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재미 쏠쏠… 편의시설은 ‘먼 길’

강승현기자 , 김예윤기자 , 김배중기자

입력 2017-06-19 03:00 수정 2017-06-1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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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7017’ 개장한달 186만명 찾아


“여보 이스라지가 뭐예요? 병꽃나무도 처음 듣고…, 설명을 좀 적어놓지.”

16일 오후 서울 중구 고가보행로 서울로7017에서 나무들을 보던 70대 여성이 생소한 이름을 보고는 남편을 쳐다봤다. 서울로에 있는 화분 645개에는 식물명이 표기돼 있지만 별도 설명은 없다. 한참 잎 모양을 살피던 노부부는 식물명 표기 옆 QR코드(사진, 영상 정보를 담은 스마트폰 전용 바코드)를 서너 번 손가락으로 눌러보다가 포기하고는 지나쳤다.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읽어봤지만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은 듯 이름 말고는 다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 주변 상인들 마음은 ‘들썩’

지난달 20일 문을 연 서울로가 개장 한 달을 맞는다. 누적 방문객 186만 명(15일 기준)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서울로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엇갈린다.

차 걱정 없이 걸을 수 있는 도로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이날 서울로에서 만난 직장인 윤모 씨(32)는 “길지는 않지만 도심을 보행자 위주로 바꾸는 건 세계적 추세”라면서 “낡은 고가도로를 활용해서 걱정되긴 하지만 도심 여러 곳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성일 씨(23)도 “남대문시장, 남산 같은 서울의 명소를 걸어서 갈 수 있어 좋다”고 평가했다.

서울로 사업 초기 교통이 혼잡해져 손님들이 줄어든다며 반대했던 인근 상인들도 인파가 몰리자 반기고 있다. 매출이 급상승한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효과가 나리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남대문시장 상인 이모 씨(50)는 “개장 전에 비해 주말 시장을 찾는 사람이 30% 이상 늘었다”면서 “오후 8시만 지나면 휑하던 시장이 요즘에는 북적인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 김모 씨(52)도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을 빼곤 아직 매출이 오르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서울로가 생기고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만큼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아랍어 환영 인사 표기 엉터리

그러나 편의시설 부족과 안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 서울로를 걷는다는 김모 씨(71)는 “좀 오래 쉬다 가려고 해도 주변에 쓰레기통도, 화장실도 없다”면서 “편의시설이 너무 부족해 공원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로에 있는 카페나 식당에서 음식물을 팔지만 쓰레기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서울로를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이날 스피커에서는 서울로 인근에서 열리는 공연을 비롯한 각종 안내가 흘러나왔지만 외국어로는 제공되지 않았다. 잘못된 외국어 표기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세계 각 나라 언어로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적어놓은 원형 조형물의 아랍어 표기는 엉터리였다. 아랍어 문장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를 모두 이어서 써야 한다. 그러나 조형물에는 두 가지 원칙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아랍어 통역사인 최은녕 씨는 “아랍어에 대한 기본적인 검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로가 정말 안전한지 걱정도 계속됐다. 이정엽 씨(63)는 “40년 넘은 낡은 고가를 다시 사용한다는데 솔직히 걸으면서도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 “최근 자살 사고까지 벌어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걱정이 더 되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로가 모델로 삼은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line Park)와 달리 고가도로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전 노력이 부족해 방문객의 공감이 덜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의 물자 수송을 책임지던 하이라인은 1980년 운영이 중단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다. 하이라인을 구해낸 건 시민들이었다. 1999년 시민단체 ‘하이라인 친구들’이 결성됐고 10년간의 토론 끝에 고가철로 공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하이라인에 비하면 서울로는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과 시민의 참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시 주도로 만들어진 서울로가 시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서울로 개선을 위한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김예윤·김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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