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마켓 뷰]내일의 딤섬을 위해 오늘의 딤섬을 양보하다

동아일보

입력 2013-01-28 03:00 수정 2013-01-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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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홍, 하카후, 예만방, 팀호완. 홍콩을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이라면 이 중 기억나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홍콩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연계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유명한 딤섬(홍콩에서는 ‘얌차’라고 부른다) 맛집 이름들이다. 홍콩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 여행객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홍콩의 구석구석에 있는 딤섬 맛집을 찾아온다. 이들 가게 앞은 식사시간이면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오늘날 딤섬은 홍콩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중국의 외교를 ‘판다 외교’, 중국 본토에서 발행되는 채권을 ‘판다 본드’로 부르며 판다를 중국의 상징으로 본다면, 홍콩에서 발행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은 ‘딤섬 본드’라 부를 정도로 딤섬의 상징성은 대단하다.

홍콩을 오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딤섬이 홍콩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딤섬 전문점들이 코즈웨이베이, 센트럴역, 침사초이역 부근뿐 아니라 홍콩 구석구석에 생겨났다. 홍콩 여행상품 코스에도 당연한 듯 딤섬 맛보기가 빠지지 않는다.

딤섬의 종류도 80가지에서 200가지로 늘어났다. 다양한 맛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딤섬은 국경도 넘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을 통해 서울을 비롯해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갔고 이제는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을 정도로 국제화에 성공했다.

딤섬이라는 음식의 정통성은 원래 차와 함께 먹는 새참 수준의 요리에 있다. 요새도 딤섬을 정식 코스요리에 앞서 나오는 전채 수준의 간단한 요리로 내오는 식당이 적지 않다.

중국 본래의 딤섬을 느끼기 위해선 홍콩에서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에 있는 광저우의 중심가 톈허청(天河城) 인근이나 베이징루(北京路) 거리의 식당에 가야 한다. 이곳 사람들이 딤섬(중국 본토에서는 ‘뎬신·點心’이라고 부른다)을 즐기는 분위기는 홍콩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아침과 점심, 점심과 저녁 사이 사람들은 한 손에 신문이나 잡지를 들고 식당에 앉아 차와 함께 딤섬을 먹는다. 사람들은 차 한 주전자와 몇 개의 뎬신을 시켜 놓고 두세 시간 정도 여유를 부리며 끼니와 끼니 사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광둥 식으로 뎬신을 먹는 방법이다. 정식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자리를 떠나 집으로 간다. 딤섬은 중국 광둥 성의 대표적인 ‘슬로푸드’인 셈이다.

그런 딤섬이지만 홍콩에서는 패스트푸드로 변질되어 버렸다. 눈만 뜨면 초를 다투는 시간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리포트에서 홍콩은 금융비즈니스 환경, 인프라 및 세제를 종합해 2011, 2012년 2년 연속 금융경쟁력 1위를 기록했다. 금융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세계 금융의 뛰어난 인재들이 투입돼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돈의 전쟁’에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홍콩의 점심시간에는 딤섬 한 접시를 즐기는 여유마저 찾아보기 힘들다. 금융회사 밀집지역인 센트럴 스트리트의 점심시간에는 ‘초초간편’ 음식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딤섬이 간편하다지만 그보다 더 빨리 한 끼 때울 수 있는 햄버거, 샌드위치집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세계적인 홍콩음식 딤섬이 정작 홍콩의 심장에서 일하는 우리에게는 점심시간에도 누리기 어려운 음식이 돼 버린 셈이다.

더구나 지난해 3월부터 홍콩 증시의 점심휴장 시간이 1시간 30분에서 1시간으로 줄어들면서 금융종사자들에게 딤섬 한 접시의 여유는 더욱 누리기 어려운 호사가 됐다.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홍콩 금융인들이 한 손에 햄버거를, 다른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마천루 사이에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동분서주하는 이유는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미래에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또 자국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보람을 위해 당장 딤섬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는 여유를 기꺼이 양보하는 것이다.

김종선 KDB대우증권 해외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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