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롯데 모자 김해림 외면한 중계방송…중국, 골프서도 치졸한 사드보복

주영로 기자

입력 2017-03-21 05:45 수정 2017-03-21 05:4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김해림. 사진제공|KLPGA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촉발된 중국 내 반한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골프라는 스포츠로도 번져 지탄을 받고 있다. 19일 중국 하이난 하이커우의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GF67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다. 이 경기를 중계한 CCTV5+는 중국의 치졸한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상황은 이랬다. 19일 마지막 라운드에선 김해림과 배선우의 우승경쟁이 펼쳐졌다. 일반적이었다면 당연히 두 선수의 경기 모습이 집중적으로 노출됐어야 했다. 그러나 현장중계를 맡은 CCTV5+는 롯데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경기하는 김해림의 모습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다. 고의성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정황상 계획적이었음을 여러 곳에서 포착할 수 있었다.

보통의 골프중계는 마지막 날 우승을 다투는 선수에게 초점을 맞춘다. 경기 장면은 물론 선수의 표정과 행동까지도 화면에 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CCTV5+의 중계는 전혀 상식 밖이었다. 롯데 모자를 쓰고 있는 김해림의 경기 모습은 잘 잡아주지 않았고, 가끔 화면에 비치면 멀리서 보여주는 정도였다. 심지어 연장 접전 끝에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김해림을 클로즈업하지 않고 먼 거리에서 촬영한 장면을 내보냈다. 당연히 시상식도 중계하지 않았다. 더욱이 일부 중국 언론에선 김해림 대신 준우승자 배선우의 사진을 사용했다. 의도적으로 롯데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행위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 대회 개막을 앞두고도 약간의 우려가 있기는 했다. 최근 중국 내 반한감정이 도를 넘으면서 혹시 경기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들에게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노파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걱정해 KLPGA는 중국여자프로골프협회(CLPGA)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에 CLPGA는 “정치는 정치고, 스포츠는 스포츠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선수들을 향한 보복성 행위가 없었던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옹졸하고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뒤통수를 친 것은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이 대회는 한국(KLPGA)과 중국(CLPGA), 그리고 유럽여자프로골프(LET) 투어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원래는 CLPGA와 LET 공동주관 대회로 개최되다가 지난해부터 CLPGA의 요청으로 KLPGA도 합류했다.

실력만 놓고 보면 한국선수들이 중국선수들과 같은 무대에서 경기한다는 것은 ‘재능기부’다. 중국프로골프의 수준은 우리나라의 3부투어 정도에 불과하다. 톱랭커라고 해봐야 기껏 20∼30위권에 오르고, 나머지 선수들은 예선을 통과할 실력도 되지 않는다.

경기는 끝났지만 중계방송사의 비상식적 행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KLPGA는 CLPGA에 강력히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향후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한 보장을 받아야 한다. 푸대접에 모멸감까지 감수하면서 재능기부를 할 이유는 없다.

주영로 스포츠1부 기자 na1872@donga.com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