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前통상본부장 “FTA로 경제 파이 키우고 적절히 나눌 정책도 필요”

동아일보

입력 2012-01-02 03:00 수정 2012-01-0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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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前통상본부장 퇴임후 첫 언론 인터뷰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FTA로 만들) 성장의 파이를 잘 나눌 균형 잡힌 정책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10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 9층. 텅 빈 사무실에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60)은 비서관 1명과 함께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4년 넘게 쓰던 사무실이라 버릴 게 너무 많네요. 집에 가져가려 해도 놓을 데가 없어서….” 1974년 외무고시 8회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김 전 본부장은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를 맡아 실무 협상을 지휘했으며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8월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에 임명돼 현 정부 장관 중 최장수인 4년 4개월간 자리를 지켰다.

보따리를 싸느라 먼지를 뒤집어쓴 그를 억지로 앉혔다. “차 한잔만 하고 가겠다”고 말을 꺼내자 그는 조용히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퇴임 후 언론과 한 첫 인터뷰이지만 ‘금연’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울 정도로 긴장은 다소 풀려 있었다.

“홀가분하죠. 옆에서 보기에도 지쳐 있지 않았나요?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나 개인과 국가 모두를 위해 좋죠.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가진 분이 왔으니 잘될 겁니다.” 한미 FTA, 한-유럽연합(EU) FTA를 끝낸 통상교섭본부가 더 할 게 있냐고 묻자 정색을 했다. “한중 FTA가 큰 고비죠. 기존 FTA도 꾸준히 정비해 나가야 하고요. FTA는 한 번 맺었다고 영원한 바이블이 되는 게 아닙니다. 환경이 변하는 만큼 FTA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나가야죠.”

김 전 본부장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관료는 없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통상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바꿨다는 평가와 ‘옷만 갈아입은 이완용’이란 비난이 엇갈린다. ‘나를 밟고 가도 좋다’는 그의 말에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선 ‘시간과 장소를 알려 달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그놈 이제야 가냐고들 하죠?(웃음) 그래도 나가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보면 그렇게 대놓고 쏘아붙이는 분은 많진 않아요. 복잡한 내용이니 자분자분 설명하려고 해도, 그분들은 한두 마디 확 쏘아붙이고, 그런 게 또 여론이 되고…대한민국의 소통엔 인격이 없어요.”

한미 FTA 얘기를 꺼냈다. “2006년 바로 이 사무실이었죠.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수석대표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따르는 게 당연하지만 이렇게까지 멀리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 통상교섭본부 내에서 모두 ‘이건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정책)’이라고 두 손을 들었을 때 김 전 본부장은 ‘글래디에이터(검투사)’라는 별명답게 불가능해 보이는 난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했고, 연예인 못지않은 명성을 얻었다. 몸에 좋다는 토종꿀을 보내준 지리산 양봉업자부터 모터바이크를 즐겨 타는 그를 위해 방진 마스크를 상자째로 보내준 사람까지 일일이 기억하고 고마워했다.


▼ “정치요? 내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


한미 FTA는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을 좌우로 갈라놓은 핵심 이슈 중 하나였다. 그는 ‘가진 자만을 위한 정책’이란 비판을 담담히 인정했다. “FTA는 경제논리를 기반으로 한 경쟁과 개방의 정책입니다. 분배 문제까지는 해결하지 못하죠. FTA로 키운 파이를 나누려면 그에 맞는 적절한 정책조합이 있어야죠.” 하지만 분배에 도움이 안 된다고 FTA를 나쁘다고 몰아붙이는 논리에는 “틀렸다”고 과감하게 말했다. “FTA를 안 하면 양극화가 해결됩니까? 다 같이 못살자는 건데, 해법이 아니죠. 30년 전 선배들은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만큼만 살면 여한이 없겠다고 했어요. 여기까지 왔다지만 이제 겨우 국민소득 2만 달러인데, 여기서 주저앉아서야 되겠습니까.”

4년 4개월간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단연 광우병 파동 때였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온 나라가 마비됐는데, 정부 내 누구도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니….” 그는 늘 무덤덤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FTA 비준안에 서명하던 순간, 모두가 웃으며 박수를 칠 때 넋 나간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사진에 찍혀 눈길을 끌었다. “진짜로 좀 멍해졌어요. 생각만큼 감흥도 없었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하던 일의 연장선에서, 기여할 부분이 있으면 피하면 안 되겠죠.” 일각에서 나오는 정치 입문설에 대해 그는 수차례 “제가 정치권에 가는 게 도움이 되겠느냐”고 했다. 37년 외교관 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보람 있는 기업인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고도 했다. 지금이라도 기업에서 데려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요즘은 제한이 있으니까”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 당장 이날 밤 계획은? “동네 이웃들과 곱창집에서 소주 한잔 먹기로 약속했어요.”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인터뷰 중 가장 들뜬 표정을 지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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