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이야기가 있는 마을] “제발 돌섬만은…” 아버지를 그리는 애절한 효심

이해리 기자

입력 2017-11-23 05:45 수정 2017-11-2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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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4차선 도로(왼쪽)가 생기면서 예전 명당으로 꼽히던 괴자목과 돌섬의 흔적은 사라졌다. 그래도 고흥 사람들은 여전히 “방사마을은 명당 터”라고 믿고 살아간다. 고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13. 방사마을 ‘괴자목 설화’

노스님이 골라준 아버지 명당 묏자리
“돌섬이 사라지면 명당자리 안된다오”
그 앞 지키는 돌섬까지 지극정성 돌봐
결국 1970년 간척사업으로 도로 변신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의 이곳저곳 땅을 밟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두 차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좋은 땅은 사람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한다. 예부터 명당을 찾아 묏자리를 정하는 이유는 아마도 조상을 좋은 터에 모시고 그 후손들이 두고두고 복을 받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났어도 명당은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기대를 준다. ‘명당’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안정감도 상당하다. 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 한동리에는 오래전부터 명당으로 손꼽힌 곳이 있다. 방사마을 앞에 자리 잡은 괴자목이다. 고양이 목의 형상을 한 이 곳은 고흥에서도 좋은 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험한 기운 덕분인지 방사마을에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유독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많았고 법조인들도 여럿 배출됐다고 한다.

방사마을. 고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효자가 지킨 명당자리

방사마을 정병남 이장은 “옛날 고흥의 이름이 흥양인데, 마을에는 흥양 이씨의 집성촌이 있다”며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온 게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곳에는 설화가 있다. 방사마을 앞에 자리 잡은 괴자목에는 효자 모 씨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부모를 좋은 곳에 모시기 위해 명당을 찾았고, 그 자리를 지켜내려고 애쓴 모 씨의 효심 덕분에 그 후손들이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모 씨 집 앞을 지나던 노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부탁했다. 문을 열고 나온 모 씨는 마침 아버지의 상중이라는 말을 전하면서도 노스님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음식과 쌀을 장만해 건넸다. “변변치 않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모 씨에게 노스님은 “부친의 묏자리를 정했느냐”고 물었다.

“아직 구하지 못해서 급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명당자리를 한 곳 추천해 드리죠.”

노스님은 모 씨에게 마을 한쪽에 있는 괴자목을 일러줬다.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고 응시한 모습을 한 터입니다. 괴자목에서 바라보면 앞 쪽에 돌섬이 하나 보일 텐데, 그 돌섬이 쥐나 다름없죠. 그러니까 돌섬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돌섬이 없어지면 고양이가 배가 고파져서 그 땅은 좋은 자리가 되지 못하니까요.”

모 씨는 노스님이 지목한 땅을 사서 선산으로 만들고 아버지를 모셨다. 매일 성묘를 잊지 않았고, 그 앞을 지킨 돌섬까지 돌보면서 정성을 들였다.

애지중지 선산과 돌섬을 챙기기를 여러 날. 마을 사람들은 다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돌섬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뜻을 모았다. 이 소식에 놀란 모 씨는 마을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했다.

“아버지를 지키는 돌섬이니 제발 옮기지 말아 주세요. 보상을 하라고 한다면 저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하겠습니다. 아버님만은 꼭 지키고 싶습니다.”

모 씨의 효심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돌섬을 그 자리에 두기로 했다. 훗날 모 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명당에 묻혔고, 후손들도 풍요롭게 살았다.


● 이제는 이름만 남은 ‘괴자목’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괴자목과 돌섬도 그 자리를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1970년대 시작된 고흥군 간척사업의 영향이다. 방사마을 인근 바닷가도 간척으로 메워졌고 얼마 뒤에는 그 위로 4차선 도로까지 만들어졌다. 명당 괴자목과 돌섬에 얽힌 이야기는 변화하는 지형과 더불어 차츰 잊혀졌다.

하지만 아직도 오래 전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있다. 방사마을에 살고 있는 김인석(77) 할아버지는 마을에 갖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마을 이름에 붙은 ‘사’는 선비 사(士)야. 이름 덕분인지 옛날부터 좋은 땅으로 유명했고 똑똑해서 잘 된 사람들도 많이 나왔지. 도로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괴자목이 명당이라는 말이 지금도 틀리지 않아. 무슨 농사를 해도 다 잘되거든. 농한기 없이 1년 내내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이여.”

도로가 생기면서 괴자목의 자취를 찾는 일도 쉽지 않지만 마을의 이일하 할아버지(80)의 기억에는 남아있다. “너무 큰 도로가 생겨서 지금은 소용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말 좋은 땅이라서 옛날 조상들, 할아버지들 많이 묻힌 곳인데 길 생기면서 싹 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 설화 참조 및 인용: ‘배고파진 괴자목’ 안오일, ‘고흥군 설화 동화’ 중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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