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兆단위 공약’ 국고 거덜낼 판

동아일보

입력 2012-10-22 03:00 수정 2012-10-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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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복지공약 남발… 연간 예산 따져보니


대통령 선거가 58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이 재원 마련 대책 없이 ‘조’ 단위 공약을 남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정치권에서 0∼2세 무상보육을 결정했다가 재원이 바닥나 중단 직전까지 갔음에도 대선후보들이 여전히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한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 이 중 상당수는 매년 예산이 투입되는 복지 공약이어서 실제로 시행할 경우 두고두고 국가 재정을 갉아먹는 주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14일 임신부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0∼5세 무상보육 공약에 대해 “7조5000억 원이 든다.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정적으로 감당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산은 해마다 들어가기 때문에 5년간 합치면 37조5000억 원이 필요하다. 이 돈을 마련하려면 경제활동인구(약 2500만 명) 1인당 평균 15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문 후보는 7월 제주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반값등록금을 위해 드는 비용이 6조 원이 채 안 된다”며 “부자감세가 82조 원, 4대강 사업 공식 재정이 22조 원이나 되는데 그에 비하면 적고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매년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연간 5조6000억 원(문 후보 측 추산)을 투입할 경우 총 소요 예산은 5년간 28조 원으로 4대강보다 많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무상 의무교육을 고등학교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여기에는 매년 2조4000억 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 박 후보는 또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도 “부담을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세부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수조 원의 재정 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수혜자를 2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혜택을 줄이지 않고 대상을 확대할 경우 매년 3조 원가량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내년 외교 부문에 책정된 예산(2조8000억 원)보다 많은 액수다. 안 후보는 21일엔 영세 사업체의 저임금 일자리를 개선하기 위해 2조∼3조 원 규모의 사회통합 일자리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 “고령화 진행되면 현재 복지수준 유지도 벅찬데…” ▼

기초노령연금 확대는 ‘어르신 표’를 잡기 위한 안 후보와 문 후보의 공통 공약이다. 이들의 공약대로 현재 최대 9만4600원인 연금을 18만 원(안 후보)이나 20만 원(문 후보)으로 인상할 경우 연간 5조 원가량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초노령연금 인상은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못했던 공약이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고령화에 따라 투입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인상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선 한반도대운하 같은 대규모 건설 공약은 줄었지만 지역공약 중에서도 조 단위 예산 투입이 필요한 사업이 적지 않다. 박 후보와 문 후보가 공약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경우 약 10조 원이 필요하다. 박 후보가 약속한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에는 3조∼4조 원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후보들은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당분간 세수(稅收)가 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세율을 높이거나 국가 채무를 늘려야 하지만 어느 쪽이나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문 후보의 경우 현 정부의 부자감세를 철회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사실상 증세를 공약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주장대로 연간 20조 원을 추가로 확보한다고 해도 0∼5세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기초노령연금 인상 공약 등을 이행하려면 20조 원이 훨씬 넘게 든다.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최근 “공약 이행을 위해 19%인 조세부담률을 21% 수준까지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지금 당장 증세 계획은 없다”며 발을 빼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대규모 예산 투입 사업을 공약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은 21일 “과거 사례를 보면 정치권에서 내놓은 복지공약의 경우 예산을 과소 추계한 경우가 적지 않아 실제 이행할 때는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인구 구조의 변화를 감안하면 현재 수준의 복지를 유지할 경우에도 갈수록 재정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복지제도 신설은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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