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전문기자의 사진 속 인생]사진은 또 다른 나를 찍는 것

이종승전문기자

입력 2017-01-20 03:00 수정 2017-0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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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만난 정육점 주인의 푸근한 미소는 여로에 지친 이방인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올챙이 사진기자 시절 신영희 명창을 찍었던 기억을 되살리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초여름 한복을 곱게 입고 온 신 선생을 찍으라는 데스크의 지시에 더럭 겁부터 났다. 20대였던 나는 그 당시 인물을 제대로 찍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10분밖에 시간이 없다는 신 선생에게 초짜 사진기자 티를 내지 않으면서 그만이 가진 ‘그릇’을 찍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셔터를 누를 때마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급기야 풀밭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으라는 요구까지 하게 됐다. 선생은 “한복을 입었는데 이런 자세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볼멘소리를 하셨고 “그래도 해 주세요”라고 우겼다. 파인더로 본 선생의 모습은 영 아니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매체에 게재된 사진은 선생을 괴롭게 한 앉은 포즈가 아닌 ‘빨리 찍어주세요’란 표정이 묻어난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란 말은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한 기초와 응용이 없었단 의미다. 기초는 ‘감각’과 ‘구도’이고 응용은 사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도 기초를 닦고 있는데 감각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다. 타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 전공자를 부러워하는데, 어느 정도 타고난 감각과 구도에 훈련됐기 때문이다. 기초가 중요하지만 사진의 모든 걸 좌우하지 않는다. 기초 위에 무엇을 쌓을 것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사진도 인생처럼 왜 살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이 있어야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내게 사진 찍기란 ‘또 다른 나를 찍는 것’이다. 내 안의 ‘나’나 타인 속에 있는 ‘타인의 나’는 다르지 않다. 누구나 꼭 같은 게 있지만 생김새, 성격, 살아온 환경 등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알고, 공감하고, 느껴야 겨우 타인 안에 있는 ‘그릇’의 크기와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어디서건 내가 찾고자 하는 걸 갖고 있는 사람에게 카메라는 향한다. 브라질에서 만난 중년의 남성도 바로 그 경우다. 편안함도 본성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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