 돈도 없고, 꽉 막힌 규제와 부처 간 칸막이로 법과 전략도 없는 현 상태로는 정부가 목표로 내건 2020년 의료관광객이 100만 명은커녕 30만 명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관광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하고 성장엔진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융합산업인 의료관광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의료관광특별법’을 제정해 안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서비스 수출’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정부가 환자 유치-진료-사후관리의 단계를 직접 보증하는 ‘원스톱(One stop) 관리서비스’도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세계 주요국에 거점을 두고 매년 수십억 원을 들여 정부가 직접 의료관광을 홍보하고 비자 수속부터 의료진 선정, 숙박 등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구가 중국 칭다오(靑島) 등 세 곳에 의료관광 상담센터를 세워 환자를 유치한 뒤 자체적으로 육성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와 통역 200명을 붙여 입국부터 출국까지 관리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용(경제부) parky@donga.com
▽팀원 문병기 장윤정 조은아(경제부) 염희진(소비자경제부) 유근형 이철호(교육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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