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사진의 비밀… 왜 父子는 나란히 서지 않을까

동아일보

입력 2013-06-24 03:00 수정 2013-06-24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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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CJ 회장
CJ그룹은 최근 이재현 회장의 공식 프로필 사진을 각 언론사에 새로 배포했다. 밝게 웃는 기존 사진 대신 고개를 숙인 채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의 사진이다. 최근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 회장과 그룹의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J그룹 측은 “요즘 같은 분위기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한 장은 때로는 수만 마디의 말보다 더 강하다. 사람들은 기업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 특히 총수의 사진으로 그 기업 이미지를 떠올린다. 기업들이 총수의 사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 보니 총수 사진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긴다. 기업의 문화와 전략, 총수의 성향도 묻어난다.

사진 전문가, 이미지컨설팅 전문가와 함께 이른바 기업의 ‘1호 사진’인 총수 사진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각 그룹이나 기업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 외에 각종 보도용 행사 사진도 분석했다. 김녕만 사진예술 대표, 사진가 박상훈 씨,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 회장,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등이 도움을 줬다.

■ 딸 손잡은 이건희, 여성 경영참여 부각… 이재용은 구글CEO 감싸 불화설 진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공식 프로필 사진은 삼성그룹이 지난해 찍어 배포한 것이다. 2년 만에 바꿨다. 사진 한 장을 5년 넘게 사용하는 다른 그룹보다 교체 주기가 짧은 편이다. 이 회장의 사진은 국내 정상급 사진작가인 조세현 씨가 찍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녕만 대표는 “무난한 사진을 선호하는 다른 그룹 총수와 달리 45도 뒤쪽에서 내리쬐는 역(逆)측광을 써 얼굴의 윤곽을 밝게 살렸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아주 잘 드러낸 사진”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그룹 행사에 참석하거나 출국할 때 주로 카메라에 노출된다.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또는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손을 잡은 모습이 많다.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옆에 서는 법이 없다. 항상 몇 m 뒤에서 따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사진①). 정연아 회장은 “두 딸을 앞세우는 것은 평소 지론인 여성의 경영 참여를 부각하고 감성경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라며 “부친의 뒤에 서 있는 이 부회장의 모습에서는 후계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부친의 뒷자리에서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는 이재용 부회장은 4월 방한한 구글의 래리 페이지 최고경영자(CEO)를 만났을 때 사진기자들 앞에서 오른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는 포즈로 친근감을 표시했다(사진②). 예정에 없던 ‘포토타임’에 어색해하는 페이지 CEO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남긴 이 사진은 항간에 떠돌던 두 회사의 불화설을 진화하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정몽구는 생산현장으로, 정의선은 신차 발표회로… ‘내실과 미래’ 메시지 분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언론용 프로필 사진은 그룹 직원이 찍은 것을 사용한다. 사진작가급 직원이긴 하지만 외부 유명 스튜디오를 수소문해 고르는 다른 그룹과는 사뭇 다르다. 현대차 관계자는 “프로필용 사진을 따로 찍지 않고 행사장에서 찍은 것 중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쓴다”고 전했다.

정 회장의 사진은 현장에서 부하직원들과 함께 있는 게 많다. 작업복을 입고 생산라인을 살피거나 건설현장에서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키는 사진들이 대표적이다(사진③). 삼성과 달리 현대차그룹은 총수 부자(父子)가 함께 등장하는 사진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모터쇼나 신차 발표회에서 발표하는 모습이 주로 공개된다. 그룹 대표 색깔인 푸른색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에 무선 이어마이크를 차고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사진④). 강진주 소장은 “정 회장이 생산현장에서 그룹의 내실을 다지는 모습이라면 아들인 정 부회장은 신차 발표 현장에서 미래지향적 디자인과 연계된 이미지로 차별화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용석·김창덕·장관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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