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여러분의 부채는 안녕하십니까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18-02-12 03:00 수정 2018-02-1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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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세계 경제의 중심, 미국 뉴욕 맨해튼엔 입이 떡 벌어지는 부잣집이 수두룩하다. 파크애비뉴의 와인숍엔 수백만 원짜리 와인이 ‘보호 장비’도 없이 진열대에 놓여 있다. 가격표를 보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으니, 직원이 다가와 6L 병에 든 와인을 가리키며 “이건 1만5000달러(약 1640만 원)인데 생각 있으면 10% 할인해 주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와인 가격만으로도 맨해튼 부자들의 씀씀이를 알 수 있었다.

집값은 말할 것도 없다. 센트럴파크에서 반 블록 떨어진 88번가 이스트 7번지에 6층짜리 타운하우스가 있다. 방이 19개(침실 6개)이고 엘리베이터, 옥상 일광욕 시설, 뒤뜰까지 있는 전형적인 뉴욕 부자들의 ‘럭셔리 타운하우스’다. 이 집은 2014년 4400만 달러에 매물로 나왔다.

할리우드 스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동과 중국 갑부들이 눈독을 들이는 맨해튼 최고급 주택시장에 최근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블룸버그뉴스에 따르면 2014년 4400만 달러(약 480억 원)에 매물로 나온 88번가 타운하우스의 시세는 지난해 10월 3000만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3년 새 가격이 33% 하락한 것이다.

럭셔리 타운하우스를 밀어내고 부자들의 구매 목록 1순위에 오른 맨해튼 초고층 ‘울트라 럭셔리(Ultra luxury)’ 아파트 시장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맨해튼엔 90층짜리 원57, 매디슨스퀘어파크 타워, 30파크 플레이스, 432파크 등 초고층 초고가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432파크는 세계 최고층 주택으로 꼽힌다. 건물이 하도 높아 ‘그림자가 너무 길다’는 민원까지 생겼다. 외국인은 집 구경만 하려고 해도 수백만 달러 통장 잔액을 보여줘야 할 정도로 ‘입주민 물 관리’까지 했다.

이 맨해튼 ‘마천루 주택’ 가격도 최근 꺾였다. 지난해 맨해튼 주택의 중간가격은 5년 연속 올라 사상 최고인 114만 달러를 기록했으나 평당 1억 원이 넘는 상위 10% 럭셔리 주택의 중간값은 1.5% 떨어진 653만 달러로 집계됐다. 마천루 주택 공급이 단기간에 크게 늘어난 영향이 크지만, 세계 부자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닛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퇴임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 회복이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주식과 상업용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대해선 “가격이 너무 높다고 할 순 없지만 높은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주식시장도 최근 상승분을 반납하고 예전처럼 롤러코스터를 타는 ‘변동성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경제가 나빠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좋아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이 ‘산소호흡기’를 빨리 떼고 금리 인상의 가속페달을 밟을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시장의 힘으로 홀로 서야 하는 ‘진실의 순간’이 불시에 찾아올까 두려워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뜻이다.


가계부채가 1400조 원이 넘는 한국에선 여전히 부동산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집 가진 사람과 투기 세력이 어울려 강남 부동산 호가를 부풀리며 시장에 풀린 돈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공급은 건드리지 못하고 수요만 억제하려는 정부 규제를 비웃듯이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에 돈이 몰린다.

경기는 순환한다. 그 주기를 잘못 타면 큰 위기를 겪는다. 호황 때 초고층 건물 건설 붐이 일었다가 완공될 무렵 경기 침체기가 닥쳐 위기를 겪는다는 ‘마천루의 저주’가 반복되는 이유다. 부자들이 변심할 조짐을 보인다면 모든 경제 주체는 금융시장의 오랜 격언을 되새기며 위험관리를 한 번쯤 점검할 필요가 있다. 꽃은 늘 지기 전에 가장 붉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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