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세입자 낀 다주택자 “집 팔고 싶어도 못파는 상황”

정임수기자 , 강성휘기자 , 박재명 기자

입력 2017-08-21 03:00 수정 2017-08-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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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대책 여파 ‘거래절벽’ 심화


2년 전 서울 성동구에서 6억 원대 아파트를 사들여 전세를 놓은 이모 씨(45)는 최근 중개업소에 이 집을 내놨다. 1가구 2주택자여서 ‘8·2부동산대책’에 따라 내년 4월 부활하는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을 보러 오겠다는 연락은 전혀 없다. 이 씨는 “실수요자가 아닌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 투자자’에게 집을 팔아야 하는데 요즘 같은 분위기에 누가 사겠느냐”며 “세입자를 내쫓고 집을 팔 수도 없고, 무조건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대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8·2대책이 발표된 지 보름 남짓 지나면서 부동산시장의 관망세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매수세가 사라진 가운데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기도 힘들어 ‘거래절벽’이 계속되는 분위기다.


○ 다주택자 “팔고 싶어도 못 팔아”

2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04% 하락해 8·2대책 이후 2주 연속 내렸다. 부동산114 집계(0.03%)로도 3주째 상승 폭이 둔화됐다. 특히 규제가 집중된 강남 재건축 단지(―0.16%)는 직격탄을 맞아 2주 연속 하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주머니 속 추가 대책’까지 언급하며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하자 수요자들은 집값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섣불리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8·2대책의 표적이 된 다주택자들은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는 압박을 받지만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강남구 대치동 에덴공인의 윤고용 대표는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매도자가 매수자를 짝사랑만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합이 설립된 서울, 경기 과천시 등의 재건축 단지에서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돼 다주택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한신8차(전용면적 53m²)는 최근 기존 거래가보다 3억 원 이상 싼 7억 원에 급매물이 나왔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였다. 조합원 지위를 넘겨받지 못하고 현금청산을 해야 하는 다주택자 매물이었기 때문이다. 인근에 위치한 뉴욕공인중개사무소의 이순자 대표는 “대책 직후엔 어떻게 처분해야 하느냐는 다주택자 문의가 많았는데 팔 수가 없다보니 버텨보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고 귀띔했다.


○ “거래절벽 장기화되면 무주택자 피해”


서울 강남의 아파트 2채를 담보로 8억 원의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이모 씨(51)는 8·2대책 이후 은행에서 집을 팔아야 하는지 상담을 받은 뒤 포기하기로 했다. 다주택자가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신규 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30%로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 씨는 “주택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을 충당하는 자영업자는 나중에 세금을 물더라도 당장 집을 팔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고 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 많다. 수도권은 공시가격 6억 원 이하인 주택에 대해 임대사업자들이 종합부동산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9월 발표되는 임대사업자 관련 대책을 지켜본 뒤 움직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주택자들은 팔기가 쉽지 않고 실수요자들은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거래절벽 현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거래절벽이 길어지면 내 집 마련 수요가 임차 수요로 돌아서면서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며 “기존 주택시장 침체가 분양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부동산시장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6년 국세수입 결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걷힌 양도세는 13조7000억 원으로 1년 새 15.4% 늘었다. 예산정책처는 “법인세 증가와 함께 부동산 관련 세수가 늘면서 국세 수입이 늘었다”며 “하지만 부동산 호조세가 약화될 경우 세수 여건이 다시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거래절벽을 해소하려면 기존 주택을 사는 실수요자를 위해 금융 규제를 더 완화해주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고가 주택도 임대주택 등록을 허용하는 등 다주택자들의 퇴로를 넓혀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임수 imsoo@donga.com·강성휘·박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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