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 스님의 말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윤여수 기자

입력 2017-06-22 05:45 수정 2017-06-2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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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자가 과욕을 부리다 큰 화를 당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전남 고흥군 도덕면 가야리 성항마을 전경. 벼와 마늘농사가 풍년을 이루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고흥(전남)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4 도덕면 가야리 성항마을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의 이곳저곳 땅을 밟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두 차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욕심 많은 김부자 소똥 시주에 뿔난 스님
마을 앞 바다 막으면 떼돈 번다고 꼬드겨
거북이 물길 막은 김부자 결국 천벌 받아
지금은 간척한 땅에 곡식들이 무럭무럭

세상은 때로 이야기에 기대 그 형상을 드러낸다. 전남 고흥군 도덕면 가야리 성항마을 역시 그렇다.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드넓은 평지에서 먹거리를 거두며 사람들은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을은 오래 전 바다에 둘러싸여 반도의 형상을 이뤘다. 바다가 마을을 품어내고 사람들에게는 바지락과 낙지 등을 안겨줬다.

바다를 메우고 새롭게 다져진 땅. 이곳은 간척지다. 물을 막아 땅을 만들기 전 거북이가 물을 찾아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마을에선 이제 쌀과 마늘농사가 풍성하다. 그러기까지 마을에선 부자가 몇 되지 않았다. 그 부자의 집에서 머슴을 살며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모았다.


● 부자의 욕심이 부른 화(禍)

그 부자 중 한 사람, 김부자. 어찌나 욕심이 과한지 가뭄이 극심해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고리의 빚으로 괴롭혔다. 머슴들의 세경도 쥐꼬리만큼 주었다.

어느날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김부자의 고래등 같은 집을 찾았다. 시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인이 쌀을 조금 퍼가지고 나가려 했지만 김부자에게 들키고 말았다. 김부자는 쌀 대신 소똥을 스님의 시주 보따리에 퍼부었다.

“똥도 약이 된다 하지 않소?”

스님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맙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렇게 귀한 시주를 해주셨으니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도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욕심 많은 김부자, 마른 침을 삼키며 눈알을 희번덕거린다.

“이 마을 앞 바다를 막으시오. 그러면 큰돈을 벌게 될 것이오.”

몇날 며칠 궁리 끝에 김부자는 머슴들을 동원하기로 했다.

“바다로 가서 둑을 만들어라”

머슴들은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바닷가로 내쫓겼다. 머슴들의 노동으로 둑은 완성됐고 바닷물은 막혔다. 김부자는 곧 떼돈을 벌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도둑이 들어 곳간의 식량을 모조리 가져가고 말았다. 아들은 노름에 빠져 아비 몰래 집문서를 빼앗기고 말았다. 농사 또한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시름시름 앓던 김부자의 부인마저 숨을 거뒀다.

다시 김부자를 찾아온 스님. 김부자는 스님의 다리를 붙잡고 통사정했다.

“스님, 제발 저 좀 살려주십쇼.”

스님은 “과욕을 부리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이는 절대로 잘 살 수가 없는 법. 거북이가 물을 찾으러 가는데 그 물길을 막았으니 인과응보이니라.”


● 거북의 물…순리의 삶

거북이 물을 찾아 가는 길목을 인간의 욕심이 막아놓았으니, 그들 인간에게 하늘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래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웃에 대한 배려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실제로 성항마을 앞 너른 들판에는 길이 약 200여 미터의 둑이 있다. 하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처럼 간척 이후 가난한 삶이 더 쪼그라들지는 않았다. 마을 김영옥(67) 이장은 마을 공동저장고 옥상으로 취재진을 데려가더니 “바다를 막고 나서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다”면서 거북이의 등처럼 굽은 방죽을 가리켰다. 그 멀리 너른 땅을 이룬 간척은 13만2000m²(약 4만여평)의 규모로 이뤄졌다.

사람들은 바닷물을 막기 위해 둑을 세웠다. 당초 둑은 높게 쌓였다. 사람들은 다시 둑의 높이를 낮췄다.

“둑이 높아 바람을 제대로 맞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풍 대신 대지의 바람을, 햇볕과 적절한 습기를 머금으며 자라나야 할 들판의 먹거리를 위한 조치였다. 곳곳의 푸르름으로 이곳 마을의 경제 일부를 책임지는 마늘밭도 사람들의 그런 지혜와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 설화 참조 및 인용: ‘거북이의 물길을 막은 욕심’ 안오일, ‘고흥군 설화 동화’ 중)

고흥(전남) |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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