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제네바호수가 앞마당… 풍경마저 달콤하네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입력 2016-11-05 03:00 수정 2016-11-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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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초콜릿바-네슬레의 고향 ‘브베’

‘애처로운 떠돌이(Little Tramp)’ 찰리 채플린의 동상을 제네바 호반의 브베에서 만나는건 의외가 아니다. 25년을 여기서 보내고 묻혀서다. 응시하는 호수에 꽂힌 8m의 포크는 등 뒤 브베 알리멘타리움(음식박물관)의 상징물이다. 스위스정부관광청 제공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란 영화(2005년 작).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이 독특한 분장으로 출연한 동화작품이다. 줄거리는 두문불출해온 초콜릿 공장 주인 윌리 웡카가 내놓은 경품에 당첨돼 공장투어를 하게 된 어린이와 보호자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 그런데 이 영화를 보던 중 한 장소가 떠올랐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브베(Vevey)다. 영화가 현실이라면 무대는 반드시 브베여야할 것 같아서다.

 브베는 제네바 호반에 있다. 서쪽의 제네바 공항은 기차로 45분(85km), 동쪽의 몽트뢰는 5∼9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몽트뢰 역시 브베와 같은 호숫가. 제네바 호반에서도 이 두 도시의 북안(北岸)은 ‘몽트뢰 리비에라(Montreux Riviera)’라 불리는 명소. 그 이름은 코트다쥐르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프랑스 지중해 남동해안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왔다. 그에 못잖게 풍광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몽트뢰 리비에라는 부드럽게 내리닫는 비탈의 남향사면이다. 햇볕이 풍부해 한겨울에도 따뜻하다. 또 어느 곳에서든 서울면적만큼 넓은 제네바 호수가 알프스산악과 더불어 조망된다. 그래서 여기선 일상이 곧 휴양. 유명인사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다. 근방 모르주(Morges)엔 여배우 오드리 헵번(1929∼1993)이, 몽트뢰엔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1946∼1991)가 정주했다.

 그런 호반도시 브베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무대로 나의 상상을 이끈 배경? 여기서 25년간 말년을 보내고 묻힌 찰리 채플린(1889∼1977), 딱딱하기만 했던 초콜릿을 세계 최초(1819년)로 부드러운 바(bar)로 만들어 시판한 프랑수아루이 카예(Cailler), 그리고 이 초콜릿회사 카예를 소유한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 네슬레(Nestle) 때문이다. 중절모에 지팡이를 든 영화 속 윌리 웡카의 복장은 ‘애처로운 떠돌이(Little Tramp)’로 분장한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킨다. 세계최초 초콜릿 브랜드 카예는 이 브베에서 탄생했고, 네슬레 역시 브베에서 창업해 아직도 본사를 이곳에 두고 있다.

 찰리 채플린과 초콜릿으로 상징되는 브베는 올해 더욱 특별했다. 찰리 채플린의 저택을 체험박물관으로 꾸민 ‘채플린스 월드(Chaplin's World)’가 4월에 문을 열었고, 창업 150주년을 맞은 네슬레는 본사 옆에 홍보관 네스트(NEST·둥지)를 지어 6월에 개장했다. 그 브베를 다녀왔다.


몽트뢰 리비에라의 진주를 찾아서

 숙박한 호텔은 브베 호반의 ‘트루아 쿠론(Trois Couronnes)’. 1842년에 건축한 5층 건물인데 작은 궁전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고급스러웠다. 그 4층 객실의 발코니에 서자 몽트뢰 리비에라의 호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장관이었다.

 호반산책로를 따라 브베 역전으로 걸어갔다. 수면에 거꾸로 꽂힌 높이 8m의 포크 조형물이 보였다. 그 앞에 있는 음식박물관 ‘브베 알리멘타리움(Allimentarium)’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1995년 프랑스 작가 장 피에르 저그가 만든 작품이다. 이곳은 음식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시로 이름난 곳. 네슬레가 설립했다. 부속 정원에는 꽃 대신 일상식탁에 오르는 허브와 야채를 기르고 있다.

 좀더 걷자 낯익은 동상과 만났다. 지팡이에 기대어 호수를 바라보는 찰리 채플린이다. 그가 브베에 정착한 건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 때문. 1952년 영화 ‘라임라이트’ 홍보차 고향 영국을 찾았던 그는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의심해온 미국 연방수사국(FBI) 때문에 입국을 거부당했다.

 브베에 도착한 이튿날은 주말.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열린다는 아침 장을 찾았다. 오전 9시, 호반의 광장 그랑플라스는 상인 텐트와 푸드 트럭, 시민들로 꽉 찼다. 치즈와 햄, 돼지고기와 닭고기, 와인과 야채, 빵과 과자 등등이 즐비했다. 여기서 마을버스에 올랐다. 산중턱의 ‘채플린스 월드’로 가기 위해. 25분 후 버스는 작은 교회 앞에 섰다. 해로한 채플린 부부가 묻힌 곳이다. 부인 우나는 미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 극작가 유진 오닐(1888∼1953)의 딸. 그리고 이 동네 ‘코르시에 수르 브베’는 1819년 카예가 최초로 초콜릿 바를 만든 스위스 초콜릿 발상지다.


채플린스 월드엔 채플린이 산다

문워킹 중인 마이클 잭슨(밀랍인형) 뒤로 찰리 채플린의 그 오리지널 동작 사진이 걸려있다. 채플린스 월드의 스튜디오.
 채플린스 월드는 그의 대저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이곳은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산자락. 정원을 가로질러 하얀 저택(the Manoir)부터 찾았다. 현관에서 채플린 밀랍 인형이 나를 맞았다. 분장하지 않은 노인 채플린이다. 1층 실내는 일상을 엿보는 공간. 책상 소파가 놓인 서재, 정원이 내다보이는 거실, 여덟 자녀와 함께 앉는 10인용 식탁의 다이닝룸…. 2층은 무수한 영화장면의 스틸 컷으로 장식됐다. 침실의 대형화면은 그가 자녀들과 함께 보낸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채플린스 월드는 저택과 스튜디오, 공원으로 구성됐다. 스튜디오는 그의 작품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촬영세트장 형식의 체험공간이다. 1단계는 극장에서 영화감상. 영화가 끝나면 정면 스크린이 올라간다. 그러면서 세트장이 펼쳐지는데 관객은 그리로 걸어 들어간다. 대표적인 영화의 세트장을 차례로 돌며 채플린의 영화세계를 그의 밀랍인형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위대한 독재자’ 세트장에선 의자에 누워 이발사 채플린과 기념촬영을 한다. ‘모던타임스’에선 거대한 톱니바퀴 앞에서 맨발의 소녀 인형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저택의 야외 공간인 정원의 큰 나무는 ‘마이클 잭슨 트리’로 불린다. 마이클 잭슨이 세 번이나 이곳을 찾아왔기 때문. 사실 잭슨의 ‘문 워킹(Moon Walking·미끄러지듯이 걷는 것)’ 원조는 채플린이다.  


스위스 초콜릿의 발상지 브베

채플린 신발 초콜릿을 만든 레더라흐 초콜릿 공방의 장인 블래즈 포예 씨.
 1인당 초콜릿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연간 9kg의 스위스다. 이유가 있다. 초콜릿의 풍미와 밀크초콜릿이 스위스 장인의 솜씨로 태어났을 만큼 초콜릿을 사랑해서다. 1819년 브베에서 창업한 카예는 스위스 최초의 초콜릿 브랜드이고 손자는 1898년부터 근방 브로크(Broc)에서 밀크초콜릿을 생산했다. 사위 다니엘 페터는 1876년 네슬레 창업자 앙리 네슬레가 개발한 연유를 초콜릿에 가미한 이 분야 선각자. 아무도 몰랐던 초콜릿의 숨겨진 풍미를 1897년에 정련기법(콘칭·conching)으로 이끌어내 최초로 입안에서 녹는 초콜릿을 인류에게 선사한 로돌포 린트도 스위스 사람이다.

 그런 브베엔 채플린과 초콜릿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레더라흐(Laederach)초콜릿공방이다. 채플린신발 초콜릿을 창안한 곳으로 15년 전 그걸 개발한 장인 블래즈 포예 씨가 일하고 있다.

 “채플린 사후에 지인들이 ‘브베의 채플린’을 초콜릿으로 기념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었어요. 구두 모양은 영화 ‘골드러시’에서 허기진 채플린이 구두를 스테이크삼아 먹는 장면에서 착안했습니다. 채플린의 별명 ‘리틀 트램프’의 정체성을 살릴 좋은 오브제지요.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채플린의 강인함은 다크 초콜릿(초콜릿 함량 80% 이상)으로, 그 캐릭터의 독창성은 딱딱한 껍질을 벗겨야만 맛볼 수 있는 잣으로 표현했습니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의 둥지 브베

네슬레가 창업 150주년을 맞아 올해 본사가 있는 브베에 개장한 홍보관 네스트(NEST).
 올해는 네슬레의 창업 150주년. 네슬레는 카예(초콜릿) 비테(생수) 네스카페와 네스프레소(커피), 거버(이유식)에 개와 고양이사료까지 29개 브랜드를 194개국 447개 공장에서 생산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식품회사로 성장했다. 본사는 창업지 브베의 철도역 뒤편. 올 6월엔 그 옆에 ‘네스트’란 전시관을 개장했다. 150년 역사를 보여주는 홍보관이다.

 창업자 앙리 네슬레(1814∼1890)의 첫 사업은 분유와 우유에 곡물가루를 섞어 만든 유아 이유식(1867). 산업혁명기의 도시화로 급등한 영아사망률을 낮추는데 기여했다. 다음은 캔에 담은 연유(가당우유). 커피사업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진출했다. 네스트에서 보는 네슬레의 발전과정은 그 자체가 지구촌 식품산업의 역사다. 1층 카페에선 네슬레 커피 등 네슬레 브랜드의 식품을 맛보며 쉴 수 있다.
 
브베(스위스)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브베: 작고 예쁜 호반도시. 인근 명소로는 라보(Lavaux)의 계단식 포도원(세계유산). △레더라흐 브베: 초콜릿 시식과 만들기 체험코스 운영. www.laederach.com △스위스관광청 한국사무소 www.myswitzerland.com △브베 몽트뢰관광청 www.montreuxriviera.com

 테마열차: ◇와인열차(Train des Vignes): 브베∼라보∼피두셰부르 운행. 라보 와인축제는 한 세기에 4, 5차례만 열리는데 다음은 2019년. ◇초콜릿열차(Train du Chocolat): 7·8월엔 매일, 5·6·9·10월엔 주 3일 운행(월 수 목). 몽트뢰∼그뤼예르(기차)∼브로크(버스) 운행. 그뤼예르에선 스위스 치즈, 브로크에선 ‘메종 카예’에서 초콜릿 공장투어. www.goldenpass.ch  

 채플린스 월드: 오전 10시∼오후 6시. 크리스마스, 정초만 빼고 연중무휴. 상점엔 다양한 채플린 캐릭터상품이 있다. www.chaplins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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