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휘슬 블로어’ 한마디에 그룹 휘청
동아일보
입력 2012-08-18 03:00 수정 2012-08-18 10:10
한화 수사도 내부고발이 발단
고액 연봉-정보보호 서약 등 기업들 前現 임직원 관리 강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구속 뒤에는 회사에 불만을 품은 ‘블랙 휘슬 블로어(Black whistle blower·자신의 이익을 좇아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가 있었다. 한화그룹 선고공판을 지켜본 다른 기업들도 몇 차례 내부고발에 따른 위기 경험을 거울삼아 위기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대기업 비자금 수사는 대부분 이 같은 블랙 휘슬 블로어의 입에서 시작된다. 한화 비자금 수사도 2004년경 한화증권에서 퇴사한 뒤 한화증권의 객장에서 계약직 투자상담사로 일하던 A 씨의 고발이 단초였다. 그는 계약 갱신 과정에서 회사 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근무 중 우연히 알게 된 ‘수상한 휴면 계좌번호 5개’를 2010년 금융감독원에 신고해 검찰 수사의 발단이 됐다. 이에 앞서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비자금 수사 때는 정몽구 회장의 ‘럭비공식 인사’에 불이익을 당한 고위 임원이 검찰에 제보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2007년에는 삼성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전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2008년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도 그룹 내부자가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제보해 시작됐다.
이처럼 회사를 떠나면서 비수를 던지는 내부인의 고발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는 일이 거듭되면서 기업들은 고위급 퇴직자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불평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난 퇴직자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퇴직 임원에게 자문역, 고문 등의 직함과 고액 연봉을 보장한다. A 기업은 임원이 퇴직하면 2년간 고문으로 위촉해 억대의 연봉을 줄 뿐 아니라 부품업체 등 협력회사에 재취업시켜 끈을 놓지 않는다. B 대기업도 자문역 대우 자리를 줘 예우한다. 퇴직한 임원들의 OB 모임을 지원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유지시키는 것도 위기 관리 방편 중 하나다.
현직 임직원에게는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외부에 흘릴 경우 책임을 묻는 ‘정보보호 서약’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 비리는 원칙적으로 서약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기밀에 접근하는 사람을 줄이려는 추세다. 홍역을 치렀던 일부 기업은 특정 학교와 지역 출신을 민감한 자리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임원도 자기 업무가 아니면 회사의 기밀사항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문화도 정착되고 있다.
한 중공업 기업 인사부서 관계자는 “불안감을 없애자고 노골적으로 전·현직 직원을 관리하자니 회사 내부에 불법 행위가 있다고 떠드는 꼴이 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내부 고발 없이 수사기관에서 비자금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부 고발이 가장 강력한 비리 견제 수단”이라며 “기업이 블랙 휘슬 블로어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투명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고액 연봉-정보보호 서약 등 기업들 前現 임직원 관리 강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구속 뒤에는 회사에 불만을 품은 ‘블랙 휘슬 블로어(Black whistle blower·자신의 이익을 좇아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가 있었다. 한화그룹 선고공판을 지켜본 다른 기업들도 몇 차례 내부고발에 따른 위기 경험을 거울삼아 위기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대기업 비자금 수사는 대부분 이 같은 블랙 휘슬 블로어의 입에서 시작된다. 한화 비자금 수사도 2004년경 한화증권에서 퇴사한 뒤 한화증권의 객장에서 계약직 투자상담사로 일하던 A 씨의 고발이 단초였다. 그는 계약 갱신 과정에서 회사 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근무 중 우연히 알게 된 ‘수상한 휴면 계좌번호 5개’를 2010년 금융감독원에 신고해 검찰 수사의 발단이 됐다. 이에 앞서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비자금 수사 때는 정몽구 회장의 ‘럭비공식 인사’에 불이익을 당한 고위 임원이 검찰에 제보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2007년에는 삼성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전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2008년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도 그룹 내부자가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제보해 시작됐다.
이처럼 회사를 떠나면서 비수를 던지는 내부인의 고발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는 일이 거듭되면서 기업들은 고위급 퇴직자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불평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난 퇴직자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퇴직 임원에게 자문역, 고문 등의 직함과 고액 연봉을 보장한다. A 기업은 임원이 퇴직하면 2년간 고문으로 위촉해 억대의 연봉을 줄 뿐 아니라 부품업체 등 협력회사에 재취업시켜 끈을 놓지 않는다. B 대기업도 자문역 대우 자리를 줘 예우한다. 퇴직한 임원들의 OB 모임을 지원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유지시키는 것도 위기 관리 방편 중 하나다.
현직 임직원에게는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외부에 흘릴 경우 책임을 묻는 ‘정보보호 서약’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 비리는 원칙적으로 서약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기밀에 접근하는 사람을 줄이려는 추세다. 홍역을 치렀던 일부 기업은 특정 학교와 지역 출신을 민감한 자리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임원도 자기 업무가 아니면 회사의 기밀사항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문화도 정착되고 있다.
한 중공업 기업 인사부서 관계자는 “불안감을 없애자고 노골적으로 전·현직 직원을 관리하자니 회사 내부에 불법 행위가 있다고 떠드는 꼴이 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내부 고발 없이 수사기관에서 비자금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부 고발이 가장 강력한 비리 견제 수단”이라며 “기업이 블랙 휘슬 블로어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투명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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