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반가운 장삿속’ 백화점 인문학강좌

동아일보

입력 2012-01-19 03:00 수정 2012-01-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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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부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점가를 달궈온 인문학 열풍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강의 수준도 만만치 않다. 제목만 봐서는 그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니코마스 윤리학’, ‘현상학의 해석에 관하여’, ‘그리스와 히브리적 사유의 차이’ 같은 과목은 웬만한 대학 철학과 강좌를 떠올리게 한다.

요즘은 수강생 200∼300명 규모의 대형 강좌도 등장했다. 롯데백화점은 18일 “문화센터 인문학 강좌가 매년 20%씩 늘고 있다”며 “최근에는 ‘슈퍼스타급’ 강사를 초빙해 대규모 특강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에 열린 신달자 시인의 특강을 200여 명이 수강했고, 11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명지대 교수의 특강에는 300여 명이 몰렸다고 한다. 이달 4일부터 한 달 동안은 수도권 점포를 중심으로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진행된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은 2010년 강의실을 인문학강좌에 걸맞게 바꿨다. 책상을 없애고 고대 그리스 아테네 학당 분위기로 강의실을 꾸민 것이다.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의 인문학 강좌 수는 2007년 55개에서 지난해 111개로 두 배로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은 2009년 문화센터 명칭을 아예 ‘신세계 아카데미’로 바꾸고 인문학 강좌 비중을 30%까지 늘렸다. 서울대 인문대학원, 연세대 유럽사회문화연구소 등 유명 대학과 연계해 강의를 진행하는 점이 특징이다.

문화센터에 인문학 바람이 부는 이유는 뭘까. 백화점업계는 최근 5년 사이 낮은 경제성장률, 치열한 일자리 경쟁, 2008년 금융위기 등 현실의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행복의 의미를 배우고자 하는 고객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글쓰기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난 점도 인문학의 인기에 한몫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쓰는 40대 고객들은 촌철살인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백화점업계는 “인기 인문학 강좌가 고객을 모으는 일등 공신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20대 젊은 층과 남성 수강생들이 백화점 문화센터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백화점업계에서 인문학 열풍이 이는 것은 이처럼 ‘장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상아탑에서는 외면 받고 있는 인문학이기에 ‘장삿속’이 고맙기까지 하다.

김현수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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