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SK엔카’는 어떻게 9년만에 81배 커졌나

동아일보

입력 2010-10-16 03:00 수정 2010-10-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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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信의 중고차 시장서 ‘무한신뢰 역발상’ 팔아 급성장

중고차를 영어 속어로 ‘레몬’이라고 부른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엉터리인 중고차를 먹음직스러운 색깔과 향기에 윤기까지 흐르지만 그냥 먹기에 너무 신 레몬에 비유한 것이다.

구매자는 중고차의 사고 이력과 수리 내용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겉모양만 보고 중고차를 샀다가 후회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구매자들은 무조건 값을 깎으려 하고, 그럴수록 판매자들은 더 속여 팔려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 중고차 매매상의 대부분은 영세한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 SK엔카는 이런 레몬과 같은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출범 첫해 매출은 미미했지만 중고차 매매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2009년 매출 3243억 원을 기록한 SK엔카는 2010년 상반기에만 매출 2000억 원을 넘어섰다.

SK엔카는 속고 속이는 중고차 시장에 ‘신뢰’라는 가치를 도입해 고객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또 현장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이들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해 팔릴 만한 중고차를 제때 가져올 수 있었다.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정규직제와 고정급제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 중고차 업계의 고질병이었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효과를 냈다.


○ 재빠른 비즈니스 모델 전환

SK엔카는 출범 초기 ‘중고차 직거래 온라인 쇼핑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다. 웹사이트를 개설해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 주면 알선수수료에다 광고 수익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미국과 일본, 호주에서 이런 모델로 큰 수익을 올리는 업체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법적으로는 알선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중고차 거래자들은 알선수수료를 내려 하지 않았다.

‘내가 광고하고 전화했는데 왜 돈을 내야 하나’라는 인식을 가졌기 때문. 모르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일본, 국토가 넓어 사람들이 직접 만나기 어려운 미국과 호주와는 사업 환경 자체가 달랐다. SK엔카가 받은 건당 1만 원의 광고료는 해외 업체들이 거둬들이는 알선수수료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2년차에 접어든 SK엔카는 큰 결단을 내렸다. 직접 중고차 매매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인터넷으로 중고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더라’라는 소비자들의 긍정적 인식은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믿을 만한 업체가 직접 중고차를 팔면 좋겠다’는 구매자들의 욕구도 자연스럽게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SK엔카는 2001년 4월 첫 번째 직영센터를 개설한 이후 전국 각지로 직영센터를 확대하며(현재 20개) 성장을 거듭했다.
DBR 일러스트레이션
▼ 고정급 정규직 채용해 충성도 높여… 해외수출 새 판로 개척 ▼

○ 중고차가 아닌 신뢰와 서비스를 판다


SK엔카는 중고차 매매업에 뛰어들면서 경제력은 있으나 시간 여유가 부족한 20대 중반∼40대 초반 남성들에게 믿고 살 수 있는 중고차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SK엔카가 도입한 서비스가 차량 진단 및 수리 보증 서비스다.

수리 보증 서비스는 신차 보증기간이 끝났어도 계속 수리를 보증해주는 것이다. SK엔카는 신차 출고 이후 7년 및 14만 km 이내로 자체 진단한 차량들에 수리보증서를 발급한다. 차랑 진단은 전문 평가사가 사고 여부와 주행거리 조작 여부, 엔진과 변속기 등 115개의 체크리스트를 갖고 일반 소비자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내부 상태까지 파악해 주는 서비스다. 차량 진단 결과는 투명하게 인터넷에 올렸다.

이런 노력을 통해 SK엔카는 점차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매장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주위에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면서 SK엔카는 소비자의 신뢰가 수익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궤도에 올랐다.


○매입과 판매의 균형을 맞추는 게 핵심역량

중고차는 파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 안 팔리는 차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차 값은 계속 떨어지고, 주차료와 금융비는 계속 늘어난다. 즉, 중고차 매매업의 핵심은 빨리 팔릴 수 있는 좋은 차를 사는 것이다. 거래 규모를 키우려면 중고차를 보상 판매하는 신차 영업소와 렌터카 회사, 리스 회사들과도 신뢰를 쌓고 팔릴 만한 차를 정기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개인으로부터 중고차를 살 때는 매입 직원들의 의사결정 정확성과 속도가 중요하다. 즉, 전문성을 갖춘 매입 직원이 현장에 가서 차를 제대로 평가하고 적절한 구입 가격을 즉시 제시해야 한다. “회사 가서 상의해서 알려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매력적인 차량은 다른 회사의 딜러에게 넘어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고차 딜러들은 매입부터 판매까지 다 하지만 SK엔카는 매입 전문, 판매 전문, 진단 전문, 정비 전문 등 분업화로 직원들의 전문성을 키웠다. 또 현장에 과감히 권한을 위임했다. 현장 매입 직원들의 말을 믿고 즉시 대금을 송금해 줬다.

매입 직원과 판매 직원을 묶어주는 ‘브러더스 제도’도 한몫했다. 사실 매입 직원의 직무를 전문화하면 이들은 판매와 관련한 정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매입 현장에서 정보가 부족할 때 매입 직원이 ‘브러더’로 묶인 판매 직원과 즉시 상의한다. 판매 직원은 재빨리 시세정보와 온라인 정보를 조회하고 자신의 경험에 비춰 의견을 제시한다. 차량 판매 시에는 판매 직원이 매입 직원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해 고객의 차량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를 높일 수 있다.


○ 정규직제와 고정급으로 도덕적 해이 방지

중고차 매매업체 경영자들이 직면하는 큰 문제는 딜러들의 도덕적 해이다. 직원들이 회사에는 잘 안 팔릴 차만 가져오고, 잘 팔릴 만한 차를 개인적으로 다른 딜러와 거래하기 시작하면 회사에는 이익이 안 남는 차만 남게 된다.

SK엔카는 매입·판매 사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대부분의 중고차 업체는 물론이고 신차 매매업체들도 정규직제와 고정급제가 아닌 딜러제와 수당제를 채택한 것과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이런 믿음은 딜러제와 같은 철저한 성과주의 제도 아래서는 형성되기 어렵다. 물론 고정급제로 인해 자신의 성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 안 된다면 우수한 직원들이 떠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SK엔카는 성과에 연동한 연봉제를 도입했다. 연봉은 투명한 성과 공개를 토대로 개인별 면담을 통해 결정됐다.

중고차업계에서 파격적인 정규직제는 ‘소비자에게 신뢰를 판다’는 SK엔카의 가치관과 어우러지면서 강력한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회사와 직원들 간의 신뢰가 형성되면서 이직률(신입사원 교육 및 연수 과정에서의 이직은 제외)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SK엔카의 조직문화는 채용 과정에도 반영돼 있다. 이 회사는 중고차 딜러 출신을 가급적 뽑지 않는다. 중고차 딜러 업무와 SK엔카 직원들의 업무는 기본부터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설사 능력을 보고 경력직을 뽑더라도 SK엔카의 직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한다.

한국 시장에서의 중고차 매매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본 SK엔카는 2006년 중고차 수출에 도전했다. 2009년에는 3017대를 수출했다. 올해 1월 SK엔카는 중고차와 부품, 중장비를 사고팔 수 있는 글로벌 웹사이트를 열었다. 현재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한국어 7개국 언어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SK엔카가 증명한 성공 방정식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대로 통하리라는 법은 없다. 조직문화와 제도, 역량 중 지금까지 핵심 경쟁력이었던 요소 중에 걸림돌이 있다면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신뢰를 형성하고 성과를 높일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인재 기자 epicij@donga.com

강형구 한양대 교수 hyoungkang@hanyang.ac.kr

송지현 인턴연구원 이화여대 3학년

■ SK엔카의 3大성공요인

조직→상품→서비스 3박자 신뢰모델 구축


① 상호신뢰 조직문화가 원동력

SK엔카는 조직 내에서부터 신뢰를 구축해가며 궁극적으로 조직 전체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게 됐다. SK엔카는 사업 특성상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방지가 회사 이익과 직결되는 만큼 조직과 직원 간, 직원과 직원 간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SK엔카는 현장으로의 권한 위임, 정규직 중심의 인사제도 등을 통해 상호 신뢰의 조직문화를 형성했다. 이를 토대로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했다.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회사’를 지향하는 가치관은 차량 진단 서비스와 수리 보증 서비스, 투명한 정보 공개로 이어졌다. 즉, 조직 내 신뢰 구축을 기반으로 한 고객의 신뢰 확보는 SK엔카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② 시장상황 중시한 실물옵션 전략

SK엔카는 처음엔 중고차 25대를 갖고 시작했다가 50대, 100대로 점차 늘려갔다. 지역도 초기엔 서울에서 시작해 대구 부산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SK엔카는 고객 신뢰 수준이 낮고 불확실성이 높은 중고차 시장에서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장 정보를 취득했다. 이를 재가공해 고객에게 제공하면서 신뢰가 형성되자 투자를 늘려 고객에게 더 큰 신뢰를 얻게 됐다. 이는 마치 금융시장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옵션을 행사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투자 전략과 유사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초기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기보다 소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 반응을 확인한 후 단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실물옵션 전략이 바람직하다.


③ 기업의 목표에 맞는 조직 설계

조직을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에 부합하도록 설계한 점도 SK엔카의 성공 요인이다. 이 회사는 정보 불균형으로 고객들의 신뢰도가 낮은 중고차 시장에서 당장의 이익을 희생했다. 그 대신 수리 보증 서비스 등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벌여 결국 중고차 시장의 리더로 부상했다. 이는 SK엔카의 독특한 조직 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규직 중심의 인사제도, 조직문화를 우선하는 채용제도 등을 통해 이 회사는 고객의 신뢰를 확보할 기반을 마련했다. 이런 기반이 없었다면 신뢰 확보라는 조직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목표에 부합하는 조직체계를 구성한 덕에 SK엔카는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한인재 기자 epicij@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67호(2010년 10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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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빠른 방임형 조직이 미래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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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설인귀는 왜 대비천 전투에 실패했나
▼전쟁과 경영


설인귀는 중국 당나라 시대 최고 무장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최대 전성기는 668년 고구려 멸망 시기로 당나라 장수 10여 명을 쏘아 죽인 고구려 용사를 단신으로 돌격해 생포해왔다는 식의 무용담이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669년 당나라가 토번(티베트족 국가) 정벌을 위해 투입한 전투에서 대패했다. 결정적 패인은 군량 보급을 맡은 설인귀 휘하 장수 곽대봉의 명령 위반 탓이었다. 전투가 벌어진 대비천 지역은 해발 4000m의 고원지대로 날씨가 험악한 데다 주변에 식량을 조달할 도시나 마을이 거의 없는 오지였다. 곽대봉은 산에 요새를 구축해 보급품을 지키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설인귀의 뒤를 따르다 티베트군에게 모든 군량을 빼앗겼다. 결국 굶주린 당군 10만 명이 전멸했다. 대비천 패배의 1차 원인은 곽대봉의 명령 불복종이지만 설인귀 역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전략과 전술은 언제나 상대편의 형편에서 봐야 하고, 모든 계획은 최선과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이 대비천 전투 패배의 교훈을 정리했다.


이해 충돌하는 2가지 비즈니스 모델 써야 한다면…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항공, 미디어, 은행 등 다양한 산업에서 오랫동안 입지를 다져온 기성 업체가 새롭게 등장한 파괴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침략을 받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침략자로 간주할 수 있는 업체가 성공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려 나가면 기성 업체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다. 마이클 포터 교수를 비롯한 전략 이론가들은 같은 산업 내에서 서로 다른 2개의 비즈니스 모델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2개의 비즈니스 모델 기저에 깔려 있는 가치사슬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가 항공사와 경쟁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비행기 티켓을 팔면 기존 유통업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질 위험이 있다. 즉, 저가 전략과 차별화 전략 둘 다를 이용해 경쟁하려다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가 파괴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출현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솔루션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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