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8개월 험로 넘어 ‘한미 경제동맹’ 스타트

동아일보

입력 2012-02-22 03:00 수정 2012-02-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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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내달 15일 발효

《 한미 양국이 2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3월 15일 발효하기로 합의하면서 60여 년간 이어진 군사안보 동맹은 바야흐로 ‘안보+경제’의 포괄동맹으로 진일보할 길이 열리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의 FTA를 완료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유럽연합(EU)과 동시에 FTA를 맺은 나라가 되면서 향후 동북아시장에서 대미 관계의 주도권은 물론이고 진정한 세계 FTA의 허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한국, 세계 FTA의 허브로”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3월 15일 0시부터 공식 발효된다”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우리로서는 촛불집회, 쇠고기 협상, 번역문 오류, 해머 국회, 최루탄 국회까지 지난 5년 9개월간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표를 찍은 협정인 만큼 이번 한미 FTA 발효는 단순한 경제협정이 아닌 현대사를 다시 쓰는 이정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한미 FTA를 놓고 보수우파와 진보좌파 간에, 상공인들과 농어민들 간에 벌여온 지루한 공방 및 설전도 FTA 발효로 일단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미 FTA 발효는 또 하나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발효 전 재협상’을 주장하던 야권은 당장 ‘집권 후 FTA 폐기’를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미 FTA는 발효 후에도 정치권을 달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세계 최대 시장’ 미국이 열렸다


FTA는 기본적으로 양국 간 관세장벽을 없애고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경제협력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뿐만 아니라 협정국 간 안보 및 다자(多者)동맹이라는 포괄적 틀이기도 하다.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적극 추진하고 중국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및 중남미와 FTA 체결에 힘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미 FTA는 경제협력을 통한 양국 간 안보동맹의 심화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불안정한 동북아 외교 안보 지형에서 한반도를 압박하는 중국 일본 러시아를 견제하는 방편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크다는 게 정부의 속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이 14조3000억 달러(약 1경6016조 원·2010년 기준)로 세계 GDP의 23%를 차지하며 단일 국가로는 세계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한때 50%가 넘던 우리의 대미(對美) 수출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지난해 10.1%(수출액 526억 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세계 최대 수출시장에서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 FTA 발효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의 접근을 다시 확대하는 등 실지(失地) 회복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발효된 EU와의 FTA까지 더해지면 세계 무역시장의 60.9%에 ‘관세 없는 접근권’을 확보하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10개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후 10년간 우리나라 GDP는 5.7% 증가하고 일자리는 35만 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세계 최대 소비국이자 우리의 주요 교역 파트너인 미국과의 FTA 발효는 한-EU FTA와 더불어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FTA 허브 전략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칠레와 FTA를 맺기 전까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 중 몽골과 함께 FTA 체결이 전무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우리로선 8년 만에 세계 최대의 FTA 국가로 거듭난 셈이다.


○ ISD 재협상 어떻게 되나


한미 FTA를 둘러싼 정치권 논란의 핵심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이 우리 정부에 큰 숙제로 다가왔다. ISD 재협상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하겠다고 공언했고 국회도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만큼 정부로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본부장은 “ISD 재협상은 FTA 발효 후 서비스투자위원회를 만들어 하기로 했다”며 “그 문제를 존중하고 그대로 하려고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 정부 대표로 구성되는 서비스투자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는 한미 FTA 발효 후 90일 이내에 열린다. 이 위원회에서 ISD의 수정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한미 공동위원회에 결과를 보고하고 수정된 대로 두 나라가 이행하면 된다.

야당과 진보좌파 진영은 ISD 폐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한중 FTA 협상을 위해서라도 ISD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열린우리당도 2007년 한미 FTA 평가보고서에서 “우리가 체결한 대부분의 경제협정에 ISD가 포함돼 있고 향후 중국 등과의 협정에 정당한 ISD 규정 삽입을 통해 대외투자를 보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ISD 보완 차원에서 단심제를 재심제로 바꾸거나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절차적인 문제를 미국과 협의할 계획이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재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개선의 여지, 절차 문제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재협상 시 협의할 구체적인 의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 경제계는 환영, 정치권 공방은 가열

경제계는 21일 한미 FTA 발효 시점이 다음 달 15일로 결정된 것과 관련해 일제히 환영하며 그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는 수출 둔화를 완화하는 안전판이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미 FTA 발효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한미 FTA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들도 한미 FTA가 일자리 창출과 서민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의 한미 FTA 공방은 발효 후 더욱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주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한미 FTA 발효를 통해 한국의 경제 영토를 넓히고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경제 발전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은 유감을 표시하며 적극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통합당 신경민 대변인은 “충분히 재검토를 마치지 못한 채 이뤄진 한미 FTA 발효일자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한미 FTA 대응방안을 검토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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