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농업생산자단체 경쟁력 평가]<하>일본을 넘어, 세계 무대로

동아일보

입력 2013-03-20 03:00 수정 2013-03-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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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시 크라운, 남미-아시아에도 자회사 운영… 해외매출이 90%

덴마크 최대 양돈조합 대니시 크라운의 한 도축장에서 장갑과 모자 등 위생 도구를 갖춘 직원이 돈육을 손질하고 있다. 대니시 크라운은 국내, 해외 유통을 전담하는 별도 회사를 통해 전체 매출의 9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대니시 크라운 제공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글로벌 컨설팅사 ‘아서 디 리틀(ADL)’이 최근 실시한 세계 10개 농업 선도국가의 농축산 생산자단체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 농협의 최대 약점은 판매·마케팅과 유통 역량으로 나타났다. 농협이 농산물시장 개방 확대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이 부문들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혁신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이번 평가에서 판매, 유통 부문 상위권을 차지한 프랑스, 덴마크와 한국 농협 직판장의 ‘원조’ 격인 일본의 농산물 직판장을 현지 취재했다.


○ 유통 전문화로 해외시장 공략

지난달 말 찾은 프랑스 농산물 협동조합 ‘인비보(In Vivo)’. 241개 지역 협동조합이 출자한 연합 사업체로 프랑스 최대 협동조합이다. 연간 매출액만 61억 유로(약 8조7431억 원)에 이른다. 핵심 사업은 곡물 유통과 사료 사업으로 유럽에서 곡물 거래량 1위, 국내 곡물 저장 능력 1위다. ‘인비보’는 이번 평가에서 덴마크 ‘대니시 크라운’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으나 유통 채널 개발과 해외 수출 등 항목에선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인비보는 국내와 해외 곡물 유통을 전담하는 유통 전문회사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국내 곡물 유통은 ‘감베르’라는 회사가 맡고 해외 수출은 ‘인비보 그레인’이라는 계열사가 전담한다. ‘감베르’는 전 세계 80개 프랜차이즈 회사와 1000여 개의 아웃렛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인비보 그레인’은 조합원이 생산한 밀과 보리, 옥수수 등 곡물을 사들여 전국에 있는 20개의 저장시설에 보관한 뒤 가격이 오를 때 해외 시장에 판매한다. 지역 조합의 저장 창고도 중앙에서 직접 관리, 운영한다. 지난해 기상이변으로 주요 곡물 생산국의 생산량이 줄었지만 이 회사는 곡물 수출 매출이 85%나 늘었다. 엘렌 기도할펜 마케팅 전략·혁신 담당이사는 “경쟁이 치열한 국제 곡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유통채널을 확보하고 품종개량, 원가절감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평가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 덴마크 축산 협동조합 ‘대니시 크라운’ 역시 정육(ESS식품)과 가공식품 유통 전문회사(튤립식품)를 운영하고 있다. 대니시 크라운은 매출의 90%가 해외시장에서 발생한다. 전체 판매액의 23%가 영국 시장에서 발생할 정도다.

ESS식품은 유럽은 물론이고 남미, 아시아 등에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해외 수출과 판매 활동 지원뿐 아니라 해외 시장 정보수집과 유통망 확보를 통해 개별 조합원 농가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유럽, 아시아, 북미 등에 자회사를 두고 직접 개발한 핫도그 패스트푸드 전문 프랜차이즈점(스테프핫도그)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소비자의 동향을 분석하기 위해서 전문 자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 정부까지 나서 ‘대니시(Danish)’를 국가 대표 브랜드로 육성하고 있다.

네덜란드 ‘그리너리’는 유럽의 주요 대형 유통업체 및 식자재 회사, 가공식품 업체 등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으며 민간 도매회사 인수를 통해 소비자 유통사업 노하우를 익히고 있다. 스페인 ‘아네쿱’은 자체 브랜드를 부착해 세계 52개 국가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마케팅과 판매 대행을 주로 하고 있지만 막강한 시장 교섭력을 바탕으로 자국 농산물 가격 방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질랜드 ‘폰테라’는 자국 생산 원유의 96%를 전담 가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 29개, 해외 35개의 원유 가공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 3개는 호주와 뉴질랜드 유제품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 생산자가 판매 가격 결정

일본 도쿄에서 기차로 1시간여 걸리는 인구 17만여 명의 하다노(秦野) 시 농협 ‘파머스마켓(농산물 직판장)’. 오후 3시경이었음에도 617m² 규모의 매장 내에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농산물은 조합원이 매일 아침 가져와 직접 판매 가격을 결정하고 바코드를 붙인다. 바코드는 1장에 1엔이다. 위탁 판매 수수료는 15%다. 판매자는 가정에서 컴퓨터로 판매 상황을 확인할 수 있고, 매월 2회 계좌로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 금액을 입금받는다. 전국 30여 개 ‘파머스마켓’과 제휴해 시기적으로 생산되지 않거나 이곳에서 생산되지 않는 농산물도 공급받고 있다.

이곳은 한국 농협 하나로클럽 관계자들이 2002년 벤치마킹을 한 이후 한국 지역 단위 농협과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의 견학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농협 젠노(JA)그룹이 2000년대 이후 침체를 겪고 있지만 하다노 농협은 예외다. 하다노 농협은 조합원 3000명으로 출발해 지금은 1만여 명으로 늘었다. 하다노 농협은 ‘파머스마켓’ 이용 고객이 차를 갖고 올 경우 CO2 배출량을 포인트로 환산해 적립해 포인트만큼 매년 시내 방범등을 발광다이오드(LED)등으로 교체해주고 있다. 그 외에도 노인 돌보미 사업, 장례사업 등도 조합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미야나가 히토시(宮永均) 하다노농협 본부장은 “일본은 중앙회를 통한 통합 구매가 가격 경쟁력을 잃으면서 개별 조합의 이탈이 이어졌다”며 “한국 농협도 중앙회 차원의 대규모 통합 구매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일본 농협을 벤치마킹했던 한국 농협이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 등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지역사회의 중추로 성장한 데 대해 부러움을 나타냈다.

파리=이유종 기자·하다노=조용우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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