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 소나무 타고 승천한 ‘착한 이무기’의 전설

윤여수 기자

입력 2017-05-18 05:45:00 수정 2017-05-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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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천마을에서 바라본 용섬(용도)의 모습. 착한 이무기가 용이 돼 소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흔적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섬과 바다가 평온해 보인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 금산면 신평리 명천마을 ‘용섬’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고, 집착은 끈질겼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는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군의 땅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첫째 주 및 셋째 주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용이 되려고 1000년을 기다린 두 이무기
소녀 목숨 지킨 이무기만이 승천의 자격
섬 꼭대기 소나무에 타고 오른 흔적 남아
10여년 전 태풍에 사라져…이젠 전설로

‘권선징악’(勸善懲惡).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가장 전형적인 교훈이다. 전남 고흥군 금산면 신평리 명천마을 앞바다를 이어주는 용섬에 얽힌 설화 역시 그렇다. 이기심으로 가득한 세상에 한없는 배려와 순수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이타(利他)임을 말해준다.


● 용(龍)…승천의 꿈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거친 바위와 나무로 무성해 사람이 살 수 없는 섬. 먼 옛날 이곳에 두 마리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각기 푸른빛과 붉은빛을 내는 이들은 무려 1000년의 세월을 기다려 왔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였다.

그날을 하루 앞둔 때였다. 신령은 이들의 승천의 자격을 따지기 위해 섬으로 날아왔다. 신령은 “마지막 하루까지 몸과 마음의 가짐을 반듯하게 해야 하느니라”고 당부했다.

한 소녀도 섬에 찾아들었다. 고된 삶에 지쳐 병으로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치유를 기원하며 소녀는 “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온전히 나을 수 없다면 목숨만이라도 살려주세요. 어머니와 함께 해를 보고 바람을 맞으며 피는 꽃을 보고 싶습니다”며 빌고 또 빌었다.

이를 바라보는 푸른 이무기는 붉은 친구와 달리 소녀의 기도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였다. 끝내 용이 되지 못하고 죽은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큰 지네 한 마리가 독의 기운을 가득 품고 소녀에게 접근해가고 있었다. 푸른 이무기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칫 지네의 독으로 자신의 몸이 녹아내릴 위험마저 감수하는 연민의 움직임이었다. 오로지 용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붉은 이무기는 푸른 친구를 말렸다. 푸른 이무기는 어머니가 남긴 말을 지키고 싶었다. 어머니는 “용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명을 소중히 하고 지킬 줄 아는 것도 중요하느니라”고 말하며 숨을 거뒀다. 독을 내뿜으려는 지네에게 달려들었다. 독은 푸른 이무기에게 향하는 듯했다. 신령은 그 위기의 순간에 다시 날아들었다. 지네는 물러갔다.

다음날, 용이 된 것은 푸른 이무기였다. “속세에 관여한 건 저 푸른빛 이무기”라며 여전히 이무기의 몸에 머물고 만 붉은 이무기는 따져 물었다. 신령은 말했다.

“무릇 속세란 욕망과 이기심을 뜻하느니라. 푸른빛 이무기는 그런 속세에 관여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어 남의 목숨을 지켜냈느니라. 진정 큰 그릇이 되려면 몸과 마음의 가짐이 맑고 순수해야 하는 법. 그게 수련이다.”

용이 된 푸른 이무기는 노송(老松)을 타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 실제 존재한 노송의 자취

섬은 이제 명천마을과 100여m 길이의 방파제길로 이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지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섬을 둘러볼 수 있게 됐다. 명천마을 신영준(69) 이장은 “마을이 점점 커지고 인구가 불어나면서 선착장을 만들어야 하니 30여년 전 방파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신 이장과 함께 섬에 오르지만 길은 아찔하게 가파르다. 바위와 무성한 나무들로 섬은 이뤄졌다. 용이 되고 싶었던 두 이무기의 흔적이 그것일까. ‘순정’과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 등 몇몇 영화가 이곳을 카메라에 담아내기도 했다.

신 이장은 “이무기의 설화는 이미 100여년 전부터 전해져 온다”면서 실제로 섬 꼭대기에 소나무가 있었다고 일러주었다. 방파제 위에서 만난 신동식(70)씨는 용이 소나무를 감고 하늘로 오른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말을 보탰다.

다만 섬의 한 쪽에 형성된 굴은 큰 이무기들이 섬을 터전 삼아 자유롭게 드나든 곳이 아니었을까 어림짐작케 한다. 그 위에서 수직으로 바라 본 굴은 10여m가량 깊게 패 있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닷물은 굴로 이어지는 바위를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입구는 이제 막혀 버렸다. 쉼 없이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입구를 막았다.

섬 꼭대기 노송도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지 못하게 한다. 신 이장은 “10여년 전에 태풍 때문에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신동식씨는 “한때는 너무 가물어서 마을 청년들이 소나무를 살리려고 물을 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노송은 이 마을을 지켜주던 또 다른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용이 되려 했던 이무기와 이 용섬이 전해주는 설화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바람과 믿음을 안고 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매년 정월 초사흗날이면 풍어제를 지낸다. 명천마을 사람들은 이제 미역을 양식해 내다 팔고 통발로 문어와 낙지를 잡아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이어간다. 3∼4곳의 미역 가공공장이 번듯한 살림살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설화 참조 및 인용:‘노송을 타고 승천한 용’안오일, ‘고흥군 설화 동화’ 중)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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